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실업통계 발표 앞두고 "전국민 고용보험" 빨간불


최악 실업통계 발표 사흘전..다급한 文 "전국민 고용보험"


   사흘 후(13일) 통계청은 4월 고용동향을 발표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을 반영한 최악의 실업 통계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고용 통계 발표를 목전에 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전 국민 고용보험을 공식화했다.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다. 문 대통령은 “고용보험 적용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고, 국민취업지원제도를 시행해 우리의 고용안전망 수준을 한 단계 높이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방향도 제시했다. “아직도 가입해 있지 않은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보험 가입을 조속히 추진하고,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예술인 등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빠르게 해소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관계자들이 1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로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열린 '2020년도 세계노동절 서비스노동자 특별 기자회견'에서 재난시기 해고금지 및 생계소득 보장 촉구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뉴스1


1995년 7월 출범한 고용보험의 틀 자체를 바꾸는 작업이다. 현행 고용보험은 근로계약을 맺고 있는 사업주와 근로자를 주 대상을 한다. 사업주와 근로자가 보험료를 반반 부담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사각지대가 컸다. 자신이 사업주(자영업자)이거나, 사업주가 다수이거나 불명확한 사람들(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예술인 등)은 고용보험 울타리 밖에 있었다. 올 3월 기준 고용보험 가입자 수(피보험자 기준)는 1378만2000명으로, 전체 경제활동인구(2778만9000명)의 절반도 안 된다.




2012년부터 자영업자도 고용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보험료를 전액을 혼자 부담해야 한다는 이유로, 소득이 노출되는 게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가입률은 저조하다. 고용보험에 가입한 자영업자 인원은 2만4731명으로 전체 고용보험 가입자의 0.2%를 차지할 뿐이다. 국내 전체 자영업자 553만7000명(3월 기준) 가운데 고용보험 가입자 비율도 0.4%에 불과하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관계자들이 1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로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열린 '2020년도 세계노동절 서비스노동자 특별 기자회견'에서 재난시기 해고금지 및 생계소득 보장 촉구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뉴스1



고용보험은 말 그대로 보험이다. 지금 돈을 벌고 있는 근로자가 직장을 잃거나 휴직해야 할 때를 대비해 돈을 미리 모아놓는 개념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을 시행하려면 ‘전 국민 고용보험료 징수’란 난수표부터 풀어야 한다. 하지만 이날 문 대통령의 연설에서 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현행 고용보험료는 기본적으로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지급한 급여를 기준으로 책정된다. 급여 액수를 파악하기도 쉽고, 보험료를 거두는 것도 간단하다. 그러나 1대1 근로계약 체계에서 벗어나 있는 자영업자,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예술인 등은 벌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소득과 재산을 기준으로 보험료가 책정되는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를 둘러싸고 형평성 문제가 끊임없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고용보험까지 논란의 대상이 될 처지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고용보험 확대의 필요성은 코로나19를 계기로 확인이 됐다”면서도 “전 국민 고용보험이란 이름값에 걸맞은 청사진, 설계도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고용보험료를 올리거나 보험료 징수 기반을 급여에서 소득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할 텐데 이것부터가 첨예하게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라며 “현실화하는 데까지 장벽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정부와 청와대도 이런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이 아닌 ”전 국민 고용보험시대의 기초를 놓겠다”고 말한 배경이다. 문 대통령도, 여당도 전 국민 고용보험을 당장 적용하기보다는 단계적 확대에 방점을 뒀다.


대신 문 대통령은 “한국형 실업부조제도인 국민취업지원제도도 조속히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일자리를 못 구한 사람에게 50만원씩 6개월간 지원하는 제도다.




일종의 차선책인데, 이 역시 고민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단 6개월의 취업 훈련, 월 50만원의 지원금이 어느 정도의 실효성을 낼 수 있느냐가 우선 논란이다. 또 국민취업지원제도는 주로 고용보험 혜택 밖에 있는 취업 준비생, 장기 실직자를 대상으로 한다. 고용보험료를 성실히 납입한 근로자와의 형평성, 선진국 실업 부조의 단골 부작용으로 꼽히는 도덕적 해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도 과제다.


전 국민 확대에 앞서 현행 고용보험 내에서도 보수해야 할 구멍은 많다. ▶부족한 고용 유지에 대한 혜택 ▶월 60시간 초단시간 근로자 제외 ▶선진국 70%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45% 소득 대체율 ▶북유럽 39~44개월과 비교가 되지 않는 6개월 직업 훈련 기간 등이다.


2년째 적자를 보고 있는 고용보험기금 누수 문제도 마찬가지다. 고용보험기금은 지난해에만 2조원 넘게 적자가 났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용보험료를 자발적으로 안 내거나 낼 능력이 없는 계층까지 제도의 틀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건데 이로 인한 눈덩이 적자, 재정 폭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부터 얘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 안전망 확충에 앞서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경제 활력을 높이는 것이 더 근본적인 처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자칫하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대통령 특별연설에 대해 '적절한 방향'이라고 평가하면서 "낡은 법제 개선, 선진국 수준의 인센티브 체계 마련 등 민간 역동성 회복을 위한 근본적인 조치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기업이 일자리 문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선제적이고 과감한 제도적 지원과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밝혔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중앙일보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