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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정필례 선생님

2020.05.11

초등학교=정필례, 우문자, 승◯◯, 심희택-이태수, 유영팔, 전병선. 중학교=박영희, 박영희, 노재찬. 고등학교=박종렬, 박흥서, 홍순태. 이상 열두 분이 나의 담임 선생님입니다. 이름만 세면 열세 분이지만, 초등학교 4학년 1학기와 2학기 담임이 다르고, 중학교 1, 2학년 때는 같은 분이 계속 담임을 하셔서 열두 학년에 열두 분입니다.

이 중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선생님은 각각 한 분씩 돌아가셨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아마도 거의 다 고령으로 돌아가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대학의 우리 학과 은사 다섯 분 중에서는 최근 한 분이 또 돌아가셔 이제 한 분만 계십니다.

초등 3학년 담임은 3학년으로 올라간 지 얼마 안 돼 돌아가시는 바람에 유일하게 이름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출산 후 곧 돌아가신 것 같은데, 날계란을 먹어 잘못됐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무슨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어른들이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출근하지 못할 때, 임시 담임교사가 급장인 나에게 문병을 가라고 해서 학교 앞 선생님 집(아마 하숙이었던 듯)에 찾아간 일이 있습니다. 산후조리 기간이었겠지요. 먼발치에서 보니 선생님이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으며 골똘히 화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무 뒤에 숨어 지켜보는 동안 그 모습이 너무도 낯설고 이상하고 무서워서 그냥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임시 담임교사가 가르쳐주신 인사말을 수없이 외우고 갔는데도.

나는 그때 몹시 수줍었습니다. 1학년 정필례 선생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그 선생님은 광대뼈가 약간 나왔지만 얼굴이 시원한 미인이었고, 학교 행사 때 풍금을 도맡아 치시던 분입니다. 1학년 마치고 2학년으로 올라갈 무렵, 선생님은 2학년 담임으로 정해진 우문자 선생님께 내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침 근처에 있던 내가 눈에 띄었던 모양입니다. 정 선생님이 “애가 수가 좁아.” 그러자 그분보다 젊은 우 선생님(당시 계룡초등학교 최고 미인)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나는 그때 수가 좁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다만 그 말을 할 때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선생님의 눈길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2학년에 올라가서는 수줍기는커녕 친구들과 장난(주로 교실에서 안고 뒤지기)을 너무 많이 쳐 내 인생에 전무후무하게도 ‘주의가 산만하다’는 나쁜 기록을 통지표에 남겼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우 선생님은 날 싫어했던 거 같습니다. 얼굴이 예뻐서 매사 남자들의 눈길만 의식할 뿐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을 보는 눈이 없었던 탓이라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4학년 때가 최악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초등학교 동기(그러니까 두 분 다 나의 초등학교 선배)인 선생님은 왕년에 라이벌이었던 친구의 아들을 엄격하게 대하는 걸 넘어 매일 못살게 닦달했습니다. 친구의 아들이니 더 잘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었는지 몰라도 친구한테 당한 걸 그 아들에게 갚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나는 선생님이 이상해 보였고, 학교가 지옥같이 가기 싫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나를 본보기로 삼아 벌주고, 싫어하는 산수 문제를 풀지 못하면 그것도 모른다고 혼내고, 신체검사할 때 교수 아들이 이게 뭐냐, 목간도 안 하고 사냐며 등짝을 때리고(다른 애들은 더 더러운데!) 그러니 학교 다닐 맘이 나겠습니까? 주눅이 들어 시키는 심부름도 제대로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여름방학 중 작두질을 하다가 왼손 엄지가 잘려 나가는 바람에 2학기에 담임이 바뀐 게 좋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담임은 이상한 분이었습니다. 걸핏하면 옷 벗는 벌을 주고, 몽둥이로 성기나 둔부를 건드리면서 놀렸습니다. 아직 어리다 해도 남녀공학인 교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요즘 같으면 즉각 교체되거나 쫓겨났을 겁니다. 그분이 다른 선생님과 함께 우리 동네까지 왔다가 눈치 없고 숙맥인 내가 집에 들어가시자는 말을 하지 않자 그대로 가버린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혼이 났는데, 그 점은 두고두고 죄송합니다. 저 멀리 신작로길 산모퉁이를 걸어가던 선생님의 담배 연기가 지금도 생각납니다.

누구에게나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가 중요합니다. 정필례 선생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1학년이 끝났을 때 서울에서 고교 교사(교수가 된 건 몇 년 뒤)를 하고 있던 아버지가 선생님 드리라며 당신의 저서를 보내왔습니다. 노란 표지의 책 제목은 ‘알기 쉬운 생물 실험’. 지금 생각하면 시골 초등학교 교사에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이었습니다.

하여간 그 책을 드렸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한 뒤 신문지에 싼 것을 답례로 주셨습니다. 인사를 하며 뒷걸음질하다가 뒤로 넘어질 뻔했는데, 뜀박질해 집으로 가는 동안 궁금해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산 고갯길에서 호호 손을 불며 풀어보니 공책과 함께 연필 여러 자루가 들어 있었습니다. “공부 열심히 해라” 하면서 주신 그 선물에 나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선물이라곤 받아본 일이 없는 산골 아이에게 그 학용품은 함부로 쓸 수 없는 보물과도 같았습니다.

그 뒤 수도 없이 많은 필기구를 만지고 지금은 너무도 헤프게 여러 가지를 쓰고 있지만, 정필례 선생님의 연필만큼 좋고 귀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살아 계시다면 아흔쯤 되셨겠지요. 졸업 후 소식을 전혀 모르지만 늘 건강하고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며칠 후면 다시 스승의 날입니다. 내 가족과 주변엔 선생님들이 많은데 나는 남을 가르쳐본 적 없이 가르침만 받고 사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지난 일을 돌이켜봤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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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철순(任喆淳)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역임. 현재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등 수상. 저서 ‘노래도 늙는구나’, ‘효자손으로도 때리지 말라’, ‘손들지 않는 기자들’, ‘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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