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게 묻다 [임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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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게 묻다

2020.04.02

지금 세계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전쟁 중입니다. 눈으로 보이지도 않는 이 미물은 현미경에선 왕관을 쓴 제법 위엄이 있는 모습이어서 이름조차 왕관을 뜻하는 코로나(Corona)로 지어졌습니다. 보기에는 산수유 꽃 같기도 하나, 하는 짓은 꽃 달린 수류탄입니다.

보통 전쟁은 적대세력 간에 벌어지는데, 코로나19는 전 인류를 상대로 무차별 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공격하는 의도가 무엇인지도 분명치 않습니다. 이 전쟁은 코로나19가 이겨 인류가 망하면 코로나19도 멸망하는 공멸의 전쟁입니다. 

전 지구적 지혜로 대처해야 할 이 전쟁에서 인간의 단합을 방해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코로나19는 사람 사이는 물론 나라 사이를 단절시키고 있습니다. 학교와 교회와 공항의 문이 닫히고, 올림픽이 연기됐습니다. 공장이 문을 닫아 실업자가 쏟아집니다.

인간이 개발한 핵무기와 같은 고성능의 무기는 이 전쟁에선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인간이  쓸 수 있는 대응책이라곤 검사하고, 격리하고, 통행금지하고,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5,000만 명의 전체 인구가 마스크를 쓰는 단군 이래 처음 보는 동시패션이 나타났습니다. 인류의 종말이 이렇게 오는 건가 하는 공포가 엄습합니다.

인류의 공적(公敵) 1호가 된 코로나19를 만났습니다. 그는 숙주로 삼은 인간의 몸속 깊숙이 숨어 있었습니다. 보자마자 그의 숨통을 누르고 싶었지만 나에게 들러붙을 게 분명해 악수도 하지 않았습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누르며 그에 대한 호칭을 2인칭(너)으로 했습니다.

