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수주 활성화와 리스크 관리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또다시 '해외수주 활성화 방안(6ㆍ15)'이 발표됐다. 총사업비 1000억달러 규모의 해외 핵심 프로젝트 30개를 선정해서 정부가 적극 관리하겠다는 내용 말고는 작년 2월에 발표한 '해외수주 활력 제고방안'과 큰 차이가 없다. 특히 정부의 해외건설 정책이 늘 '올해 수주 300억달러 달성'과 같은 양적 목표만 강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질적인 면에서 수익성도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활성화 방안에도 리스크 관리에 관한 언급이 없다. 정부와 달리, 기업은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원래 한국 기업의 강점은 적극적인 리스크 떠안기였고 약점은 리스크 관리였다. 만약 적극적인 리스크 떠안기가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한국 경제와 건설기업의 성장은 불가능했다. 1970년대 후반의 중동 건설 붐은 적극적으로 리스크를 떠안은 결과였다. 초창기 사업추진 과정에서 현실화되는 리스크는 기업과 정부가 상황적응적으로 기민하게 잘 대응했다. 하지만 중동시장이 변곡점을 넘어서 환경이 바뀌었는데도 리스크 떠안기가 한동안 계속됐고 그 결과가 중동 건설 부실화와 대규모 기업 구조조정으로 나타났다.


1990년대의 동남아 건설 붐도 마찬가지였다. 동남아 건설시장의 성장기에는 리스크 떠안기가 필요했지만 외환위기로 인해 감당하기 어려운 과도한 차입구조를 갖고 있던 건설기업들은 리스크 관리 실패로 무너졌다. 2010년대 초반의 해외건설 어닝 쇼크도 마찬가지다. 배럴당 100달러를 상회한 유가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적극적으로 해외 플랜트 수주에 나섰다. 미국과 유럽의 건설기업들은 리스크를 줄이고 회피하기 위한 차원에서 사업초기 단계의 기본설계 및 연결설계(FEED)에 주력했다.




한국의 플랜트 기업들은 상세설계(E)-구매ㆍ조달(P)-시공(C) 전반의 리스크를 다 떠안았다. 이처럼 과감하게 리스크를 떠안을 수 있는 선진 기업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해외 플랜트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 문제는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점차 과잉 수주와 저가 수주로 원가율이 상승하는데도 리스크 관리보다 여전히 리스크 떠안기에 치중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2013년에 어닝 쇼크를 발표하고서도 2014년의 해외 플랜트 수주는 더 늘었다. 그러다 보니 아직도 해외 플랜트 부실이 말끔하게 정리되지 못한 것 같다. 일부 기업은 해외사업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한 채 해외사업 자체를 포기하는 듯한 모양새도 보이고 있다. 급성장하는 시장에서는 리스크 관리보다 리스크 떠안기가 더 중요할 수 있다. 급성장 국면에서 리스크 관리를 지나치게 강화하면 성장의 기회를 빼앗기게 된다. 하지만 지금의 해외건설 시장 상황이 적극적으로 리스크를 떠안아야 할 시기인지는 의문이다.


해외건설 수주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수주실적이 작년보다 조금만 떨어져도 활성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수주한 해외공사가 얼마나 수익을 창출했는지는 해당 기업을 제외한 외부에서 알기 어렵고, 잘 따지지도 않는다. 특히 대규모 해외건설공사는 공사 기간이 몇년씩 소요된다. 수주 시점에서는 손실이나 수익 여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호황기의 해외건설이 수주 신화에 매몰됐다면, 불황기의 해외건설은 어김없이 수주 급감과 함께 어닝 쇼크가 찾아왔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해외수주 급증에 가려졌던 대규모 손실이 드러난 어닝 쇼크는 세 차례나 반복됐다.




수주는 양적 지표다. 수익은 질적 지표다. 양도 중요하지만 질은 그보다 더 중요하다. 해외수주가 아무리 많아도 수익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 기업은 이 같은 사실을 뼈아픈 체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2010년에 716억달러라는 사상 최고 수주실적을 달성한 이래 계속 수주가 줄어들고 있지만 기업들은 계속 '수익성 위주의 선별수주'를 하겠다고 한다. 여전히 리스크 관리 모드인 셈이다. 정부도 해외수주 활성화를 위해 리스크 떠안기만 강조할 수는 없다. 최근 2~3년간에 걸친 정책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왜 수주실적이 저조한지, 구조적인 원인부터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는다면 이번에 발표한 해외수주 활성화 방안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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