무섭고 의아한 '좋아요'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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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고 의아한 '좋아요'

2020.06.25

아래 사진은 2020년 5월 22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안혜리의 시선] 윤미향의 탐욕이 고맙다’에 달린 댓글입니다.

기자는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직업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이 저렇게 비열한 댓글로 ‘나와 관점이 다른 기자들’에게 재갈을 물리려 하고 있습니다. 팩트는 팩트로 대응하고 논리는 논리로 반박해야 하는데, 저 댓글을 보면 기자의 부친까지 거론하며 모욕을 주고 있습니다. 논리는 없고 저주만 있습니다. 돌아볼 가치가 전혀 없는 댓글인데, 5월 23일에 캡처해서 올려 놓은 사진을 보면 좋아요가 652개, 싫어요가 239개 입니다. 저런 저질 댓글에 동의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세 배 가까이 많은 겁니다. 같은 기사를 6월 23일에 들어가서 확인을 해보니, 강민 아빠라는 사람이 쓴 저 댓글이 여전히 추천 순위 1위를 하고 있고, 1617명이 ‘좋아요’를, 585명이 ‘싫어요’를 클릭했습니다

한편으로 두렵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수준 이하의 댓글에 좋다고 클릭을 했다는 게 두렵고, 정말 실제로 ‘좋아요’를 누른 사람들이 저렇게 많은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 의구심은 해결하기 힘들었습니다. 댓글과 관련한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 일반인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두 달쯤 전에 ‘악성 여론 몰이 헤비 댓글러’를 심층 취재한 신동아의 기사를 통해 합리적 유추가 가능해졌습니다.

이 기사는 지난 총선 전후 23일간 1,000개가 넘는 댓글을 쓴 사람이 10명 이상이며, 하루에 57개의 댓글을 단 사람도 있고, 근거 없는 가짜 뉴스를 올리고, 육두문자도 서슴지 않고 남발했던 사람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안혜리 기자를 향한 악성 댓글 역시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좋아요’의 클릭 수도 그런 사람들이 몰려 다니며 하는 행위라는 추측을 해봅니다. 그러지않고서야 저런 상식 밖의 댓글에 ‘좋아요’ 숫자가 많은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상상하기도 싫지만, 만에 하나라도 1617명이 기자의 가족까지 모욕을 주는 저런 댓글에 진심으로 ‘좋아요’를 눌렀다면 정말로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할 문제입니다. 이 끔찍한 증오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이런 표현을 세상에 드러내어 보여주는 것과, 이런 댓글에 다른 유저들의 호불호를 카운트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를 말입니다.

오래된 미디어 이론 중에 ‘침묵의 나선형’ 이론이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사람들은 대세에 따른다는 이론입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다들 좋다고 하는데 나만 싫다고 얘기하기가 두려운 사람의 심리에 대한 이론입니다. 이 이론을 알고 있는 언론인은 대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실에 근거한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사건의 본질을 통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사로운 목적과 이익에 따라 진실을 호도하지 않습니다.

“설탕이 아니고 홍시입니다.”
“어찌 홍시라고 생각하느냐?”
“예? 저는… 제 입에서… 고기를 씹을 때, 홍시 맛이 났는데… 어찌 홍시라 생각하느냐 하시면…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생각한것이온데…”
“호오, 타고난 미각은 따로 있었구나! 그렇지! 홍시가 들어 있어 홍시 맛이 난 걸 생각으로 알아내라 한, 내가 어리석었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어린 장금이와 최고 상궁인 정상궁의 대화입니다.

여기서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생각한 것이온데….”는 명대사로 남아 있습니다. 팩트는 팩트입니다. 잘못은 잘못이고 잘한 것은 잘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넘쳐나는 댓글들을 보면, 홍시 맛이 나도 홍시라고 얘기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쪽 말이든 저쪽 말이든 팩트는 인정하고 예의와 품격을 지켜야 논쟁이 되고 발전이 있는데 나와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면 “너 같은 놈은…”이라고 하면서 존재를 칩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의 잘못이 큽니다. 과거엔 그래도 사회통합을 얘기하는 정치인이 있었는데 요즘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대신 각자 캠프를 꾸려 세(勢)를 불리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선거 때만 되면 이 좁은 나라가 춘추전국시대로 돌변합니다. 정치인들이 아이돌도 아닌데 팬덤 현상이 생겨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추종합니다. 그리고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이런 현상이 ‘내게 이득이 되는지, 우리 쪽 표로 집결되는지'만 따질뿐, 옳고 그름은 안중에도 없어 보입니다.

15년쯤 전에 한 연예 프로그램에서 아이돌과 관련한 아주 사소한 비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평소엔 댓글이 많아야 수십 개 달리는 인터넷 게시판에 수만 개의 댓글이 달렸고, 댓글의 내용은 대부분 원색적인 비난과 욕설이었습니다. 그때 그 극렬했던 철없던 팬들이 이제는 다 정치판으로 뛰어들었나 봅니다. 노래는 보고 듣고 즐기면 되지만, 정치는 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당연히 옳고 그름을 따져서 책임을 물을 건 묻고, 고칠 건 고쳐 가면서 좋아해야 하는데 그냥 무작정 사랑인 듯한 사람들과 그걸 방치하는 정치인들의 합작이 혐오의 댓글을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공자는 네 가지를 단절했습니다[자절사:무의, 무필, 무고, 무아(子絶四 : 毋意, 毋必, 毋固, 毋我.)].편견을 가지거나 억측하지 않았고, 불확실한 것인데 장담하거나 집착하지 않았고, 융통성 없이 고집을 부리지 않았으며, 이기적이거나 유아독존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모두가 확신에 차서 상대를 비방합니다. 그리고 공자의 말을 누구보다도 잘 알것 같은 사람들은 침묵합니다. 비열한 침묵입니다. 댓글을 보면, 기자들을 기레기로 수도 없이 비난합니다만, 그 댓글의 수준을 보면 정말로 청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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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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