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누구 주머니에서 꺼내 메울 것인지 문제 논의해야 할 것.”...세계최대 헤지펀드 창업자

"코로나로 천문학적 돈 푼 정부, 누가 메울거냐...다음세대? 증세?"


세계최대 헤지펀드 창업자 레이 달리오 단독인터뷰

코로나 사태의 천문학적 돈풀기 끝나면

누구 주머니에서 메울건지 깊은 논의 필요


   “결국 누구 주머니에서 꺼내 메울 것인지의 문제를 논의해야 할 겁니다.”


레이 달리오(Ray Dalio·71) 브리지워터 창업자 겸 회장은 지난 6일 본지와의 단독 화상 인터뷰에서 “코로나 사태로 각국 정부가 천문학적 돈 풀기에 나섰지만, 이 돈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생산하거나 고용을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제주체들이 당장 무너지지 않게끔 하는데 쓰일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이후 경제활동 수준은 우리가 코로나 사태에서 얻은 경험을 통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달려 있지, 돈을 풀어서 보장 받을 수 있는게 아니다”라고 했다. 달리오 회장은 “결국 이번에 푼 돈의 비용을 나중에 누가 지불할 것인가, 즉 다음 세대에게 넘길 것인가 아니면 증세할 것인가 등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달리오 회장은 또 “내가 한국의 최종 의사결정권자라면, 한국이 처한 경제 상황을 냉정히 분석하는 데 가장 신경을 쓰겠다”고 했다. 정부는 돈을 풀든 새 정책을 쓰든 정확한 목표를 정해야 하며, 가용 정보를 총동원해 현재 상황을 분석한 뒤 큰 그림을 그리는 게 먼저라는 의미다.




그는 “한국이 통화·재정정책을 충분히 쓰지 않으면 경제 주체들이 무너질 수 있겠지만, 과도하게 사용하면 오히려 국가 전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기 때문에 달러 등 다른 기축통화 움직임에 크게 좌우된다”며 “코로나 사태 이후 한국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꼽는다면 바로 불황에 환율급등 같은 외환 위기가 더해질 가능성”이라고도 말했다. 미국 등 기축통화를 가진 나라가 돈을 푸는 것과 한국처럼 기축통화를 갖지 못해 환율변동에 크게 좌우될 위험을 가진 나라가 돈을 푸는 것은 다르며, 잘못하면 외환위기에 취약한 한국 같은 나라가 훨씬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달리오 회장은 이번 인터뷰에서 코로나 사태 이후 한국이 정책 등을 통해 돈을 쏟아붓기에 앞서, 현재 상황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즉 지금 한국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각 경제주체 가운데 코로나 사태를 버텨내고 이후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곳은 어디인지, 코로나 사태가 아니더라도 경쟁력이나 생산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곳에 헛돈을 쏟아부어 한국 전체의 ‘대차대조표’를 망가뜨릴 가능성은 없는지 등을 면밀히 살펴, 코로나 사태 이후 한국의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한국이 어떤 사람, 어떤 회사, 어떤 나라가 이번 위기를 버틸지, 어떤 종류의 수입·지출이 대차대조표에 가장 영향을 줄지, 어떤 완충 장치가 가능할지를 모르면, 핵심 산업을 잃고 정치 소용돌이에 휘말려 결국 경제적 재앙에 빠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달리오 회장은 “한국은 다른 여러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라며 “위기를 잘 넘기면 이후에 더 큰 기회를 얻을 가능성도 충분하다”고도 했다.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회장이 웹 서미트에서 연설하는 장면.


달리오 회장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2010년 재정위기 등을 예측해 큰 수익을 낸 것으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일은 반복해 일어나기 때문에, 과거 사례를 연구하면 패턴과 인과관계를 이해하고 위기에 대비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금융위기의 역사 분석에 컴퓨터 기반 의사결정과 고도의 수학 모델을 접목, 이를 통해 상관관계가 적은 다양한 자산에 특정한 조합으로 분산투자하면 위험을 줄이면서도 수익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이 이론을 브리지워터 투자 상품에 적용해나가면서 큰 금융위기를 예측하고 돈을 벌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스물여섯이던 1975년 뉴욕의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서 브리지워터를 창업, 운용액 1600억달러(약 195조원), 직원 1500명의 세계최대 헤지펀드 회사로 키웠다. 뉴욕 출신인 그는 재산이 187억달러(약 23조원)로 올해 블룸버그 선정 세계 79위 부자이다.




