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은 죽지 않는다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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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은 죽지 않는다

2020.06.15

동족 수백만 명을 살상하며 우리 집에도 심대한 피해를 끼친 북한의 6·25 남침 70주년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어떤 형태로도 남침을 사과하지 않았죠. 문득 서가에서 자고 있던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오래전에 모임에서 증정 받아 띄엄띄엄 읽었지만, 저자의 부음을 듣고 다시 펼쳐서 완독했습니다. 농림부 장관, 주월 맹호부대장, 5군단장, 군사정전위원회 한국 대표, 대간첩대책본부장, 합참의장, 주미대사 등을 역임한 작전통이자 군사 외교가인 고 유병현 대장(1924.10.18.~2020.5.21)의 회고록이었습니다.

4년간 병마와 싸우며 아흔의 나이에 완성한 이 책은 국가안보와 자유민주주의가 흔들리는 위기 속에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할 가르침이라고 읽었습니다. 독자마다 느낌이 다르겠지만 나는 세계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말고는 유례없다는 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한 자유 수호의 안보 대계(大計)가 빼어나다고 여겼습니다. 제목이 ‘한미연합사 창설의 주역, 유병현 회고록’입니다. 한미연합사는 미군 감축 속에 태동한 것으로 한반도 유사시 미군이 자동 개입하는 인계철선을 수도권 북방에 유지하려는 것에서 시작된 각고의 산물이었습니다.

미 합참의장 초청으로 방미 출장을 신고할 때에는 독대한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레이건 신임 대통령과의 방미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미국이 바라는 김대중 감형도 고려하겠다는 ‘신춘계획’을 지시 받고 국가 안보와 국민 화합 차원에서 카터 행정부가 전혀 모르게 레이건 정권의 새 실세들을 만나 성사시킨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전임 카터는 인권을 외치며 주한미군 철수를 협박했고 철군에 반대하는 싱글로브 장군을 소환하는 등 한미관계가 최악이었기에 복원이 시급했죠. 일각에선 그를 미국 최초의 종북 대통령이라고 비난도 합니다.

고 유병현 대장은 이 책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국가 안보나 정부 운용의 경험이 전무한 채 오로지 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와 인권 문제, 대북 햇볕정책을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형식적인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언급하긴 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정반대의 행동을 취했다"면서 "그의 군 복무 경력은 근거를 찾기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썼습니다. 1971년 김대중 후보의 대선 유세 날 장충단을 지날 때 군중들이 소장 별 판을 단 자신의 승용차를 발길로 걷어차고 차에 올라타 뒤집으려고까지 했답니다. 아마 군인을 증오하는 유세 내용 탓일 거라고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때 합참의장으로 대북 억지력 유지에 고심했던 그는 당시 3김은 각기 자기만이 집권할 자격이 있다는 듯이 대중과 학생들을 선동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하다가 "마침내 불행한 5·18사태가 발생했고 젊은이들의 희생이 너무 컸다"고 술회했습니다. "당시 법원은 김대중에게 책임이 있다고 사형을 선고했고 대법원판결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신군부는 집권에 성공하자 김대중 극형이 국민 화합에 걸림돌임을 알게 되었으며 해외에서, 특히 심각한 인권 침해로 본 미국에서 카터 정권이 전두환 신임 대통령에게 감형의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고 서술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김대중 구명의 열쇠가 자신에게 주어졌으니 의외라고 말했습니다. 여하튼 국가 반란죄에 대한 증거는 박약하다는 것이 자기 생각이므로 민주사회로의 발전과 나라가 국제적 위신을 지키는 데 그의 구명은 꼭 필요하다고 기록했습니다.

유 대장은 좌파 대통령들이 북한을 바꿔보려고 10년 간 공물(供物)을 바친 햇볕정책과 포용정책으로 "전쟁은 없다." "북한을 적이라 부르지 마라"고 했으나 어떤 비대칭 무기도 삭감시키지 못하고 북한의 전력만 키우며 안보 의식과 국방 태세를 허물었고 종북, 친북 세력의 사기를 높였다고 비판합니다. 노동당 규약이나 주체사상으로 남북통일하겠다는 북한의 위협을 남한 정권이 어떻게 관리하겠는가라고 반문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연합사의 일방적 해체를 미국에 통보하고 전시작전권 환수를 지시한 것은 국가안보상의 이점을 무시한 것으로 한 번도 대규모 전쟁을 주도적으로 치러 보지 못한 나라의 안보 현실을 외면했다는 겁니다. 전시작전권은 미군이 한국군 전체를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연합사 휘하의 부대를 한미 양국 정상이 공동으로 통수하는 것이므로 주권과는 무관하고 나토 사령관은 미군이지만 어느 나라도 국가 주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유 대장은 막강한 미군과 연합작전을 해야 전쟁의 승리가 확보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노 정권은 국방 계획에서 연평균 성장률도 터무니없는 6퍼센트로 보았다고 비판합니다. 임기 중 연평균 성장률은 4.3퍼센트였습니다.

