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허경영?"...정치인들은 왜 그의 의도를 따라가나


[만물상] 모두가 허경영


   '아이큐 430'에 공중 부양 능력자라는 허경영씨는 2007년 대선 공보(公報)에 부시 미 대통령과 함께 있는 합성 사진을 싣고 "부시 취임 만찬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고 했다. 자신이 '이병철 삼성 회장의 양자'이며 '박정희 대통령 정책보좌역'을 지냈다고도 했다. 대선 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18개월 실형을 살았다. 허씨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 뒤에도 트럼프와 나란히 서서 엄지를 세우고 있는 사진을 내놓았다. 그는 "트럼프를 만나 한반도 전쟁을 막았다"고 주장한다


허씨는 대선 공약으로 '결혼수당 1억원, 출산수당 3000만원' '60세 이상 월 70만원' '국회의원 100명으로 축소' '산삼 뉴딜로 1000만 일자리 창출' 등을 내걸었다. 그런데 이런 황당함이 오히려 기성 정치권에 대한 일반의 혐오, 'B급 유머 코드'와 맞아떨어지면서 허씨는 인터넷에서 인기 캐릭터로 장수하고 있다. 그는 이번에도 '국가혁명배당금당'이라는 정당을 만들어 총선에 나섰다.




몇 년 전부터 인터넷에선 '허경영 재평가'란 풍자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재미 삼아 웃었는데 언젠가부터 대한민국이 실제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액수는 다르지만 노인수당, 지자체 출산장려금은 이미 도입됐다. '국회의원 100명' 등도 대선 때 주요 후보 공약으로 등장했다. 재원 고려 없이 현금을 퍼주겠다는 정책,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장밋빛 약속이 난무하다 보니 "허경영과 도긴개긴"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무리가 아니다.


최근 전 국민적 관심사인 '코로나 긴급재난지원금'을 놓고도 한 의원이 "대부분 정당이 허경영당을 닮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초 기재부는 '소득 하위 50% 가구에 100만원' 방침을 세웠는데 여당 압박에 대상이 '하위 70%'로 늘었다. 여기에 야당 측이 '전 국민에게 50만원'을 베팅하자 여당이 기다렸다는 듯이 '전 가구에 100만원'으로 받았다. 허경영의 국가혁명배당금당 공약은 '코로나 생계지원금 20세 이상 1인당 1억원'이다.


허경영당은 이번 총선에서 '여성 추천 보조금' 지급 기준인 76명을 딱 1명 넘긴 77명의 여성 후보를 내세워서 8억이 넘는 보조금을 독식했다. 이 보조금은 국민 세금이다. 제도의 맹점을 파고든 꼼수이지만, 거대 정당들도 눈 뜨고 못 봐줄 꼼수로 일관하니 딱히 욕할 것 없다는 자조도 나온다. 정치의 하향평준화가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다. 이러다 모든 후보가 '허경영'이 되고 모든 당이 국가혁명배당금당이 되는 것은 아닌가.

임민혁 논설위원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08/20200408000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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