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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 이야기(2)

2020.03.27

대리운전 사업을 하는 회사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여러 회사들이 기사와 고객을 모집하고 전화로 양쪽을 연결하는 전통적 서비스를 합니다. 규모가 큰 회사는 모바일용 앱을 개발하여 통화 없이 가능한 영업을 합니다. 제3의 회사도 있습니다. 모바일 앱을 개발하여 전화로 서비스하는 회사에 앱을 제공하고 그 이용료를 수입으로 챙깁니다. 앱만을 제공하는 회사는 다수의 대리운전 회사를 참여시켜 대리기사나 대리운전 이용 고객을 통합 관리하니 효율을 높입니다.
회사는 손님에게서 받는 운전요금의 20퍼센트 정도를 수수료로 거둡니다. 그 밖의 운영 정책은 회사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내가 속한 회사에서는 20퍼센트 공제가 대리기사 부담액의 전부였습니다. 다른 회사에서는 소프트웨어 이용료, 보험료 등을 별도로 운전자에게 부담 지웁니다. 어떤 회사는 하루 실적이 회사가 정한 기준에 미달한 운전자에게 다음 날 콜 배정에 상당한 불이익을 줍니다. 이런 정책은 경쟁사의 콜을 받지 못하게 하려는 수법입니다. 많은 대리운전자들이 둘 이상의 회사에 적을 두고 일하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지난 2월 초 한 일간지가 플랫폼 사업 노동자들의 수입 금액을 기사로 다루었습니다. 플랫폼 사업이라 했지만 운수 분야에 한정되었습니다. 대리운전자의 수입은 얼마나 될까요? 그 기사는 내가 소속되었던 회사의 정보를 이용해서 월 534만 원이 대리기사의 최고 수입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정도의 정보로는 그게 실질 수입인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경험을 토대로 말해야겠군요.
나의 경우는 별일이 없으면 한 달에 21일이나 22일 정도 일했습니다. 한 달에 운전수입이 250만 원 남짓 되었습니다. 이 금액은 순수입이 아닙니다. 20퍼센트의 회사 수수료 말고도 부대비용을 지출합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이동 비용을 써야 하고 라면 값도 듭니다. 그런 돈이 전체 수입의 15퍼센트 정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순수입이 월 150만 원 정도였고 많은 때는 30만 원 범위 이내에서 추가되었습니다. 나중에 요령이 생겨 이동 비용을 상당히 줄여보았습니다. 하루 기준으로는 전체 부대비용을 7퍼센트까지도 낮춰보았는데 순수입은 별로 변화가 없었습니다. 코스를 가려서 운행하다 보니 총수입이 얼마간 줄었으니까요. 그래도 운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상당히 앞당기는 효과는 있었습니다.
젊은 대리운전자가 한 달 수입을 내게 공개해 준 적이 있습니다. 2018년 11월 말일이었는데 앱 속의 근거를 보여주면서 그 달 총수입은 400만 원이라고 했습니다. 순수입은 250만 원 정도라고 했습니다. 그가 400만 원의 총수입을 올리기 위해서는 한 달 중 일한 날수가 나보다 많았거나 하루 중 일한 시간이 더 길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아침이 밝아오도록 콜은 있으니까요.

앞에서 말한 경우 말고도 긴 거리를 걸은 경험은 많았습니다. 차는 다니는데 인적은 없는 길을 걷다가 호의를 베풀어 주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버스 통행이 끊긴 남양주의 어느 길에서 서울 방향으로 걸을 때 차 한 대가 멈춰 서며 태워주었습니다. 나이 지긋한 그가 말하기를 내가 걷던 방향에 있는 터널에는 인도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의 호의 덕분에 낭패를 면했습니다. 자신도 대리운전을 한다는 젊은이가 자기 차를 운전하다가 나를 발견하고 태워준 일도 있습니다.
상점 주인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비가 많이 내린 날이었습니다. 신발 속까지 물이 차서 노원구의 어느 슈퍼마켓에서 양말 두 켤레를 샀습니다. 갈아 신으려는 나를 보더니 점주가 종이행주 한 뭉치를 갖다주었습니다. 그것으로 발과 신 안쪽의 물기를 닦아내고 남은 분량은 신발 깔창으로 삼았더니 발걸음이 가뿐해졌습니다.

