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폐렴 마스크를 배급 타면서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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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 폐렴 마스크를 배급 타면서

2020.03.17

마스크를 타려고 줄을 서면서 한심했습니다. 뭐든 기다리는 게 질색인 내가 유명한 공연에 입장하는 것도 아닌, 보람 없는 일로 장사진에 끼었기 때문이죠. 3월 9일부터 13일까지 공적 마스크 3,800만 장이 전국에서 배급되었답니다. 국민 1명이 1시간 기다렸다고 치면 두 장 받느라고 최대 1,900만 시간을 허비했고 올 최저 시급 8,590원을 곱하면 1,632억 원이 날아간 겁니다. 기다린 보람도 없이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많죠.

개인은 그렇고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는 의료진은 많은 소요량을 어쩌지요? 작년 말 중국에서 우한 폐렴의 위험성을 처음 경고한 제일중심병원 안과 의사 리원량과 동료 의사 3명이 코로나 19와 싸우다 숨졌습니다. 우한 시가 속한 후베이성은 의료진 감염자만 3,000명이고 이 중 40퍼센트가 진료 관련이라고 합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료계의 마스크와 방호복 부족 주장을 “넉넉하게 쌓아두려고 한다”라고 망언했다가 거센 반격을 받았습니다. 물러나야죠. 의료인이 6시간 이상이나, 25명 이상을 진료하면 세균 등이 달라붙어 마스크 오염률이 5배 이상으로 높아진다는 게 중국 연구 결과입니다. 그런데 마스크를 빨아 쓰고 한 달을 버텨야 하는 의료인이 있답니다.

당초 사람 간 전염을 부정했던 무능한 세계보건기구(WHO)는 우한 폐렴이 전 세계로 대폭발한 후인 3월 11일에야 ‘팬데믹(pandemic, 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습니다. 캐나다 트뤼도 총리 부인, 이란 부통령 등 VIP 감염자가 속출하고 트럼프 미 대통령은 검사 결과 음성으로 드러났죠. 방역의 선봉에 서야 할 우리 공무원 수십 명이 세종시에서 집단 감염되는 후진성도 보여주었습니다.

코로나 19가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바이러스’와 달리 계절병으로 계속된다는 전망이 나오는 판입니다. 그래서 더 중요해지는 마스크 문제에 갈팡질팡합니다. “KF94·99등급 사용이 바람직(이의경 식약처장)” “마스크 수요 감당 충분한 생산능력(대통령)” “하나 가지고 3일 써도 돼(이해찬)” “(면 마스크는 안 되고)보건용 마스크가 안전(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공직사회가 면 마스크 앞장서자(정세균) “한 번 쓰면 버리는 게(의협 코로나 대책본부).” 마스크가 달리자 수요를 줄여보려고 안간힘입니다. 나는 여러 장을 햇볕, 혹은 자외선으로 소독하거나 알코올을 뿌린 뒤 잘 말려 교대로 씁니다. 마스크가 ‘금스크’가 된 거죠. 코로나 19는 무증상자도 있어 감염자가 누군지를 모르니 당연히 마스크를 써야죠.

의료인들은 코로나바이러스 예방을 위해 손을 30초 이상 더운물로 자주 꼼꼼히 씻고, 재채기 때는 팔꿈치로 입을 가리고, 안경도 쓰고, 실내 습도를 50퍼센트로 높이고 물을 자주 마시라고 합니다. 출근도 식사도 러시아워를 피하고 식탁에선 지그재그로 앉아 묵묵히 빨리 먹고, 특히 환기가 나쁜 밀폐 공간, 지근거리의 대화를 피하라고 권고합니다. 대중교통보다 자가용 차가 당연히 좋죠. 되도록 모이거나 이동하지 않는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ing)가 질병의 확산 속도를 늦추고 의료 수요를 줄여 질병 통제력을 높일 수 있다고 국내외 전문가들이 말합니다.

3월 12일 김포공항 국제선은 입국자가 0명인 공황이었습니다. 이렇게 여행사, 항공사, 관광업계 등 사람들이 모이는 업종이 강타당하고 수출의 주력인 대기업의 해외 출장 불가능해지는 등 총체적 난국이 초고속으로 달려옵니다. 오죽 영업이 안되면 “문재X 코로나로 인해 당분간 재택근무합니다” 라는 안내문을 1인 여행사가 붙였을까요. KLM 네덜란드항공은 2,000명을 자른답니다. 주가는 세계적으로 대폭락하고 있죠.