주변 국가들에 대해, 유 대장은 중국은 혈맹 북한을 비호하고 민주주의 해양 세력을 막는 완충지대로 인식하며, ‘6·25가 평화를 지키고자 침략에 대항한 항미원조(抗美援朝)의 정의로운 전쟁(2010년 국가부주석 시진핑)’이 정부의 정론이라고 하니 우리의 국력을 더욱 키워야 중국의 고루한 한반도 정책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러시아는 구소련의 지원을 통한 남침임을 시인했다고 평가합니다. 구소련은 김일성에게 15개 사단 분의 무기와 장비를 지원하고 남침을 승인했죠. 한일 관계는 우호적 개선이 안보를 위해 중요하며 일본은 한미일이 서로 맺은 방위조약으로 우리나라 방위를 위한 후방기지라고 그 중요성을 설명합니다.

6·25전쟁으로 미국은 3만 6,000여 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쳤고 6,910억 달러라는 전쟁 비용을 썼는데 30만 이상의 인명 손실을 입은 중공군 개입으로 목전에서 자유 통일의 꿈이 사라지고 분단된 걸 통탄합니다. 6·25동란 후 북한은 특수군의 1·21 청와대 습격 기도, 울진 무장공비 침투, 8·15 국립극장 박정희 대통령 암살 기도, 미얀마 아웅산 묘소 테러,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금강산 관광객인 주부 박왕자 씨 총격 살해 등 반민족적인 만행을 저질렀다고 규탄합니다.

그는 5군단장 시절 일반 사병의 청음에서 시작된 철원 북쪽 비무장지대의 남침용 제2 땅굴 발견을 주도했습니다. 겉으로는 7·4남북공동성명으로 화해하는 척하면서 대대적인 후방 기습 남침을 준비했다고 비판합니다. 유 대장은 두 차례의 국가 원수 암살 기도는 능히 선전포고의 원인이 될 수도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나는 작년에 이 땅굴을 견학했습니다. 높이와 너비가 각 2미터 정도의 아치 형으로 북에서 3,500미터를 파내려 온 것인데 한 시간에 수만 명을 이동시킬 규모라고 들었습니다.

북한은 대체로 남한이 뭔가를 줄 때는 평화가 온 것처럼 쇼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긴장을 고조시키죠. 얼싸안고 종잇장에 서명한다고 해서 한반도에 평화는 오지는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국제적인 대북제재로 지원이 중단된 요즘이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정부는 단독으로 돌파구를 뚫으려 하나 미국은 남북관계 개선은 비핵화의 전전과 발을 맞춰야 한다고 못 박습니다.

최근 자유를 알려서 북한 동포를 일깨우려는 대북 전단이 평양에도 떨어졌는지 김여정 씨가 발끈하며 전단을 금지하라고 남한에 촉구했습니다. 실정을 덮으려는 내치용인지도 모르죠. DJ의 3남 김홍걸 초선 의원이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발의하자 탈북자 단체는 “북한 정권의 하수인 자처하지 말라”고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탈북자인 통합당 지성호 의원은 "北 주민의 자유와 알권리는 천부의 인권”이라고 기자회견에서 말했죠. 대북전단 살포를 주도해온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박상학 대표는 "이게 우리가 찾아온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맞나"고 항변했습니다. 박 대표는 2013년 북한 인권 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전체주의에 맞서 싸우는 사람에게 수여하는 하벨 인권상을 수상했습니다. 민주화 투사였던 바츨라프 하벨 체코 대통령을 기리는 상입니다.

6·25 때 세계 16개 나라의 청년들이 이름도 낯선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하려고 목숨을 바쳤습니다. 자유와 인권은 1215년 영국의 마그나카르타(대헌장)에서부터 내려오는 정신입니다. 김 의원은 탈북자 민간단체의 활동을 옥죄기에 앞서 북한의 자유와 인권, 개혁과 개방을 위해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의 대표 상임의장으로 뭘 했는지 의문입니다. 미국의 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HRW)’의 필 로버트슨 아시아 담당 부국장은 한국 정부가 대북 전단 살포를 해온 탈북민 단체의 설립 허가 취소를 모색할 것이라고 밝히자 “한국 정부는 북한의 독재적인 지도부를 달래기 위해 민주주의의 가치와 권리를 희생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통일부는 통전부냐는 비판도 나옵니다.  

우리가 자유와 번영을 구가하게 된 것은 이승만 대통령이라는 불세출의 국제정치 전문가가 6·25 전란 중 미국이 꼼짝 못하도록 전시작전권을 유엔군사령부에 이양하며 지구 최대의 강국을 이용해 국가안보에 초석을 놓았기 때문이죠. 전쟁을 억제하고 자유를 보호해온 한미동맹입니다. 지금 방위비 분담을 놓고도 한미가 줄다리기합니다. 얼른 타결해야죠.

경적필패(輕敵必敗). '적을 얕보면 반드시 패한다.' 멀리 못 보는 정치가들의 오만과 착각으로 우리가 자유민주 체제에서 멀어질수록, 기어오르려는 주변 나라가 늘어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한반도 유사시에 누가 우리를 도와줄까요. “싸워서 이기려 하지 말고 전쟁을 예방하라.” 손자(孫子)의 말을 고 유병현 대장은 인용했습니다. 갈대처럼 휘둘리는 요즘의 뭇 군인과 국가의 지표를 상실한 듯한 정치인들을 보며 이 책이 40년 간 봉사할 기회를 준 국가에 대한 보은이라는 참군인의 메시지가 독자들의 가슴에 메아리치기를 기대해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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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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