-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사망은 사탄의 흉계라고 했는데 너는 사탄의 자손인가?
▲ 천만의 말씀! 나를 품게 될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나도 인간을 만든 창조주의 질서 안에서 존재할 뿐이야. 내가 사탄이 되는 것도, 천사가 되는 것도 인간이 하기나름이지.
- 너의 존재가 인간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거야?
▲ 생각해 보라구. 인간들은 서로 편을 가르고 싸울 궁리만 하잖아? 그 싸움에서 이기겠다고 지구를 파멸시키고도 남을 만큼 많은 핵무기를 만들어 놨잖아?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나 같은 미물을 다스리지 못하면서 핵무기로 어쩌겠다는 거야? 그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유익한 거지.
- 너로 인해 인간 사이의 불신이 깊어진 것 같은데.
▲ 그렇다면 미안해. 허나 “세상에 믿을 x  없다”는 말을 누가 하는데. 인간들이 나를 막겠다고 하는 행동 모두가 인간에 대한 불신의 표현이더군. 누가 나한테 걸린 사람인지 모르니 모두를 걸린 사람으로 일단 의심하고 보겠다는 거지. 마스크를 쓰는 것, 악수 대신 팔꿈치 치기, 구두치기 인사를 하는 게 다 그런 거 아냐?
- 남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의심해야 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불신 사회가 됐다는 거지.
▲ 하기야 발병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나에게 걸렸는지 알 수가 없지. 걸렸으면서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자기 살자고 남을 의심하는 것이니 ‘불신사회 조장’ 어쩌구 하며 나를 탓하지 말라고.
- 세계 패권을 다투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도 들어 있긴 하지만 G20의 강대국들이 너의 공격 앞에 속수무책이던데?
▲ 무기개발에 퍼부은 돈의 100분의 1이라도 나를 막는 데에 썼더라면 나도 꼼짝을 못했겠지. 돈 가지고 엉뚱한 짓을 한 업보 아니겠어? G2라는 미국과 중국이 나의 공격에 최대 피해자가 된 이유를 새기라고. 한심하게도 사람들은 나에게 대비한다고 생필품 사재기하더군. 미국에선 총을 사려고 줄을 섰고. 나를 총으로 죽이겠다는 거야?
- 한국에선 마스크를 사려고 매일 약국앞에서 줄을 서는데.
▲ 매우 안타깝지. 핸드폰 자동차를 각각 수천만, 수백만 대 만드는 나라에서 어쩌다 천과 재봉틀만 있으면 되는 마스크 하나 충분히 못 만드느냐고? 하기야 한국은 기다려서라도 살 수 있지만 없어서 못 사는 나라도 많더군. 그래서 한국은 인구 전체가 마스크를 차는 나라가 됐고, 그런 국민들의 열성 덕에 나를 잘 다스린 나라라고 칭찬을 듣더군. 나를 원망하지 말고, 그런 것으로 위안을 삼으셔.
-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는 어떻게 생각해
▲ 자기편이라고 너무 친한 척 하지 말고, 자기편 아니라고 너무 미워하지 말라는 거야. 인간 사이는 좋을 땐 간을 빼줄 듯하다 돌아설 때 원수가 되기가 다반사 아냐? 서로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도 있는 게 좋은 거지. 그렇게 다져진 관계가 건강하고 오래가는 법이니까.
- 사회적 거리 2m만 떨어지면 너로부터 안전한 거야?
▲ 말할 때 침이 튀는 거리가 2m라던데 물리적 거리가 중요한 게 아니지. 한국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사회라고 하잖아. 나도 인간이 침을 튀기며, 입에 게거품을 물고 큰 소리로 떠들면 여기저기 달라붙기 좋지. 소통도 중요하지만 조용한 목소리로, 때로는 눈빛으로, 때로는 침묵으로 소통하는 법도 익혀두라는 얘기로 이해해줘.
- 노약자 치사율이 매우 높던데 노인한테 가혹한 것이 아닌가?
▲ 나는 누구를 공격할 때 남녀 노소 강약을 차별하지 않아. 공격거리 안에 있으면 누구에게든 달라 붙지. 노약자 치사율이 높은 것도 노인일수록 건강에 더 조심하라는 뜻일 뿐이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노인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고 했더군. 그런 게 차별이지.
- 네가 온 목적은 달성될 것이라고 보나?
▲ 그게 그리 쉽겠어? 미국과 중국이 나의 원산지를 놓고 서로 싸우는 것만 봐도 알만하잖아.
지난달 26일 나를 잡기 위해 열린 G20 정상 간의 사상 첫 화상회의에서 좋은 말들을 많이 했더군. 역시 정치꾼들이다보니 고작 돈을 왕창 풀자는 것 외에 뾰족한 얘기는 없더군. 내가 할 걱정은 아니지만 뒷감당이 될지 모르겠어. 어떻든 인간들이 불신과 적대를 깨고 양보와 협동의 정신으로 뭉쳐서 나와 대적하지 않는 한 나는 인간에게 패배하지 않을 거야.
- 이런 판국에 미사일 발사하는 북한은 어떻게 생각해?
▲ 한심하지. 나 같은 미물보다도 생각이 모자란 거지. 총도 아닌 미사일로 바이러스를 잡겠다는 발상이 아니겠어. 주민 수천 명을 격리시켰다고 하면서도 감염자가 없다고 시치미를 떼고 있으니, 얼굴도 두껍지. 북한의 집권자에게 나의 맛을 보여 주는 수밖에 없겠어.
- 신천지는 어때?
▲ 종말론을 근거로 교세를 키워온 종파라지? 세상의 종말에 14만4,000명만 구원을 받는다니 그게 믿어지는 얘긴가. 세상이 혼란스러우면 그런 종파들이 기승을 부리게 되니 조심하라고 일찍이 성인들도 말했지. 서울시장이 그들을 반사회적 집단이라고 했던데 나의 얘기를 대신했더군.
- 언제 갈 거야?
▲ 백신을 개발한다고 나라마다 난리던데 한 곳에서라도 성공하면 나도 갈 거야. 내가 간다고 너무 좋아하지는 말아. 없는 동안 내가 놀고 있을 거로 생각하면 큰코다칠 거야. 다시 올 때는 훨씬 세질지도 몰라. 더 치명적인 것은 공기전염기술로 무장할 수도 있어. 그 때는 마스크도, 손 씻기도 소용없을 거야. 그렇다고 숨을 안 쉴 수도 없을 테니.
- 얘기를 듣고 보니 “서로 믿고 살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메시지를 인간에게 전하러 온 예언자 같군.
▲ 인간이 그걸 알면 인간과의 전쟁에서 내가 불리해지지만, 인간의 몸에 기숙하는 입장이니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겠군.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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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일요신문 일요칼럼,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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