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요지경] "재판하던 판사가 6시 퇴근이라고 나가버려"


재판하던 판사가 "6시되면 퇴근"


법조계 "의사 수술중 나가는 셈

법원, 각자도생 모래알 조직돼"


'판사는 1인 1실, 직급별 차이 없이 동일 면적으로.'


   대법원 산하 사법행정자문회의는 지난 11일 이 같은 결정 내용을 담은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이 회의체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권한 남용' 논란이 일었던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를 축소하고, 그 기능을 대신하도록 만든 핵심 자문기구다.


정중동 지시 금기 만연

(에스앤에스편집자주)


 

이 내용이 알려지자 법조인들 사이에선 "과거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결정" "법원이 급변하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최근 법원에선 어느 곳에나 있을 법한 기본적 위계(位階)를 부정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2017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권한 남용 사건이 터진 이후 이런 경향이 더 가속화되고 있다. 이 사건으로 고위 판사들이 대거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법원 내에선 '지시' 자체가 금기시되고 있다.




최근 지방의 한 법원에선 재판 중이던 배석판사가 "오후 6시가 넘으면 바로 퇴근하겠다"고 말해 재판장이 급히 다른 재판부의 배석판사 한 명을 법정 출입문 앞에 비상 대기시키는 일도 있었다. 재판이 6시 전에 끝나 '비상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 일로 부장판사는 배석판사와 말도 섞지 않는 사이가 됐다고 한다. 법원 안팎에선 "수술 중인 의사가 퇴근 시각 됐다고 환자 개복해놓고 나가겠다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말이 나왔다.


또 다른 지방법원에선 배석판사가 금요일 오후 판결문 초안(草案)을 이메일로 부장판사에게 보낸 후 휴대전화를 끄고 퇴근한 사례도 있었다. 부장판사가 판결문과 관련해 궁금한 게 있어도 물을 사람이 없었다. 한 고등법원 판사는 "업무 시간 외에 사적으로 연락하지 말라는 후배들의 요구가 많아서 아예 후배 휴대전화 번호 자체를 저장하지 않는 선배 판사도 많다"며 "법원이 각자도생의 모래알 조직처럼 됐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는 '재판 합의'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선 재판장인 부장판사가 판결문에 '나는 이 판결에 동의할 수 없다'는 취지의 소수 의견을 적었다. 이 사건의 주심이 배석판사였는데, 재판장이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수 의견을 단 것이다. 하급심(1·2심)에서 소수 의견이 게재되면 재판에서 진 사람은 결과에 승복하지 않기 때문에 소수 의견을 판결문에 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과거엔 부장판사 의견대로 판결문이 쓰였기 때문에 소수 의견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고 했다.




작년 2월엔 한 평판사가 판사 전용 온라인망에서 양승태 행정처의 권한 남용 사건과 관련해 20년 선배 판사를 공개 비난한 일도 있었다. 이를 보고 다른 판사들이 '법원에서도 인생에서도 선배다. 공개된 게시판에서 이렇게 (비판)할 수는 없다'고 적었다. 그러자 이 판사는 '선배 판사, 후배 판사 하는 말을 이참에 버리면 좋겠다. 초·중·고교나 대학도 아니고 모두가 동등해야 할 법원에서 선후배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적었다.

김아사 기자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19/20200619001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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