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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락해도 싸지지 않는 농산물

2020.05.28

감자, 광어, 귤, 마늘, 대파, 무, 우유 등등 산지에서는 가격이 폭락해서 “거저 가져가세요.”라고 내놓거나, 밭을 갈아엎는 경우가 지난 몇 달 동안 많이 있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상황이 더 악화되긴 했지만, 산지의 농산물 가격 폭락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1996년 가을, 배추와 무 밭을 엎어버리던 춘천의 한 농가를 취재한 기억이 있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스튜디오에 어른 허벅지만한 무를 두어 개 들고 나와, “이렇게 농사를 잘 지었는데, 이걸 엎어버리는 농부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서, 호주나 뉴질랜드의 사례를 들면서 정부가 수요와 공급의 세밀한 예측을 통해, 농가에 파종과 수확 시기를 알려줘서 과잉생산으로 인한 농가의 피해를 근본적으로 막아주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 25년이 지났지만 변한 게 없습니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사실 또 하나는 산지에서는 가격이 폭락해도 사 먹는 사람들은 늘 제값을 주고 사 먹는다는 겁니다. 무료로 감자를 나눠준다는 강원도 농민의 이야기가 보도되었을 때, 필자는 마트에서 서너 개가 들어 있는 감자 한 봉지를 3천 몇 백 원을 주고 샀습니다. 1kg짜리 광어의 출하 가격이 7,700원인데 정작 마트에 가면 세 배, 네 배로 가격이 뛰어 있습니다. 가격이 폭락했을 때 소비를 늘리는 데 동참하고 또 평소보다 좀 더 저렴하게 사 먹으면 일석이조라는 생각에 마트를 찾으면 어김없이 뒤통수를 얻어맞는 경험을 합니다. 결국 폭락할 때는 제 돈 주고 먹고, 폭등할 때는 비싸서 사 먹지를 못합니다. 아마, 수십 년 치 신문을 모아서 보면, 농산물 가격의 폭등, 폭락과 관련한 기사가 수천 건은 나올 겁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명절 때, 비축물량을 풀어서 물가상승을 억제해왔다고 강변하겠지만, 그렇게 손쉬운 방법 말고 제대로 된 대책이 없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전 국민에게 긴급 재난 지원금이 지급됐습니다. 나라가 국채를 발행해서 충당했으니, 결국 전 국민이 빚을 내서 받은 돈인 셈입니다. 공돈이 아닌 공돈인데, 이걸 공돈으로 생각하고 물건 값을 올리고 수수료를 받는 상인들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지자체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초기에 이런 폐단을 막고는 있습니다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각종 지원금 명목으로 서민들 손에 돈을 쥐여주고 있습니다만, 그 돈이 돈 가치를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풀어서 경제를 살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서민들이 먹고사는 비용을 낮춰 주는 것입니다. 사 먹는 음식 값은 비싸면 안 사 먹으면 그만이지만, 해 먹는 음식 값이 비싸면 삶의 질이 추락합니다. 우리나라는 해 먹는 음식 값이 비쌉니다. 마늘이 과잉 생산되면 산지에서 폐기를 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수매를 도와 싸게 시장에 풀어 놓아야 합니다. “버리느니 그냥 가져가세요.”라고 춘천의 농부가 감자를 무료로 나누어 주자 1톤의 감자가 하룻밤만에 다 사라졌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저장고에 있던 묵은 감자까지도 사람들이 싸게 다 사 갔다고 합니다. 싸게 팔면 팔립니다.

농가에는 보조금, 도시 서민들에게는 지원금으로 ‘돈’을 풀어주는 건 하수 중의 하수입니다. 마늘 값이 폭락했다고 밭을 갈아엎는 데 지원금을 줄 것이 아니라 그 마늘을 소비자에 연결하는 데 돈을 쓸 생각을 해야 합니다. 모르긴 해도 폭락과 폭등의 파도 속에서 엄청난 이득을 챙기는 봉이 김선달이 아직도 존재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괴이한 일의 반복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빅 데이터의 시대입니다. 유튜브에 하루에 올라오는 동영상의 양이 80년 치가 된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평생 먹지도 자지도 않고 유튜브 영상을 봐도 하루에 올라오는 양을 다 보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도 유튜브는 모든 유저들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어제 본 영상과 그동안 보아 온 영상을 토대로 개인의 취향을 파악해서 흥미를 느낄 만한 영상을 첫 페이지에 배치해줍니다. 필자는 유튜브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부분은 칭찬해 줄만 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퇴근길 집 근처 마트를 지나갈 때, “집에 생수가 떨어지지 않았나요? 1+1행사를 놓치지 마세요.”라고 휴대폰 알림이 옵니다. 소비자의 생수 구매 주기를 파악해서 마케팅에 활용하는 겁니다.

이렇게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데, 왜? 농산물 가격의 산지와 소비자 사이의 괴리는 여전한 걸까요? 물류비용 때문이라고 이야기를 할 지 모르지만 이 좁은 나라의 감자 가격이 미국의 감자 가격보다 항상 더 비싼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면, 이 또한 바로잡아야 하는 일입니다.

미국은 대량 생산을 하니 산지 가격이 싸기 때문이라고 얘기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럼 산지에서 폐기하는 우리나라의 감자 가격이 마트에서는 왜 그리 비싼 건가요?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기본 농산물의 가격은 산지에서는 안정적이어야 하고 도시 서민들은 반드시 지금보다 싸게 사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25년 전에는 “농산물 유통구조가 너무 복잡해, 폭락과 폭등을 사전에 컨트롤할 수 없다.”라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걸로 느껴집니다. 코로나를 성공적으로 방역하고 있는 정보력과 행정력을 가진 우리나라가 아직도 한쪽에서는 농산물을 갈아엎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걸 비싸게 사먹는 걸 방치한다는 것이 우습습니다.

“농산물을 폐기하는 일이 없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서민이 지금보다 싸고 안정적으로 식재료를 공급받을 수 있게 하겠습니다.” 이런 공약이 나오면, 다음엔 그 후보를 선택할 생각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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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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