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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밀도 시골생활을 시작하며

2020.04.13

경기 남부 지역으로 이사 온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도시의 높은 건물 대신 평지, 낮은 언덕과 산이 눈을 편하게 합니다. 대부분 나무들이 아직도 앙상하지만 조만간 신록의 의상을 입은 모습이 기대됩니다. 새로 심은 화초도 얼마 후 꽃을 피우겠지요. 밤에 별이 보이는 것도 신기하고요. 뉴스나 서울 나들이 때 접하는 마스크 쓴 사람들 모습이 아니었다면 역질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모를 뻔했습니다.

이전에 자주 와본 곳이 아니어서 이사 후 이곳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농사짓는 냄새도 나지만 공기가 맑아 좋습니다. 기존 농가와 전원주택 단지가 섞여 있는 동네라 중장년 주민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애들이 많습니다. 한 학년에 20명 정도의 소규모인 초등학교 분교가 가까이 있는데 새 주택단지 애들이 대다수로 보입니다. 개학이 미루어져 애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녀 한대수의 노랫말처럼 ‘...작은 창가로 흘러드는 산뜻한 노는 아이들 소리 ...’를 자주 듣습니다. 전에 살던 아파트 단지에서는 보기 힘든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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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고층 아파트 단지를 보면 답답한 느낌이 듭니다. 아파트(5층 이상의 공동주택)는 효율성의 상징입니다. 작은 면적에 많은 가구의 주거 공간을 제공합니다. 30층 아파트의 경우 단독 주택에 비해 같은 면적의 땅에 29가구가 더 살죠. 전기, 수도 등 생활편의 수단 공급에서도 매우 효율적입니다. 새 아파트들이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재개발 지역의 초고층 아파트는 층수를 늘려 이익을 보려는 경제적 유인이 발전된 건축 기술과 손발이 맞아 빚어낸 결과이지요. 울창한 숲에서 나무들이 햇빛을 차지하려 키를 키우는 행태를 연상시킵니다. 실제 도시에서는 녹지가 줄며 나무들이 사라져 가는데 말입니다.

사막에 단기간에 건설된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는 200미터가 넘는 고층 건물의 호텔이나 아파트가 드물지 않다고 합니다. 국내 부동산 개발업자가 이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흉내 내는 것은 아닌지 의심됩니다. 필자에게 높은 아파트들은 블레이드러너(Blade Runner)와 같이 암울한 미래 디스토피아 모습을 보여주는 공상과학영화의 배경을 연상시킵니다. 황사나 미세먼지가 심해 하늘이 잿빛인 날은 더욱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아파트 공화국’입니다. 인구밀도가 매우 높은 홍콩이나 중국 대도시들을 제외하면 서울처럼 높은 아파트 건물들이 즐비한 풍경은 흔치 않습니다. 과거 빠른 경제 성장과 더불어 대규모 인구이동이 진행되었습니다. 1960년대 초 우리나라 사람 10명 중 1명이 서울에 살았는데, 서울 집중 추세가 정점이었던 1990년에는 4명 중 1명이 서울에 살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효율적으로 주거 공간을 제공하는 아파트의 건설이 없었더라면 서울에 여건이 열악한 소위 달동네가 많았을 겁니다. 개발도상국에서 흔한 일이지요.

아파트가 처음 보급될 때 현대적 주거양식이라고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그때 집들은 웃풍으로 춥고, 방음이 안 되고, 부엌이나 화장실 등 불편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요. 문제를 개선해주었던 아파트는 주거 형태 변혁의 화신으로 각인되었다고 생각됩니다. 196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지어진 아파트는 이제 가장 보편적 주거양식입니다. 2018년 기준 국내 전체 약 1,760만 주택(호) 가운데 아파트가 약 1,100만 호, 단독주택이 400만 호입니다.

3년 전 지은 단독주택에 살아보니 편하고 요즘 주택도 잘 짓는구나 감탄이 나옵니다. 1990년대 미국에서 10년 넘게 주택에서 생활했던 터라 주택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쉬웠습니다. 미국은 단독주택이 가장 일반적인 거주형태이고 대부분 도시지역에서 고층 상업용 건물들이 집중된 도심(city center, downtown)과 저밀도 주택으로 이루어진 교외(suburb)로 뚜렷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땅이 많아 평면적으로 널리 퍼지는 것이 쉬웠던 거지요. 출퇴근 시간대의 교통흐름은 방향이 뚜렷합니다.

그런데 근래 미국 내에서 저밀도 단독 주택거주를 우선시하는 시각을 바꿔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자원의 낭비와 더불어 인구 유입이 많은 도시에서는 주택공급이 쉽지 않아 집값이 비싸져 저소득층 주민들이 집 마련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예를 들어 도시계획법이나 규제가 주거지역에 단독주택 건축만을 허가하는 것을 완화해야 한다는 겁니다. 전문가들뿐 아니라 저명한 환경단체인 시에라클럽(Sierra Club)도 이런 정책 변화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고밀도 주거양식 아파트가 주류인 우리나라의 경우 밀도를 낮추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됩니다. 토지 사정이 여유 있어 보이는 소도시에서도 좀 생뚱맞게 높은 아파트 건물을 보게 됩니다. 수요가 많지 않을 것 같은 지역에 위치한 이런 건물들은 효율성을 떠나서 미관상으로 거슬리는 애물단지입니다. 이미 아파트가 숲을 이룬 서울이나 인접 지역이 어렵다면 새로 도시화되는 지역에서라도 고층 아파트 건축을 제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대신 저층 아파트와 단독 주택들이 섞여 있고, 운전할 필요가 없는 거리에 생활 편의 시설들이 분포하는 공동체가 조성되도록 하면 좋겠지요.

학생들의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은데 획일적 교육을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획일적 주거 형태도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동네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새로 이사 온 집에 고양이를 안고 놀러와 자기 집 우체통에 새가 일을 낳았다고 대박 사건을 알려줍니다. 이들은 나중에 아파트에서 자란 아이들과 달리 자연의 모습이 깃든 영롱한 추억을 지닐 것입니다. 이 동네 젊은 부모들의 선택에 찬사를 보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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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2019년 초까지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다양한 국내외 경제 현상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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