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freecolumn.co.kr
영종도 약 염소와 문재인 정치 전도사
2020.03.10
36년 전의 일입니다. 눈치 끝에 얻어낸 여름휴가에 가족을 이끌고 영종도를 찾았습니다. 세계적인 항공 허브가 된 인천공항이 생기기 한참 전입니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여객선을 타고 갯바람을 쐬며 찾은 영종도는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는 섬이었습니다. 다만 바닷물을 언덕 위로 끌어올린 해수 풀장과 모기장을 친 원두막 숙소가 아이들의 호기심을 끌어 재미있게 물질을 하며 논 덕분에 가장으로서의 체면은 세웠습니다.그러나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은 기억이 딱 하나 있습니다. 하룻밤을 영종도에서 자고 연안부두로 돌아오는 여객선 갑판에 나타난 흑염소 이야기입니다.“영종도에서 키운 약 염소입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몸에 좋은 보약입니다.” 얼굴 가득 웃음을 띤 염소 장수가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그 소리를 들은 아내가 옆구리를 쿡 찔러 돌아봤더니 “저 염소 어제 우리가 탔던 배 아래쪽 화물칸에 바로저 아저씨가 싣고 간 거야. 염소 다섯 마리 맞지?”# 섬에 갔다 나오면 약 염소로 둔갑하는 상술섬으로 갈 땐 사람들 눈에 덜 띄는 배 바닥에 싣고 갔다, 뭍으로 나올 땐 보란 듯이 갑판 위로 끌고 온 보통 염소가 하룻밤 새 ‘약 염소’로 둔갑했습니다. 당시 염소가 보양식이라며 서울거리에서 팔러 다니는 풍경이 흔했고, 약 염소는 값이 훨씬 비쌌습니다. 한강 행주대교 아래쪽에서 그물로 낚은 팔뚝만 한 잉어가 트럭 수조에 실려 양평까지 갔다가 다시 청량리시장에 오면 청징한 북한강에서 잡은 것으로 원산지가 바뀌던 시절이었으니까요.선거를 앞둔 요즘 ‘인간 약 염소’가 기염을 토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청와대표’ 총선 후보들입니다. 문재인 정권 2년10개월 사이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력을 앞세워 표심을 모아 보려는 속셈인 것 같습니다. 그 수가 무려 70명을 웃돈다고 합니다. 지역구 의원이든 비례대표 의원이든 그들이 모두 당선되면 국회의원 정수의 4분의 1에 육박합니다. 문 정권이 추구하는 정책 입법에는 천군만마의 힘이 될 것입니다.그들 출마의 변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입니다. 그녀는 총선 출마를 결심하게 된 이유로 “소명이라는 걸 느꼈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또 “나만 알고 끝날 게 아니라 더 많은 국민들에게 ‘문재인 정치’를 보여줘야 할 의무가 저에게는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문재인 브랜드파워를 믿고 말에 오른 모든 이들의 공통분모는 아니겠지만 고 전 대변인의 주장에는 몇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첫째, 국민들에게 보여줄 문재인의 정치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경제학자 공병호 씨(공병호연구소 대표)는 문재인 정치를 불신의 정치 / 부정의 정치 / 거짓의 정치 / 단절의 정치 / 과신의 정치 / 위헌의 정치 / 무지의 정치라고 혹평했습니다. 취임사에서 내세운 평등 / 공정 / 정의라는 애드벌룬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나라가 풍 맞은 듯 비틀거리는 코로나 재앙 상황에서 무엇을 알려주고 무엇을 전도할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청와대 출신 총선 후보, 염소보다 효험 있나둘째, 청와대표 후보들은 뭇 정치인들이 자기 조상보다 더 떠받드는 ‘국민’의 뜻을 물어봤는지 묻고 싶습니다. 청와대나 여당 지도부의 전략이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대의정치의 요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문재인 탄핵'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에 동의한 사람이 100만 명을 훨씬 넘은 사실이 그 반증입니다. 국민은 고사하고 지역 주민 동의도 없이 공천을 받으면, 그리고 당선되면 아무도 가보지 않은 신천지가 도래합니까? 약 염소보다 효험이 있습니까?청와대에서 배우고 터득한 경험이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상생하는 든든한 나라를 만들 경륜이라면 국민 모두가 쌍수로 환영할 것입니다. 그러나 청와대 근무가 선량(選良)의 지름길이라는 판단은 착각입니다.‘오토바이 3년 타고 병신 안 되면 병신’이라는 항간에 떠도는 말처럼 스피드의 유혹에 빠져 전력질주하거나, 권력의 마력에 취해 안 가본 길을 내달으면 패가망신하기 십상입니다.좌파 게릴라 출신으로 우루과이 대통령을 지낸 혁명가 호세 무히카(Jose Mujica)의 절규를 음미해 볼 때입니다.“적의 존경을 얻지 못한 사람은 결국 무너진다. 나는 우리의 투쟁이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그 가치는 적이 우리를 존중했을 때에만 느낄 수 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 단축키는 한글/영문 대소문자로 이용 가능하며, 티스토리 기본 도메인에서만 동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