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의 미래는 암흑이다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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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의 미래는 암흑이다

2020.02.17

건강보험 1월 청구액이 장기요양 보험료를 포함해 4.88퍼센트 올라 있었습니다. 올해부터 모든 연금소득이 보험료 부과 대상으로 되었다는 설명문이 들어 있었죠. 국민연금은 작년 소비자 물가 상승률대로 0.4퍼센트 인상되었습니다. 국민연금공단은 작년 해외 부문의 호조로 11퍼센트인 70조 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합니다.  

건강보험료는 안 아픈 가입자가 아픈 가입자의 병원비와 약값을 대주는 거죠. ’XXX 케어’가 아닙니다. 의료계가 과잉 진료를 우려해 반발했지만 ‘MRI다, 초음파다’, 적용을 확대하여 건강보험료가 오른 것이죠. 산책을 하다 보니 어느 도로의 공영 주차장에 월 주차료를 7만 원에서 10만 원으로 올린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서서 계산기로 두드려보았더니 42.85퍼센트였습니다. 이 가공할 인상률은 뭔가요. 국민연금의 건강보험료 적용도, 세금으로 낸 멀쩡한 길을 주차장으로 만들어 주차료를 받는 것도 참 편한 이중과세(課稅)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총선이 코앞이죠. 폭증하는 복지 확대 퍼주기가 도처에 보입니다. 올해의 고교 2, 3학년 무상교육은 빈부 상관없이 적용해 총 1조 원이 넘게 듭니다. 769만 명에게 기초연금으로 17조 원을, 세금 알바에 26조 원을 퍼붓습니다. 청년 구직활동 수당으로 6개월간 최대 월 50만 원씩 10만 명에게 2,019억 원을 준답니다. 그 돈을 창업비로 대주시죠. 국가 능력을 초과하는 무분별한 지출은 지속 불가능한 미래를 가져올 뿐입니다. 반면 무차별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생활고로 세상을 뜨는 사람이 늘어갑니다. 굶어 죽은 탈북 모자의 참극도 있었습니다. 서울에서는 경영난을 겪는 것으로 알려진 30대 한의사 부부 등 가족 4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경제난에 보약인들 달여 먹겠습니까?  

산 사람도 살리지 못하면서 아기 낳은 어머니에게 주는 출산 장려금은 지자체들이 더 주려고 경쟁합니다. ‘일단 낳아보세요’라는 것인가요, 인구를 늘리려는 노력은 가상하지만 이렇다고 저출산이 해결될까요? 집값은 몇 달 새 몇억 원씩 뛰는데. 결혼하면 어디서 살고, 아기는 어디서 키우냐고요. 작년 말 실업자가 106만 명이고 청년 체감실업률은 22.9%, 실직자 고용보험 구직수당은 8조 3,000억 원으로 사상 최고였다고 합니다. 이런 판에 노년층 표심을 노리는 정년 연장은 모순된 포퓰리즘의 압권입니다. 나가야 할 차례인 고령층이 더 눌러 붙어 있으면 젊은이는 언제 들어가나요.

젊은 표를 의식해 병사 월급도 33퍼센트 올렸죠. 병장 40만 5,700원에서 54만 9,000원, 상병 48만 8,200원, 일병 44만 1,700원, 이병 40만 8,100원이 됐습니다. 병영은 스마트 폰을 허용하며 외박을 활성화하고 영화와 연극 관람, 강좌 수강료 등 자기 계발 예산도 대폭 늘렸죠. 물론 국가 안보의 노고는 값진 것입니다. 그런데 2017년 카투사로 복무 중이던 법무부 장관 아들 서 모 씨가 부대에 미복귀하고 집에서 휴가를 연장했다는 의혹이 드러났습니다. 북핵 위협 속에 북 미사일이 날아다녀도 그 부대는 태평성대였나 봅니다.

군 복무 의무를 진 젊은 남성들이 정권의 페미니즘을 역차별이라고 불평하고 비판하는 가운데 정치 인식에서 성 대결 양상이 뚜렷합니다. 최근 갤럽의 총선 투표 의향 여론조사에서 여성의 여당 선호도(45퍼센트)가 남성(40퍼센트)보다 높았죠. 반대로 야당 선호도는 남성 50퍼센트, 여성 40퍼센트였습니다. 안보관이 보다 명료할 남성들이 정권에 더 비판적인 것 같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세를 결집하려면 적이 필요한가요. 한일 지소미아를 파기한다는 말이 또 나옵니다. 국내 정치에서는 적폐 몰이로 정적인 직전 대통령 등 핵심 인사들을 가둬놓고, 외교에서는 가까이 지내야 할 나라를 공격합니다. 아베 일본 총리는 모처럼 올해 시정연설에서 “한국은 원래 기본적인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 나라입니다”라는 언급을 환기했습니다. 미국이건 일본이건 약속을 존중하는 선린 관계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중국이 핵우산을 제공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는 망언도 나왔습니다. 총선 판세에서 밀린다고 외교·안보를 정권 안보의 희생물로 삼을 수 없습니다. 미북 정상 회동이 어려워자 양정철의 한일전 프레임, 소위 ‘관제 민족주의’를 되살리려나 봅니다.