달리오 회장은 1949년 미국 롱아일랜드에서 재즈연주자이자 2차대전·한국전쟁 참전군인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골프장 캐디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12세 때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10대 때는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고, 남의 말을 잘 안들었지만, 독립적인 사고를 하고 한번 관심을 가진 일에는 무섭게 집중하는 성격이었다. 친구들은 그의 고교 졸업 앨범에 헨리 소로우의 ‘월든’에 나온 문구를 써줬다. ‘그가 그의 음악에 발맞추도록 내버려 둬라. 그 음악이 박자가 어떻게 맞춰졌든, 아무리 멀리서 들리든 말이다.’ 그는 지역의 롱아일랜드컬리지를 다닌 뒤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달리오 회장은 “나를 롱아일랜드의 평범한 소년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만든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체계화된 의사결정 시스템이 만들어낸 접근법과 원칙들”이라고 말한다.


삶이나 경영·투자에서 왜 원칙과 투명성, 일관성이 중요한지, 왜 의사결정을 시스템화하는 것이 개인에게 기대는 것보다 좋은 결과를 내는지 등에 대해서는 그가 2017년 출간한 책 ‘원칙(Principles)’에 잘 소개돼 있다.


달리오 회장은 “코로나는 경기침체를 더욱 재촉하는 재료일 뿐이며, 코로나와 상관 없이 세계를 침체로 이끌 세가지 이슈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달러가 지배하는 무역·신용 거래의 종말, 광범위한 부의 격차, 기존 패권(미국)에 도전하는 새로운 힘(중국)을 꼽았다. 그는 “바이러스는 사라지겠지만, 이 세 가지는 계속 남아 국제적 갈등을 낳게 될 것”이라고 했다.


-세계경제에 어떤 변화가 예상되나.

“미국·유럽 등은 기준금리가 제로(0)이고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지만, 원하는 곳으로 충분히 돈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돈이 풀린 혜택은 결국 신흥국보다 선진국에 돌아갈 것이다. 또 채권이 부의 저장 수단으로서 가치를 유지할지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실질 이율이 마이너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금 역시 안전한 자산은 아니다. 지금은 코로나가 단기적으로 기업 영업이익 등에 악영향을 주면서 현금 수요가 늘었지만, 중앙은행마다 채권을 사들여 이자율이 하락(채권값 상승)하면 현금 가치는 떨어진다.”




-포퓰리즘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데.

“포퓰리즘은 1930년대에도 유행했다. 부의 격차가 심해지면 국민은 강한 지도자, 포퓰리스트를 열망하게 된다. 왜 지금 포퓰리즘이 극좌와 극우로 더욱 심하게 갈리는지, 왜 더 국수주의적·보호주의적이 되는지는 과거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왜 포퓰리즘을 막지 못할까.

“포퓰리즘은 경제적 박탈감을 느끼는 인구의 비중과 관련이 있다. 나는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고, 전세계에서 포퓰리즘 물결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포퓰리즘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나는 미국인 소득을 5등분하고 각각 그들이 처한 상황을 분석해 봤다. 그 결과 미국 경제는 상위 40%의 ‘가진 자’와 하위 60%의 ‘못 가진 자’로 쪼개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부의 격차 확대로 ‘못 가진 자’의 비중이 늘어났다. 그 결과 미국 사회가 포퓰리즘을 원하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이 시국에 개인투자자는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투자로 크게 성공하는 것은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는 것보다 어렵다. 우리는 투자를 더 잘하려고 매년 수억달러를 쓰는데도 정말 어렵다. 개인투자자가 하는 큰 실수는 최근 투자 성적이 좋다고 해서 좋은 투자처라 여기는 것이다. 그게 고평가돼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최악은 투자 자산의 가격이 급락했을 때 시장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가격이 저렴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전 세계 부의 총량이 거의 변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가 올라가면 다른 하나가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개인투자자도 금융상품 종류와 국가·통화별로 자산을 나눠 투자하는 게 중요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미·중 충돌이 다시 거세지고 있는데.

“중국이 미국보다 더 빨리 발전하고 있는 것이 양국 충돌의 근본 이유다. 중국이 미국보다 더 강해질 가능성이 존재하는 한,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미국의 중국 때리기는 더 심해질 것이다. 한국은 미국이 재편하는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미·중 가운데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가 계속 과제가 될 것이다.”




