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널들의 이상한 말 습관 [김창식]



www.freecolumn.co.kr

패널들의 이상한 말 습관

2020.04.10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짙은 어둠이 나라 곳곳에 내려앉고 개인의 삶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TV방송의 큰 축을 이루는 시사토론 프로그램을 시청하며‘귀 살을 찌푸릴’때가 많습니다. 세칭 전문가들이 보통 사람들도 하지 않을 법한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강조한다든지, 사회자의 물음과는 관련 없는 딴 이야기를 한다든가, 상황이 한참 지났는데 뒷북을 친다거나,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를 묻는 질문에 당위성을 언급하고 흐뭇해하질 않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지나치게 편파적인 의견을 제시한다든지. 주고받는 내용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패널들의 말 습관도 문제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듣지만 귀에 거슬리는 말입니다. 사전에서‘불구(不拘)하다'의 뜻을 찾아보면‘얽매여 거리끼지 아니하다'로 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언제 적 말인가요? 고색창연하지도 않고 그냥 연식이 오랜 표현이지요. 반대 의사를 나타냄에 굳이 '불구하고'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괄호에 넣으면(생략하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공적인 토론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사용된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요. 조금은 다른 이야기지만 이런 표현은 얼마나 어색한가요? “나는 너를 열렬히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않을 수 없다.”

# “…처럼 보여집니다”
수동에 피동을 더한 말법입니다. 모든 것이 모호하고 불명료한 세태 때문인지, 사람됨이 지나치게 겸손한 탓인지, 매사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사회적 풍조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한 말 버릇인지 모르겠군요. 비슷한 말 습관으로“…처럼 여겨집니다”“…인 거 같아요”도 있습니다. 이런 말법은 젊은 층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어 고개를 젓게 만듭니다. 연전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구기 대표팀 인터뷰에서 기자가 수훈 선수에게 소감을 물으니 이렇게 대답을 하더라니까요.“매우 기쁜 거 같아요.”어제 방송에선 이런 일도  있었답니다. 현장 기자가 한 여의도 벚꽃 상춘객에게 코로나가 무섭지 않으냐고 물으니, 이 사람 거동 보소, 검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이라니! "별 일 없을 거 같아요.”

# “개인적 의견을 말한다면…”
패널 토론에서 흔히 듣지만 듣고 싶지 않은 말투이기도 합니다. 공적인 프로그램이지만 패널들이 개인적 의견을 말한다는 것을 시청자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굳이 그 점을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토론 참가자들이 정당이나 기관, 조직의 대변인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이런 말법을 사용하는 것일까? 본인의 생각에 자신이 없어서일 것입니다. 아니면 치우친 의견임을 잘 알고 있어 비난과 구설수에 말려들고 싶지 않아서인지도 모르지요. '개인적’운운하기 전에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상식 기준에 합당한 의견을 제시하도록 평소에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 시도가 쉽진 않겠지만. 그보다 국민 정서를 고려치 않은 정당의 대변인이나 공직자의 말실수가 더 문제가 되는 것이겠지만요.

# “이 단계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토론이 한참 진행 중인데 침묵을 지키던 사람이 툭 한마디 던집니다. 우리가 이 단계에서 한번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다른 패널들의 낯빛을 보면 그러려니 별반 괘념치 않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말법은 예를 그르친 것입니다. 그러면 토론에 참여 중인 다른 사람들은 지금껏 허방다리를 짚고 있다는 말인가요? 어처구니없는 것은 그 사람의 의견 또한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이미 논의가 끝난 내용을 되짚거나 요약하기도 합니다. 혹 이런 표현은 어떤지요? “우리가 이 단계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근데 지금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위에서 패널들이 저지르는 바람직하지 않은 말 습관을 살펴보았지만 구체적인 발언 내용과 논지가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필자의 '개인적’의견에 허점이 있을 수 있고 별것도 아닌 일을 지나치게 부각하지 않나 조금은 마뜩치 않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다만 평소 생각하고 느낀 점을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 싶을 따름입니다.“그러게. 생각해보니 그런 면이 없잖아 있었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수필가, 문화평론가.
<한국산문> <시에> <시에티카> <문학청춘> 심사위원.
흑구문학상, 조경희 수필문학상, 한국수필작가회 문학상 수상.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영음文映音을 사랑했네>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