손님과 대화할 기회는 적은 편입니다. 손님이 먼저 말을 걸어오게 되면 대화가 이어집니다. 어떤 이는 한두 마디 나눈 뒤에 이러더군요. “목소리가 무척 신뢰를 주는군요.” 내 답변은 이랬습니다. “최고의 칭찬으로 들립니다.” 몇몇 손님들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진상 손님을 만나지는 않나요?” 그때마다 대답을 쉽게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전해들은 사례는 있지만 직접 겪어본 일은 거의 없습니다.” “운이 좋으셨군요.”
어쨌든 대리운전은 다양한 사람들을 접해 볼 기회를 갖게 해 주었습니다. 연인이나 가족 사이의 깊은 애정이 담긴 대화를 들으면 나마저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 사이에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속이 따뜻해졌습니다. 자신의 직업에 열정을 보이는 이들을 만나면 그 기운이 전염되어 오는 듯했습니다. 손님과 대화를 하게 되면 가끔 궁금한 점을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조언을 하거나 위로의 말을 해줄 수 있을 때는 만족감이 컸습니다.

새벽이 깊어지면 셔틀 속에서 전화로 다른 동료들과 만날 약속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막걸리며 소주 한잔 하자는 것이지요. 그런 소리를 들으면 회사 다니던 시절 야간 근무를 하는 공장 직원들이 아침 퇴근길에 회식하며 소주잔을 나누는 모습을 본 기억도 났습니다.
일찍 집에 들어가는 날 혼자서 흉내 내기를 해보았습니다. 새벽 식당에서 순댓국에 소주 몇 잔 곁들이니 별미였습니다. 한번 흉내 내어 본 것이 나중에는 나만의 작은 이벤트로 발전하였습니다. “어, 오늘은 대기 시간이 거의 없이 운전했으니 성적이 좋았어.” “오늘 실적은 형편없었어.” 구실은 만들기 나름이니까요.

서울에서 먼 지역까지 마지막 운전을 한 날은 새벽 시간에 버스나 전철 첫차를 탑니다. 그곳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을 봅니다. 장거리 출장 차림을 한 사람도 있고 야간 일을 마치고 피곤하여 조는 이도 있습니다. 첫차에선 아무래도 출근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중에는 인력 조달 회사로 가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도심 빌딩 청소를 할 것입니다.
과거에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서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니 일상생활에서도 전에는 무심히 지나치던 사람들을 눈여겨 살피게 되었습니다. 파지 모으는 이들의 모습이 내 의식 세계에 들어온 경우가 한 예입니다. 몇 해 동안 관심 가졌다가 잊을 뻔했던 천사원의 남매를 다시 찾아보게 된 것도 이런 관점 변화의 한 결과이지 싶습니다.

대리운전을 하면서 신체에도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체중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워낙 많이 걸었으니까요. 당연히 허리둘레가 변해서 바지가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을 그만두고 한 달이 지나니 아쉽게도 과거로 회귀하고 있었습니다. 체중이 줄어들었을 때는 끼니때 먹는 양을 상당히 늘릴 수 있어서 먹는 즐거움도 새삼 느꼈습니다. 그러나 다시 그 즐거움을 억눌러야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기회가 되면 운전을 더 해보려 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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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홍승철

고려대 경영학과 졸. 엘지화학에서 경영기획 및 혁신, 적자사업 회생활동 등을 함. 1인기업 다온컨설팅을 창립, 회사원들 대상 강의와 중소기업 컨설팅을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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