달리오 회장은 또 “중국이 미국보다 더 빨리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미·중 경쟁이 협력적으로 바뀌기보다 더 적대적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중국이 미국보다 더 강해질 위험이 존재하는 한, 중국 때리기는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이 의견일치를 보는 거의 유일한 안건이 될 것이며, 미국의 중국 때리기는 점점 더 강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우선 무역·기술·지정학·자본의 4가지 경제전쟁이 더 심해질 것으로 봤다. 또 “현재의 미·중 충돌은 미·일이 충돌했던 1931~1941년을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당시 미·일의 경제적 충돌은 결국 전쟁으로 번졌고, 이후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재편이 있었다. 그는 “이번에도 전쟁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중이 충돌하면서 모든 나라들이 다른 나라로부터 차단·배제되지 않을까를 걱정하고 이를 막아야 하는 시대가 됐는데, 코로나사태로 이게 더 가속화될 수도 있다고 했다. “국가간 동맹(alliance)의 재편이 일어날 수 있다. 우리는 곧 선택의 순간을 봐야 할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달리오 부회장은 지난 40년간 중화권 정치·경제인과 깊이 교류했다. 그는 생전의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좋아하는 대화 상대 중 한 명이었다. 리콴유는 달리오 회장이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그는 리콴유와 좋은 지도자, 나쁜 지도자에 대해서도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지도자는 자신이 직면한 환경 속에서 판단받아야 한다”는 리콴유의 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국가를 잘 이끈 지도자를, 그렇지 않은 환경에 있는 지도자와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면 안된다는 것. 리더십의 좋고나쁨을 판단할 때는 그 지도자가 처한 환경을 반드시 봐야 한다는 얘기다. 달리오 회장은 중국을 자주 방문하는데, 방문할 때마다 왕치산 중국 국가부주석과 만났다. 그는 왕치산 부주석을 “역사가이자 최고의 사상가인 동시에 매우 실용적인 인물이다. 그는 시간을 넘나드는 관점으로 현재를 보고, 더 가능성 있는 미래를 더 분명하게 내다본다”고 평가했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달리오를 친중(China Lover)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달리오 회장은 이에 대해 “내가 중국의 장래를 긍정적으로 얘기하면 ‘저 사람은 친중, 우리의 적’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내가 만났던 세계의 권력자·정부관료들 중에는 논리의 질에 기반해 결정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특정한 어젠다를 갖고, 자신들만의 전쟁을 하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나는 심사숙고된 의견의 불일치가 갖는 힘을 믿는 사람이다. 옳은 답을 내기 위해 집단지성을 활용하는, 열려 있고 사려 깊은 반대 의견이 갖는 힘 말이다”라고 말했다.


-요즘은 어떤 진영 다수의 의견에 반대되는 얘기를 하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양쪽 의견을 둘 다 살펴보고 서로 협력하자는 의견은 오늘날도 그렇고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유약한 의견으로 여겨지고 혹은 위협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어떤 쪽이든 한 쪽을 택할 것을 요구 받는다. 그래서 의견을 말하기가 쉽지 않다.”




-미·중 경제 전쟁은 어떻게 발전돼 나갈까.

“무역·기술전쟁에서 시작해 지정학적 전쟁, 그리고 자본전쟁까지 발전해 나가지 않을까? 기술전쟁의 경우, 중국이 아직 미국 기술에 의존하는 부분이 있어 단기적으로는 불리하다. 그러나 데이터기술 연구 등에서 중국이 미국보다 개인 정보 제한 등 제약이 적다는 점 등에서 장기적으로는 중국이 유리할 수 있다.”


-달러와 위안화의 미래는.

“지금은 달러 수요가 많아 단기적으론 강세이지만, 3년짜리 시간표로 본다면 금이나 다른 자산보다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 달러·유로·엔 등 기존 기축통화는 기준금리가 제로인 데다 모두 엄청나게 돈을 찍어대고 있다. 반면 위안화는 점차 영향력이 확대될 것이다. 중국은 아직 이자율을 낮춰 대응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그에게 한국에 하고 싶은 말을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나왔다. 첨단기법으로 전세계 금융사례와 경제지표 등을 분석해 투자를 결정하는 세계최고의 하이테크 헤지펀드 회사를 만들어낸 인물이지만, 그는 한국의 매력으로 ‘사람의 힘’을 얘기했다.

“저는 투자국을 평가할 때 교육 수준과 시민의식, 신기술 창조·활용력 등 세 가지를 봅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아주 매력적입니다. 기축통화국이 아니어서 환리스크가 높다는 약점은 있지만, 한국의 뛰어난 세 가지 장점은 이 험난한 시기를 헤쳐나갈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되어줄거라 생각합니다.”

최원석 기자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10/2020051002156.html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