최근 국민에게 개헌발안권을 돌려주자는 주장도 나옵니다. 대통령 탄핵의 주역 김 모 씨와 여야 의원 몇몇이 어울려 급박한 총선에서 국민발안 개헌권 도입을 원포인트로 개헌하자는 건데요. 개헌보다 원자력발전 중단 찬반을 묻는 게 시급하지 않나요. ‘주인인 국민이 개헌한다는데 뭐가 나빠’라고 할 수 있지만 포퓰리즘이죠. 국민은 개헌에서 개별 조항들의 심의와 채택에 들러리일 뿐, 주도 세력이 던지는 안을 통째로 먹게 되죠. 국민의 이름을 내건 일부 정치인들이 직접 민주주의라며 자신들이 목적한 개헌을 전체주의적으로 추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프랑스 대혁명 때인 1789년 8월 26일 프랑스 인권선언은, 주권재민과 함께 “어떤 단체, 어떤 개인도 국민으로부터 발하지 않은 권위를 행사할 수 없다”고 천명했습니다. 프랑스 헌법 제3조 2항은 ‘국민의 일부나 특정 개인이 주권의 행사를 특수하게 부여받을 수 없다’며 주권의 불가분성을 경고합니다.

삼권 분립을 무시하고 직접 민주주의라며 온갖 것을 여론 재판하는 국민청원은 베네수엘라에도 있다는데요. 현 정권이 꽤 곁눈질하는 듯한 베네수엘라의 마두로는 2017년 야당이 3분의 2를 차지한 국민의회를 무력화하려고 노조 등 친여 조직 유권자에게 2표의 행사를 허용해 야당이 보이콧한 선거로 일당독재 제헌의회를 만들어 입법권을 빼앗았습니다. 야당인 과이도 국회의장은 2018년 대선이 부정선거라며 당선된 마두로를 부정하고 자신이 국가원수라고 선언했죠. 정말 복잡한 나라입니다.

베네수엘라 좌익 독재정권들은 무상 의료, 무상교육, 토지와 주택의 공개념 도입으로 서민을 끌어안는 반면, 대법원 판사 정수를 늘리고 자기편을 꽂아 사법부를 장악해 국민의회가 만든 법률을 위헌이라고 결정했습니다. 연동형 비례제도, 공직부패수사처도 도입했습니다.

산유국 베네수엘라는 1999년부터 14년간 사회주의자 우고 차베스(1953~2013)의 집권 이래 약 8,000억 달러로 추정되는 석유 수입을 빈곤층과 지지층에 퍼붓는 분배에 올인해 지금 종이 기저귀도 사기 어려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석유 등 각종 산업을 국유화하여 성장동력을 잃고 2억 달러가 없어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하는 가운데 국민 300만~ 460만 명이 국외로 나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웃 나라 거리에서 회계사가 노점상을 하며 숱한 난민들이 쪽방에서 산다고 합니다.

토론을 좋아하는 차베스는 ‘내가 국민이다’라며 정권이 장악한 방송의 ‘안녕 대통령’ 프로에 매 일요일 5시간 동안 등장해 온갖 사안에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후계자인 마두로는 고유가 시대가 사라졌어도 적자 국채와 화폐를 남발하며 좌파 포퓰리즘을 고집하다가 버틸 수 없게 된 거죠. 2014년 48.4퍼센트였던 빈곤층은 2019년 94퍼센트로 2배가 되었습니다. .

4·15총선은 자유주의냐 전체주의냐를 고르는 마지막 체제 선택이라는 식자들의 경고가 넘쳐납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운동권이 한국 정치를 지배하는 ‘정치계급’이 됐다”, “직접 민주주의를 진정한 민주주의로 이해하고, 모든 인민을 다수 인민의 ‘총의’에 복종하도록 강제하는 틀은 전체주의와 동일한 정치체제”라고 경고했습니다. 요즘 SNS 발언으로 한창 뜨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나 ‘민주당만 빼고’라는 화제의 칼럼을 쓴 임미리 고려대 교수도 동감이겠죠. 눈앞의 낚싯밥에 최면되어 자신과 후손의 미래를 내던지면 안 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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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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