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라고 읽고 문예라 쓴다(中 문예와 예술) [한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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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라고 읽고 문예라 쓴다(中 문예와 예술)

2020.05.21

예술이 추구하는 목적이 아름다움이라고 해서, 아름다운 것은 무조건 예술이라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여행지 같은 곳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볼 때 보통 ‘예술적’이다, 혹은 ‘예술 같다’라고 합니다. ‘예술적’이라는 것은 자연적 현상일 뿐 ‘예술’은 아니라는 방증입니다.

‘예술적’으로 보인다는 것은 예술가의 ‘창조’가 개입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풍광이 예술처럼 보인다는 말입니다. 기왕에 있는 아름다운 자연에 예술가의 사상이나 생각을 덧붙여서 새롭게 창조해 낼 때 비로소 ‘예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술가는 두 개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이성과 논리가 필요한 현실 세계와 무한한 상상력을 허용하는 ‘창조’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현실은 흐르는 시간과 동행을 하지만, ‘상상의 세계’는 얼마든지 무한 반복이 가능합니다. 현재에서 과거로, 현재에서 미래로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술이 추구하는 이상은 아름다움입니다. 플라톤은 아름다움[美]의 본질은 사랑[愛]이며, 사랑은 그리움과 그리움이 합쳐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움은 어떤 대상을 좋아하거나, 곁에 두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어 애타는 마음입니다. 그리워 애타는 마음이 서로 합쳐져서 마침내 결합을 했을 때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아이는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눈이 맑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면 지혜가 생기고,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아이의 눈이 아름다운 이유는 세상의 옳고 그름에 오염되어 있지 않고 ‘순수’하기 때문입니다. 순수하다는 것은 진실하다는 것이고 진실하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모든 예술이 그러한 것처럼 문예도 오직 사람을 위해 존재합니다. 시인이나 작가의 작품이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때는 사랑이 드러날 때입니다. 그 사랑은 현실에 오염이 되어 있지 않은 플라톤의 ‘사랑’이어야 합니다.

사람은 사춘기 무렵에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은 ‘첫사랑’입니다. 그래서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결혼을 한 영어 선생님에 사랑에 눈이 멀어지고 애달파합니다. 이성적인 눈으로 보면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지만 아무런 조건이 없는 맹목적인 사랑이었기에 이성은 철저하게 무시됩니다.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첫사랑이 이루어 질 수 없는 원인입니다.

문예를 문학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첫사랑에 빠진 소녀에게,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방법을 강제로 주입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스스로 첫사랑의 기억을 아름답게 간직하며 이별의 아픔을 자연스럽게 치유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사랑에 대한 편견을 없앨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순수한 사랑은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과 같아서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습니다. 문예 작품도 순수한 사랑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지향을 하면,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가 있습니다.

조병화 시인은 “좋은 시는 쉬워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김동리 소설가는 “좋은 소설은 가장 한글로 된 소설이다”라고 했습니다. 두 분의 공통적인 면은 시든 소설이든 쉬워야 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이 매미 허물은.
-마쓰오 바쇼 ‘매미’
소설은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를 예로 들수 있습니다. 이 작품들은 쉽게 읽히면서도 짙은 감동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쉽게 글을 써야 쉽게 읽히는 것은 아닙니다. 쉽게 쓰는 글은 자칫 주관적 편향에 젖어서 독자와의 공감대 형성이 멀어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는 천 마디 화려한 수식어보다 "사랑해"라는 지극히 평범한 한마디가 일생의 운명을 가를 수 있습니다. 순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진실은 모든 예술 창작의 혈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진실할 때 그 힘이 위대해지는 것처럼, 문예 작품도 진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때 독자들과의 공감대 형성이 빠릅니다. 진실을 바탕으로 글을 쓰려면 시인이나 작가가 추구하는 작가 정신에 타인의 입김이 서려 있지 않아야 합니다. 예컨대, 자유스러운 정신으로 창작을 해야 합니다.

진달래를 화폭에 그리고, 진달래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방법보다 진달래의 아름다움을 글로 묘사하는 쪽이 훨씬 어렵습니다. 그림과 음악은 어떠한 형태이든지 진달래의 특징을 알려주지만, 글은 진달래와 전혀 다른 형태를 보여주어도, 독자들이 진달래로 인식을 하게 써야 합니다. 그림이나 음악은 기교적인 측면이 강해서 단체 교육이 가능하지만, 문예는 시인이나 작가 개인의 작가 정신을 앞세워야 하는 까닭에 단체 교육 효과가 약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현재의 문예 창작 교육에서 예술의 기본을 앞세우지 않고, 학문적 이론을 앞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회에는 ‘문예창작의 예술적 접근 방법’에 대해서 언급하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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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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