코로나 19는 대처가 늦은 나라일수록 피해가 큽니다. 1,800여 명의 사망자를 낸 이탈리아가 전국을 봉쇄했습니다. 약국, 슈퍼, 대중교통, 은행은 정상 영업을 하지만 1미터 거리를 유지하라고 하여 마트 고객이 띄엄띄엄 길게 줄을 섭니다. G7 중 가장 먼저 일대일로를 지지한 이탈리아에는 중국 관광객이 작년 600만 명에 달했고, 밀라노 등지의 북부 패션 공장을 비롯해 전국에 40만 명의 중국계 이민이 있다고 합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10여 년 전 글에서 “중가 브랜드의 ‘메이드 인 이탈리아’는 ‘메이드 인 차이나’다”라고 이탈리아에서의 중국 세(勢)를 언급했습니다. 친중이 친 코로나로 변했나요. 남녀노소 뺨을 대는 인사법도 전염에 기여했을 테죠. 이탈리아는 재정 적자 때문에 5년간 760개의 의료기관을 폐쇄했고 의사, 간호사가 5만 명씩 모자란다고 합니다. 진단키트가 없어 난리인 프랑스는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센터 등 세계적 관광명소를 폐쇄했죠. 관광의 GDP 비중이 큰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의 피해는 엄청날 겁니다.

7월 24일 개막하는 올림픽을 앞두고 걱정이 큰 일본의 확진자는 814명(사망자 24명), 발병이 우리의 10분의 1꼴입니다. 검사를 안 해서라는 강변도 나오지만 우리나라의 검사자가 많은 것은 신천지에 집중한 탓이 크죠. 우리가 마스크 5부제를 실시한다던 날 일본 후생노동성은 홋카이도에 약 4,000만 장의 마스크를 호당 40장씩 무료로 배달해주기로 하고 집중적으로 감염된 기타미 시와 나카후라노 시 가구에 먼저 전달했습니다. 대구와 경북은 어떤가요? 연예인 같은 밥 차 이벤트보다 충분한 방호복과 마스크가 시급하지 않나요. 국민 수천만 명이 1주일에 한 번씩 긴 줄을 서는 나라, 가가호호 전해주는 나라의 차이가 한일 간 격차입니다. 이 배급은 사회주의의 예행연습인가요? 어릴 때 됫병에 석유를 배급 받아 본 후 한 번도 경험 못한 나라입니다.

“머지않아 종식될 것.” “방역 관리의 모범 사례.” 자화자찬할 때 환자가 늘었습니다. 의학과 보건을 정치 문제로 보고 중국의 고통이 우리의 고통이라고 강변했습니다. 사대(事大)를 중시해 사람을 경시했죠. 게다가 G10급 경제를 자랑하는 국가에 마스크 대란이라니요. 마스크 몇 억장이 중국에 건너간 줄도 모르고 수출을 제한할 방법이 없다며 강 건너 불구경했습니다. 상자에 한글이 선명한 마스크 1만 장을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 홋카이도에 기증했다는 일본 뉴스에 분통이 터졌습니다.

일본의 전자업체인 샤프는 청정 룸을 활용해 마스크를 하루 최고 50만 장 생산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정부의 방역에 협조하는 차원이죠.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 톱텍은 정부 지원 한 푼 없이 마스크 제조 장비를 제작해 4월께부터 하루에 최대 300만 장을 생산한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130개 나라가 한국을 막았습니다. 도태우 변호사는 소상공인, 자영업자, 확진자, 희생자 유족 등을 모아 대통령과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지금은 평시의 전염병과 싸우는 것이지만 전시에서 생화학전을 당할 때 국가 운영이 이렇게 엉망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외교, 안보, 경제에 보건까지, 잘하는 게 뭔가요?

우한 폐렴으로 가뜩이나 정신 사나운 이번 총선 때 난데없이 국민 100만 명으로 개헌을 발의할 수 있게 하는 국민투표를 할 모양인데요.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면 종식은 간단하죠.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만 골라서 하는 게 아니라 지금 국무총리처럼 국회로 불러 국회의원의 질문에 답변을 의무화하면 끝날 겁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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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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