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돈 100만원 도로 넣어두시라 ㅣ 헌법의 '긴급재정명령권'이 현금 살포하라고 있는 건가


[매경포럼] 그 돈 100만원 도로 넣어두시라


직장이 고마워지는 시절

일자리 잃은 이웃을 위해

내 세금이 쓰였으면 한다

이렇게 쓸 100만원이 아니다


 

    로널드 레이건의 정의에 따르면 불황은 내 이웃이 일자리를 잃는 것이고 공황은 내 직장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웃의 한탄이 커질수록 다니는 직장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기준이 건강보험료 기준 하위 70%로 발표됐을 때 `돈을 이런 식으로 푸나` 의구심은 들었어도 못 받아 섭섭한 마음은 `1`도 없었다. 그 후로 여권은 소득이 그대로인 나 같은 사람, 나와 비교할 수 없이 부자인 사람들에게까지 100만원을 주고 싶어 안달이 났다.




내 살림은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아야 할 만큼 긴급하지 않다. 코로나19 이후 쓰임새가 줄긴 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쓸 일이 줄어서다. 코로나가 급진정되지 않는 한 공돈이 생긴다고 놀러 나갈 일도, 더 마실 일도 없다. 통장 잔액만 불어날 뿐이다. 소비 진작을 논하려면 코로나부터 소탕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공돈도 아니다. 받은 만큼, 어쩌면 그 이상의 세금을 머지않아 토해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긴급지원금 집행 속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일단 다 주고 나서 시간 지나 부자들한테 왕창 걷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이 되는 얘기다. 공학적으로는.


조세와 복지는 공학 이전에 사회철학과 정의의 문제다. 효율성으로 따지면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나중에 세금을 걷는 것이 간편하다. 매력 있는 이론이지만 세금을 피처럼 여기고 가장 절실한 곳에 써야 한다는 조세정의론적 차원의 설계가 아직 미흡하다. 필요한 만큼 거둬서 필요한 곳에 쓰는 지금 방식이 현재로선 최선이다. 나는 운 좋게도 아직 직장이 있고 소득세를 낼 수 있다. 코로나는 이웃들의 직장을 위협하고 있다. 내가 낸 세금이 이들의 직장을 살리는 구제금융, 소득을 잃은 가정의 생계비가 되었으면 한다. 세금만으로는 안 되니 적자 재정을 편성해야 한다. 우리가 갚든, 후세대가 갚든 일단 불부터 꺼야 한다. 혹여 내가 일자리를 잃게 됐을 때도 그런 시스템이 작동하길 바란다. 그것이 조세를 통한 사회적 연대이고 세금을 내는 보람이다. 이런 세금이라면 더 낼 용의가 있다.




건강보험 하위 70%란 기준(세금으로 토해낼 것이 분명한 상위 30%는 일단 빼자)은 그럴 마음이 사라지게 한다. 70% 중에는 나보다 든든한 직장에 다니는 사람도 많다. 100만원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더 많다. `그들은 받고 왜 나는 못 받나`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경제에 약이 된다면 광화문 네거리에서 돈을 뿌리지 말란 법도 없다.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때, 절실하지 않은 곳에 쓰는 게 문제다. 코로나가 창궐하는 지금은 돈을 뿌려도 돌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생계 지원인데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사람에게 100만원 주는 게 무슨 생계 지원인가. 돈 쓸 곳은 널렸다. 그 돈으로 고용유지지원금 대상과 금액을 키운다면 정말 필요한 사람이 혜택을 볼 것이다. 실업급여 예산은 10조원이 넘지만 코로나 사태를 고려하지 않았다. 눈사태처럼 커질 실업수당 재원을 확보하는 것, 여기서 소외된 사각지대 근로자를 구하는 게 더 긴급해 보이는데, 아닌가.


상황이 상황인 만큼 조세정의, 균형재정론은 잠시 접어두고 돈을 통 크게 한번 뿌려보자는 주장을 케인시안 경제학자들이 한다면 경청하겠다. 케인시안이라면 경기 진작을 극대화할 수 있는 타이밍을 숙고할 것이다.


 정치권은 경기가 아니라 총선효과 극대화에 타이밍을 맞췄다. 그래서 더 기분이 나쁘다. 왜 내가 낸 세금 가지고 선심이고 생색인가. 공돈도 아닌데 공돈인 척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100만원짜리 고무신` 얘기가 나오고 전 국민 상대 `촌지` 얘기가 나오는 것 아니겠나. 누가 내게 "살림에 보태 쓰라"고 100만원을 준다면 "그 봉투 그냥 넣어두시죠"라고 말할 것이다. 그 돈 100만원 다시 넣어두면 안 되겠나. 진짜 필요한 일에 쓰면 안 되겠나.

[노원명 논설위원] 매일경제




[사설] 헌법의 '긴급재정명령권'이 현금 살포하라고 있는 건가


    긴급재난지원금(코로나지원금) 논의가 한창인 가운데 여야가 모처럼 한목소리를 냈다. 생존의 위협까지 느끼는 국민이 많으니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인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동원해 지원금을 나눠주자는 것이다. 사사건건 대립만 일삼던 여야가 총선을 앞두고 ‘돈 퍼주기’에는 한마음 한뜻임을 확인시켜줬다. 그러나 정치권이 요구하는 긴급재정명령권은 명분도, 발동요건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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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내세우는 명분은 하나다. 취약층에 대한 ‘즉각 지원’의 필요성이다. 국회의 추가경정예산 심의를 거치면 오는 5~6월에나 지급될 수 있어 긴급명령을 발동해 지급 시기를 앞당기자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논의되고 있는 코로나지원금이 과연 그렇게 분초를 다퉈야 하는 성격인지는 의문이다.




정부가 국민 70%에게 최대 100만원(4인 가구)까지 지원한다고 발표하자 야당에서는 ‘전 국민 1인당 50만원 지급’ 주장이 나왔다. 그러자 여당에서도 모든 가구에 주자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코로나 피해로 하루하루 버티기조차 힘든 자영업 지원도 아니고, 소득 감소나 실업 우려가 없는 공무원, 고임금 봉급생활자에게까지 돈을 주는 게 무엇이 그리 급하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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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재정명령의 발동 요건에도 부합하지 못한다. 헌법 제76조는 ‘내우외환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 위기에서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해 대통령이 최소한으로 처분하거나 법률 효력을 갖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회조차 열기 어려운 비상시기에 잠시 3권 분립의 예외를 정한 것이다. 지금이 그 정도로 비상시국인가.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헌법을 이렇게 제멋대로 해석해도 되나.




긴급재정명령은 1972년 ‘8·3 사채 동결조치’(당시엔 긴급명령)와 1993년 ‘금융실명제’ 때 발동됐다. 나름대로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당시에도 헌법상 요건 충족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전 국민에게 돈을 뿌리기 위한 발동은 어불성설이다. 긴급재정명령권은 현금 살포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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