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지구촌 인구가 100명이라면 [김홍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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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想-지구촌 인구가 100명이라면

2020.06.05

강변의 라과디아공항에는 판사(Judges)와 장애인(Handicapped)· 상원의원(Senitors) 전용 주차장이 따로 있습니다. 나란히 붙어 있지만 법관 주차장이 차를 세우기에 가장 편리하다고 합니다. 장애인과 국회의원보다 법관을 앞세우는 곳은 한국은 물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된 데는 내력이 있습니다.
1930년대 대공황 즈음 연방하원의원과 뉴욕 시장을 세 번이나 연임한 라과디아(Fiorello La Guardia 1892~1947)가 젊은 판사 시절에 내린 명판결 때문입니다.

춥고 배고픈 시절, 한 초라한 할머니가 야간 즉결재판정에 불려 나왔습니다. 사위가 실직, 가출하고 병들어 누운 딸을 대신해 외손녀들을 돌보던 할머니. 어느 날 돈이 떨어져 종일 거리를 헤매다 빵가게에서 빵 한 덩어리를 훔치다 들켜 즉심에 회부되었습니다. 라과디아 판사는 빵집 주인에게 할머니를 용서해 줄 수 없느냐고 물었으나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가게에서 빵을 도둑맞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며, “절도범은 무조건 엄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아무리 사정이 딱하더라도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합니다.” 라과디아 판사는 할머니에게 10달러 벌금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는 이어 “벌금 10달러는 제가 내겠습니다. 그리고 이 비정한 도시에 살고 있는 뉴욕 시민들도 (가난한 사람을 돌보지 않은) 죄가 있습니다. 방청객 여러분에게 50센트씩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판결했습니다. 환한 웃음 속에 그 자리에서 걷힌 벌금(기부금)이 47달러 50센트였습니다. 적어도 1주일은 때울 수 있는 빵값이었습니다.(이우근 변호사 글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주장한 ‘좋은 재판’에서는 더욱 온기 있는 판결을 기대해 봅니다.

# 부의 사회 환원을 실천한 상징적 인물인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Andrew Carnegie 1835~1919). 철강 사업으로 세계적 갑부가 된 어느 날 한 청년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라는 악마가 얼마나 큰 불평등을 만들었는지 장황하게 설명했습니다. 청년은 “카네기, 당신이 내 몫까지 차지한 거요!”라고 소리쳤습니다.
그의 말을 다 듣고 난 카네기는 비서를 불러, 자기의 전 재산을 세계 인구수로 나누어 보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의 몫이라며 16센트를 주어 돌려보냈습니다.

산업혁명 초기 기계공업에 밀려 수직기로 테이블보를 짜던 아버지의 가내공장이 문을 닫자 직공 생활을 하던 카네기는 열세 살 때 가족과 함께 스코틀랜드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신고의 가난을 겪었습니다. 방적공장 노동자, 상선의 기관 조수, 전보배달원, 전신 기사 등 온갖 경험을 했고 남북전쟁에도 종군했습니다. 세계 최고 부자가 된 카네기는 66세 때 모든 기업을 팔아 정리한 후 자선사업에 나섰습니다. ‘많은 유산은 의타심과 나약함을 유발하고, 창조적인 삶을 방해한다’며 부의 대물림을 혐오한다는 소신으로.

1902년 설립한 카네기재단을 필두로 그는 미국과 영어권 국가에 2,500개의 공공도서관을 지어 주었습니다. 워싱턴의 카네기홀과 네덜란드의 국제사법재판소도 그의 기부로 지어졌습니다. 카네기공대 시카고대학 등 12개 종합대학과 12개 단과대학을 지어 사회에 기증했습니다.
‘카네기의 16센트’처럼 모기나 거머리에게 헌혈(獻血)하듯 한 끝에 한 거대 기업이 사라졌다면 후세들은 카네기의 ‘부의 복음’을 향유할 수 있었을까요?

# 전 세계 인구를 100명으로 축소한다면 어떤 세상일까. 미국 스탠퍼드대 의과대학 필립 하터(Philip M Harter) 박사가 '100명의 지구촌‘을 수치로 내놓았습니다. 세계의 인구구성(63억 명 시점 기준)을 토대로 계산한 축소판 지구촌에는 남자가 52명 여자는 48명이고, 출신 대륙은 아시아 57, 유럽 21, 미주 14, 아프리카 8명이었습니다. 100명 중 6명(모두 미국인)이 부의 58%를 차지하고 있고, 자가용 자동차는 7명이 가지고 있으며, 대학교육을 받았거나 컴퓨터 소유자는 1명씩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80명은 열악한 주거환경에 살고 있고, 70명이 글을 읽을 수 없으며, 50명은 영양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형편입니다. 1명이 태아로 뱃속에 있고, 1명은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이 마을에 내가 살고 있다면 어떤 위치일까? 누구나 궁금한 일입니다.
그런데 한국인이 100인 마을 구성원이 될 확률이 6천만분의 1에 이르러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기만큼 어렵습니다. 남북한 통틀어 한국인 단 한 명만이 그 마을에 살 수 있는 꼴입니다.

누가 선택받은 사람이 될까요. 세계 최강 미국을 들었다 놨다 하는 북한의 로켓맨 김정은? 기부왕 문재인 남한 대통령? 아니면 돈병철과 정도령의 후손이나 돈방석에 오른 신흥 인터넷 기업가? 그도 저도 아니면 국회로 진출한 윤미향?
필자에게 지명권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한국인 한 사람을 뽑는 일은 자신이 없습니다. 혹시 동전 1,000개를 던져 같은 면이 나오는 확률로 선택받더라도 나는 100인 마을에 살 생각이 없습니다. 강제로 인구를 추려내 봤자 북새통인 현재 지구촌 모습과 다름이 없을 테니까.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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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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