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자네와 나 둘뿐일세” [황경춘]




www.freecolumn.co.kr

“이젠 자네와 나 둘뿐일세”

2020.06.16

일제 강점기에 5년 동안 중학교(현 고등학교)에서 고락(苦樂)을 같이한 90여 명의 동기생 중 전화나 새해카드로 연락이 되는 친구가 저를 포함해 세 사람이었습니다. 얼마 전 그 셋 중 하나인 허(許) 형이 전화로 서(徐) 학장의 부음(訃音)을 전해왔습니다.

평생 교육계에 몸 담았다가 정년퇴직 후에도 왕성한 필력으로 많은 저서와 글을 남긴 서 학장은 근년에는 난청(難聽) 때문에 전화 연락을 서로 삼가고 있었습니다. 집은 부산이지만 아들 둘이 있는 서울에도 자주 와 3년 전까지는 꽤 자주 만난 친구였습니다.

서 학장의 별세 소식을 전한 허 형은 “이제 자네와 나 둘뿐일세”라는 비통한 말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집 전화로 걸려온 그와의 대화가 끝나고 수화기를 놓은 후에도 그의 슬픈 목소리가 귓속에서 메아리쳐 한동안 전화기 옆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1970년대에 서유석 씨가 불러 크게 유행한 노래가 있었습니다.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라고 시작되는 이 노래를 저는 그렇게 크게 좋아하지는 많았습니다. 지금도 노랫말은 이 부분밖에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사석 만찬의 여흥시간에 이 노래를 자주 불러 인상에 남아 있습니다. '정주영 씨처럼 돈 많은 사람도 흘러가는 세월은 어쩔 수 없구나' 하고 당시 50대의 저는 그저 남의 일같이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돈 많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지프차를 손수 몰고 조선소 넓은 부지를 한 바퀴 도는 정력적인 분도 세월에는 못 이기는 것이 인생의 진리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 어리석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요즘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소동에 얼마나 고생하느냐고 물어오는 친지가 있습니다. 2년 전부터 보행이 불편해 외출을 많이 못하고 있던 저는 코로나 소동에 별 지장을 받지 않습니다. 원래 외출하지 않고 있으니 마스크를 써야 하는 불편이 거의 없습니다. 가족 외에 접촉하는 외부인사는 주말을 빼고 1주일에 닷새 방문하는 영양보호사뿐이어서 코로나 감염의 위험도 극히 적습니다.

다만 1년에 한두 번 가는 가족 휴가여행을 금년에는 가기 힘들 것 같아 이 코로나 사태의 결과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아이들 셋이 관광 관련 사업에 일하고 있어 많은 타격을 받고 있는 것도 걱정입니다.

‘100세 인생’이라는 새로운 구호에 맞추어 이왕이면 한 3년 더 살아보자는 욕심이 생긴 금년입니다. 일단 3년이라는 기한을 정해놓은 탓인지 세월의 흐름이 더 빨라진 듯 느껴지니 이기주의적인 생각이지요. 한 2주일만 더 가면 올해 하반기가 시작됩니다. ‘아직 6개월이나 남았어’라는 여유 있는 마음이 아니라 ‘벌써 6개월이나 지났어’라는 약간 초조한 마음입니다.

이렇게 목표를 정하고 나니 흘러가는 세월이 전보다 더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하루 24시간을 크게 나누어 ‘허비'하지 않게 조심합니다. 하루 수면시간은 7시간을 넘지 않게 엄중히 관리합니다. 나폴레옹처럼 하루 4시간만 잔 영웅 이야기도 있지만, 7시간의 수면시간이 가장 적합하다는 세계 석학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 자는 시간은 밤 11시에서 새벽 6시까지로 되도록 엄수합니다. 세끼 식사는 아침 7시 반, 오후 1시, 저녁 6시 반으로 정해 꼭 지킵니다. 혼자 사니, 이 정도의 규칙생활은 본인 마음먹기에 달려 쉽게 실행할 수 있습니다.

매 식사시간은 약 1시간으로 소식이지만 오래 씹습니다. 다행히 아직 치아가 튼튼하여 식사에 불편은 없습니다. 아침 식전 약 1시간과 낮 시간 간간이 스트레칭과 가벼운 근육 운동을 합니다. 이밖에는 일정한 시간 규정 없이 가벼운 독서, 텔레비전 시청, 인터넷 검색 등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최근 시력 약화를 많이 느껴, 독서와 텔레비전 시청을 줄이고 대신 신변 정리에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더위가 닥쳐오는 것이 큰 걱정입니다. 지금의 생활 규칙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며 매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이상 갑작스럽게 신체에 큰 변화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과욕인 줄 알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정시에 일어났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