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독교인의 노작 '소설 예수' [홍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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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독교인의 노작 '소설 예수'

2020.06.24

윤석철 형은 대학 신입생 시절 동아리에서 만났습니다. 1학년 때 기억이 있습니다. 내가 기독교 신자라는 말을 듣고 형이 물었습니다. “신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구약을 알아야 해. 통독이라도 해 보았어?” 그러지 못했다고 답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걸로 보이는 이 형이 왜 내게 이런 말을 하는가?’
세월이 흘러 그의 아들 결혼식에 갔다가 “부모가 결혼한 교회에서 그 아들이 결혼식을 한다” 하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다소 놀랐습니다. 졸업한 뒤로 꽤 오랫동안 동아리 멤버들과의 연락이 끊겼으니 형의 결혼식은 보지 못했으니까요. 그전까지 그가 기독교 신자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이번에 그가 『소설 예수』를 출간했습니다. 전체 다섯 책으로 예정한다는데 1권과 2권을 먼저 냈습니다. 책을 받은 날 밤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신입생 시절을 떠올린 건 책을 읽으면서 그때 형에 대해 속으로 못마땅하게 여기고 대화를 이어가지 않은 일을 후회하여서입니다.

더 이상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선언한 지가 30년이 넘었습니다. 그렇지만 인생의 황금기라고 할 만한 시절 20년간 교회 생활을 하면서 얻은 성서 지식이나 경험들은 그냥 사라질 수가 없습니다. 많든 적든 그 지식이나 경험의 바탕 위에 형성된 나름대로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나의 한 부분이 되었을 터입니다. 어떤 부분은 아직도 채우지 못한 궁금증의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학생 시절 성서 공부를 하면서 주해서나 관련 서적을 얼마간 찾아보았습니다. 거기서 인용되는 문헌의 다양함과 규모를 보고 감탄하였습니다. 그래서 신학과 관련된 분야의 지식을 탐구해 보았으면 하는 실행하지 못한 희망 사항이 오래 남아 있었습니다.

『소설 예수』를 읽으면서 흥분했습니다. 책 속 이야기가 그 옛날 채우지 못한 ‘궁금증’의 상당 부분을 메워주어서 놀랍기도 하고 반가웠습니다. 신약의 복음서는 예수의 생애를 다루고 있는데 서술이 건조합니다. ‘예수가 갈릴리 호수의 어부들더러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겠다며 불렀다.’ ‘예수가 병자를 고쳐주었다.’ 이런 정도입니다. 세리장 삭개오를 만나는 부분은 열다섯 문장이나 되니 꽤나 긴 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전후 맥락은 알 수 없습니다.
『소설 예수』에서는 이런 이야기 하나하나가 단편소설이라고 느껴질 분량으로 구성됩니다. 그런가 하면 로마 총독 빌라도,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 대제사장 가야바 등 당시 이스라엘의 리더 역할을 하던 사람들이 처한 정치역학적인 상황이 매우 상세하게 서술됩니다. 아마도 나중에 예수가 십자가 형벌을 받는 배경이 되겠지요.

소설 속에 작가가 두 가지를 녹여내었다고 생각합니다. 성서를 비롯해서 관련된 문헌 자료를 탐구한 내용을 기술하였을 것입니다. 거기에다 성서와 기독교 신앙에 관한 작가 자신의 고심이 담긴 성찰의 결과를 담아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노고가 느껴지니 부분적으로 ‘내가 동의할 수 있는 생각인가?’ 하는 의문이 있더라도 읽어가는 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연구하고 고뇌하며 얻은 깨침에 찬사를 던질 뿐입니다.
신자이길 포기한 지 오래되었지만, 나 자신이 채우지 못한 많은 공간을 메워주니 고맙다고 해야 할 판입니다. 그러니 제1권을 읽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현대의 정치, 사회 상황에 빗대어 생각해 보아도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의 생각과 행동을 한 인간의 것으로 묘사한 점은 이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성서에서나 교회 설교단에서 듣지 못했던 한 인간이 다가옵니다. 그가 삶 속에서 생각하고 깨치는 이야기는 자연스럽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때로는 아버지에게 때로는 스스로에게 질문하면서 배우는 과정은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어느 개신교 목사가 이 소설을 가리켜 ‘역사적 예수’를 그린 수작이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듣기도 했습니다.
예수가 지닌 인간애도 그리고 있습니다. 나이가 많이 들어 곡기를 끊고 있는 노인을 안고서 그에게 "힘드셨지요?"라는 말로 시작해서 등잔불 비유를 들며 삶을 지속해야 한다고 다독이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나올 뻔했습니다. 작가가 그린 예수의 생애와 사고 과정은 오늘날의 우리가 경험하는 삶의 현장과 쉽게 연관 지을 수 있습니다.

소설 속 성장기의 예수는 유대 사회가 맹목적으로 따르는 구약의 전통이나 율법에 대해 의문을 갖습니다. 한 예로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대교의 전통은 말할 것도 없고 기독교도만이 아니라 이슬람교도들도 존경하는 아브라함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그가 아들 이삭을 제물로 삼으려 했다는 잘 알려진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가 던지는 질문을 읽으며 마음속으로 “맞아”, “나는 왜 이 당연한 질문을 하지 못했었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신자들에게는 도전적인 질문이 될 것입니다.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을 줄거리의 근간으로 하여 그의 생애와 생각을 묘사한 점은 독자의 흥미를 더하게 하는 구성입니다. 그의 생애 중 긴장감이 가장 높은 시기이며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과정입니다. 작가는 중요 대목마다 배경이 되는 과거의 이야기를 작가나 소설 속 인물이 회상하는 듯이 끄집어냅니다. 그러면 복음서만 읽을 때 궁금했던 사건들에 살이 붙어 설명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듭니다. 마치 숨겨졌던 예수의 생애가 이제 드러나는 듯합니다.

언젠가 로망 롤랑의 『예수전』을 읽었습니다. 그때는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소설 예수』 속에서는 실감 나는 우리 삶을 읽습니다. 기업을 일구어 경영해온 윤석철 형이 생의 한 부분을 할애하여 고백록이 담긴 글을 썼다고 여깁니다. 읽으며 느끼는 그의 치열한 고심에, 그리고 그 고심의 결과를 책으로 엮어내는 노고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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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홍승철

고려대 경영학과 졸. 엘지화학에서 경영기획 및 혁신, 적자사업 회생활동 등을 함. 1인기업 다온컨설팅을 창립, 회사원들 대상 강의와 중소기업 컨설팅을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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