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룡소의 대성쓴풀 [박대문]



www.freecolumn.co.kr

검룡소의 대성쓴풀

2020.05.20

.

 대성쓴풀 (용담과) 학명 Anagallidium dichotomum (L.) Griseb.

화사하고 부드러운 5월의 햇살이 온 천지에 가득합니다. 갈색빛으로 뒤덮인 황량했던 산천이 부드럽고 해맑은 담록빛 새 세상으로 바뀌어갑니다. 새 움이 돋아 새 잎새 사이로 드러나는 하늘빛도 곱습니다. 진하고 강한 초록보다 여린 듯 부드럽고 맑은, 녹음(綠陰) 직전의 담록(淡綠)의 새 이파리들이 현기증 나게 밝고 화려합니다. 잎새 사이로 스며드는 빛살 따라 역광으로 비추는 담록의 신비감에 젖어 들면 가슴에 솟구치는 벅찬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희한한 역병에 이제껏 살아온 일상이 변했습니다. 친한 벗과 만남도 자제해야 하고 다중의 장소에는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오갈 수 없는 답답함이 오월에도 지속합니다. 이러한 시기에 담록의 숲길을 호젓하게 걷는다는 것은 참으로 오지고 즐거운 나들이입니다.

마력과 같은 오월의 햇살을 온몸으로 즐기며 경이롭고 신비한 태백의 검룡소(儉龍沼)를 찾아갔습니다. 검룡소는 한강의 발원지입니다. 이곳에서 용솟는 물줄기가 514km의 물길을 굽이굽이 이어가며 민족의 젖줄, 한강을 이룹니다. 바위 틈새에서 솟아나는 물이 하루 2~3천 톤이나 되는 한강의 시발지인 태백 검룡소(儉龍沼), 지명에 소(沼)가 붙었지만 옹달샘이나 다름없는 작은 샘터입니다. 그런데도 그 많은 양의 물을 사시사철 끊임없이 뿜어내니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함이 깃들어 있는 곳임이 틀림없습니다. 작은 샘터에서 솟구치는 물살은 유구한 세월에 걸쳐 석회석 암반을 침식해 마치 용이 꿈틀대며 암반 위를 기어가듯 물줄기가 흘러내립니다.

이토록 신비한 검룡소 물줄기가 흐르는 계곡 기슭에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진귀한 풀꽃이 자라고 있습니다. 이곳 검룡소를 찾아온 이유도 바로 이 풀꽃을 만나기 위한 것입니다. 그 풀꽃은 바로 멸종위기종 2급인 대성쓴풀입니다.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 물줄기 기슭에서 천릿길 이어가는 한강처럼 세세연년 꽃을 피우며 대를 이어온 풀꽃입니다. 해발 1,000m가 넘는 태백 검룡소 주변은 이제 막 초목이 새 움을 틔우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자라는 대성쓴풀은 세상을 생명의 빛으로 곱게 물들이는 오월의 햇살 아래 여느 다른 풀꽃보다 일찍 깨어나 앙증맞고 청초한 작은 꽃을 피웁니다.

.

 금대봉 기슭의 검룡소 물줄기 곁에서 자라는 대성쓴풀

대성쓴풀은 높이 10cm 내외의 매우 작은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줄기는 비스듬히 서고 네모지며 연약하고 황록색을 띱니다. 잎은 난형(卵形)이며 서로 마주납니다. 5~6월에 가지와 줄기 끝에 4개의 자줏빛 수술이 달린 하얀 꽃이 피며 꽃잎에 오밀조밀한 청잣빛 점선 무늬가 있습니다. 앙증맞게 귀엽습니다. 꽃잎의 수술대 아래쪽에는 미세한 굽은 털이 있으며 열매는 삭과로 난형입니다. 잎의 크기는 2~3cm, 꽃은 잎보다 훨씬 더 작습니다. 주로 등산로 옆의 계곡 기슭에 자라는데 주변을 잘 보존하여 풀이 무성하면 풀에 치어 생존이 어렵습니다. 그대로 두면 등산객 발길에 치어 훼손이 되는 종(種)으로 약간의 생태 간섭이나 교란이 있어야 하는 까다로운 생육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성쓴풀은 만주, 몽골, 시베리아, 중앙아시아에 분포하는 북방계 식물로서 북한에서도 보고가 되지 않은 풀입니다. 이 풀이 1984년, 북한도 아닌 강원도 태백에서 발견되었으니 매우 이례적인 현상으로서 수수께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처음 발견되기 이전까지는 이름 없는 미기록종으로 자라온 대성쓴풀은 그 이름의 유래도 흥미롭습니다. 최초로 이름을 붙인 강원대 이우철 명예교수님은 당시만 해도 검룡소가 있는 금대봉이라는 산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선 쪽 산자락에 대성초등학교가 있음에 연유하여 임의로 금대봉을 대성산이라 부르고 이곳에서 발견했다 하여 풀 이름도 대성쓴풀이라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당초의 취지대로라면 금대쓴풀이 되어야 했는데 잘못 붙여진 이름인 셈입니다. 그때만 해도 까마득한 옛날 같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성쓴풀은 차가운 겨울 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이른 봄, 이제 막 새 움이 돋는 삭막한 숲길에서 서둘러 싹 틔워 하얀 꽃을 피워 올립니다. 이 땅에 있는지조차 모르게 홀로 자라다가 이름마저 제대로 갖지 못한 채 알려진 귀한 꽃입니다. 찬바람 속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드는 봄 햇살을 감지덕지 받아들여 연약한 황록색 줄기에 매우 작은 꽃을 피워 대를 이어왔습니다. 녹음이 짙어지면 덤불에 묻혀 있는지조차 모르는 작은 꽃이기에 가느다란 햇살이나마 먼저 받아들여 일찍 꽃을 피워야 한다는 생존술을 터득한 꽃입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쓴맛을 지닌 쓴풀의 종(種)입니다. 하지만 꽃잎 갈래 조각 밑에는 황갈색의 둥근 꿀샘이 있습니다. 개미에게 달콤한 꿀을 주고 꽃가루받이를 하는 서로 돕기의 수단입니다.

우리나라 북부지역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그보다 훨씬 더 북쪽인 만주, 몽골, 시베리아에 분포하는 종(種)이 태백의 깊은 산속에서 외로이 자라며 천릿길 이어가는 한강 줄기처럼 끈질긴 생을 이어온 대성쓴풀을 보며 생각해봅니다. 이름이 있건 없건, 그 이름이 잘 되었건 못 되었건 상관없이 환경에 맞게 적응하고 생존법을 익혀 나름대로 삶을 이어가는 모습이 아름답고 장해 보입니다. 이름도, 태어난 곳도 탓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연의 섭리에 따라가는 순리의 생을 살기 때문이라 여깁니다. 이름과 태생지보다는 순리에 따라야 하는 것이 자연의 세계입니다. 가당치도 않은 말을 억지로 끌어다 대어 자기주장에 맞추려 드는 작금의 우리 사회가 배우고 고쳐 나가야 할 기본도 바로 순리입니다. 민주, 통합, 정의라는 정당(政黨)의 이름은 그럴듯하지만, 그 당(黨)에 바로 민주, 통합, 정의가 쏙 빠진 것 같은 우리 사회입니다. 당명(黨名)이 무색하게 이름값도 못 하고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대성쓴풀 앞에 서니 더더욱 그러해 보입니다.

(2020. 5. 7 검룡소의 대성쓴풀을 보며)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가 있다.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