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은 왜 말이 없나[임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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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왜 말이 없나

2020.02.12

영화 ‘기생충’의 쾌거가 놀랍습니다. 올해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네 부문이나 상을 받았으니 놀라울 수밖에 없지요. 아카데미영화상의 역사를 새로 쓴 ‘기생충’은 전 세계가 안고 있는 시대의 문제를 우리의 언어로 다루어 보편적 지지를 얻어냈습니다.

그런데 ‘기생충’의 업적을 반기면서 이를 우리나라 정치와 연결해 언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랑스럽다. 이제 정치만 잘하면 되는데.”,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식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공포와 ‘기생충’의 감격으로도 덮을 수 없는 큰 이슈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 이슈가 점점 더 자라나 커지고 있습니다.

청와대의 울산 시장 선거 개입 의혹사건에 연루된 13명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이 공개된 이후, 국민들의 관심은 문 대통령에게 더 쏠리고 있습니다. 공소장에 따르면 정무수석비서관실 민정수석비서관실 등 청와대 비서실장 산하의 8개 비서관실이 대통령의 30년 지기라는 사람을 울산 시장에 당선시키기 위해 갖은 불법행위와 공작을 벌였습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책임을 지고’ 공소장 공개를 막은 이유를 알 만합니다. 첩보 생산부터 수사 상황보고까지 하명수사의 처음과 끝이 청와대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딴청을 부리고 있습니다. 10일 오후 수석 비서관·보좌관 회의에 앞서 ‘기생충’을 언급하며 “박수 한번 치면서 시작할까요?”라고 하던 모습은 구차스럽고 군색해 보였습니다. 페이스북에는 “우리 영화인들이 마음껏 상상력을 펴고 걱정 없이 영화를 제작할 수 있도록 정부도 함께하겠다”고 썼지만, 나라나 잘 이끌어가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기생충’에 대해 자유우파 기득권의 부패상을 인식시키는 파생효과가 있는 영화라고 해석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국 스캔들’ 이후에는 조국 가족의 파렴치한 행태가 바로 기생충과 같으며 청와대 안팎에 온갖 촌충 회충이 들끓고 있다고 영화를 고쳐 읽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부잣집 과외를 맡으려고 대학 재학증명서를 위조하는 게 조국 가족을 연상시킵니다. 특히 죄책감 없이 저지른 잘못이 통용되고부터 자신의 행위가 잘못이 아니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는 게 요즘의 문재인 정부와 흡사하다는 거지요.

문재인 정부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대로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미증유의 나라꼴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게 나라냐?”는 촛불의 질문과 저항 덕에 정권을 잡았는데, “이건 나라냐?”는 거센 힐문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문재인 정부를 경험하면서 이 사람들에게 부족한 게 무언가 궁금해하다가 그들에게는 공개념이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한마디로, 공무를 담임할 자격이나 소양이 없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앉아 이익집단처럼 끼리끼리 도와주고 나눠먹는 정치를 해온 것입니다. 경제·산업정책의 오류와 실패보다 더 심각한 게 자신들의 잘못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지와 부정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적폐를 청산한다면서 새로운 폐단을 쌓아가고 있는 거지요. 구악을 청산한다며 신악을 양산했던 5·16 쿠데타세력의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울산 시장 선거 개입 행위가 대통령 탄핵 사유이며 형사처벌 사안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자유한국당은 “문 대통령의 연루 사실이 조금이라도 나온다면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딴전을 피우는 것은 아마도 ‘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이라는 ‘대깨문’들의 광신도적 지지와 열광을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40% 안팎의 지지만으로도 ‘편하게’ 나라를 꾸려왔으니까요. 그런 맹목적 지지에 기대어 검찰인사를 멋대로 하고, 수사검사를 갈아치우고, 재판기일을 늦추고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문재인 정부는 검찰개혁을 지상과제처럼 추진해왔습니다. 그 필요성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자기들 편한 대로 자의적 인사, 편 가르기 발령을 하는 바람에 검찰은 오히려 핍박받는 집단, 정의를 수호하는 조직이 돼가고 있습니다. 검찰을 개혁하겠다면서 검찰을 육성 진흥하고 있는 꼴입니다.

청와대의 울산 시장 선거 개입 의혹사건에 대한 A4용지 71쪽 분량의 공소장에는 문 대통령을 지칭하는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35번이나 나옵니다. 누가, 어떤 자리가 사건의 핵이며 몸통인지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말이 없습니다. 해명을 하든 사과를 하든 부인을 하든 입을 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사건은 선거와 공직에 관한 권력스캔들입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 사람들의 행태로 미루어 앞으로 개인이든 집단이든 치부와 축재에 관한 금권스캔들이 드러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다가오는 4·15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이길 수 있을까요? 정말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아주 이상해진 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선거로 심판을 해야 합니다. 야당이 압승하면 사사건건 여야 대립이 더 격해지고, 가뜩이나 부진한 국회의 의정활동이 더 엉망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또 새로운 문제이며 야당이 이쁘지도 않지만 일단은 선거를 통한 국민들의 엄중한 경고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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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철순(任喆淳)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역임. 현재 자유칼럼그룹 공동 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시니어희망공동체 이사장. 한국기자상, 위암 장지연상, 삼성언론상 등 수상. 저서‘노래도 늙는구나’, '효자손으로도 때리지 말라’,’손들지 않는 기자들‘,‘1개월 인턴기자와 40년 저널리스트가 만나다(전자책)’,‘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공저)’'마르지 않는 붓'(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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