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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탈북인 보듬기가 시작이다

2020.01.30

작년 연말 가까이, 예정에 없던 뮤지컬 하나를 어렵사리 보게 되었습니다. 총 2백 석 남짓한 작은 공연장에서, 그것도 딱 이틀만 하는 공연이었습니다. 제목도 '외딴섬'이라 돼 있어 뮤지컬로서 별 재미는 없겠다 싶었습니다. 누구라 하면 알 만한 옛 직장 동료가 느닷없이 전화로 뮤지컬 표가 두 장 있는데 함께 가지 않겠냐고 하기에 공연이라면 마다하지 않는 저로서는 즉각 좋다고 했었지요. 이틀 중 둘째 날이었으니 마지막 공연이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공연장을 찾아가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동숭동 일원의 오래된 교회의 강당 같은 곳인데 골목길을 꼬불꼬불 돌아야 닿을 수 있었습니다. 내려가는 좁은 통로 끝 지하 공간에 조성된 초라한 공연장이었습니다.

들어가서 보니 객석은 거의 차 있었고 관객은 대부분 교회 인사들과 뮤지컬 관련자들, 그들의 가족 또는 우리처럼 특별히 초청을 받아 온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우리는 주최 측의 초청이 있었던 데다 탈북인들이 직접 하는 행사라니 일종의 호기심이 발동했던 것이지요. 거기 모인 사람들의 표정에서 제대로 된 뮤지컬이 나올까, 하는 의구심이 읽혀지기도 했습니다. 이 뮤지컬은 탈북인 배우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라파'라는 극단이 상당 기간 준비해서 제작한 것입니다. 라파는 언론인 독지가 한 분이 사재와 후원을 기반으로 운영하는 영세 극단으로서 생긴 지 일 년이 채 안 됩니다.

다소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면서 예정된 시간에 공연이 바로 시작되었습니다. 무대 구석구석에 5, 6명의 배우가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장애인 딸, 아주머니 하나, 젊은 여자 하나, 장년 남자 하나, 그리고 중국인 청년 하나였는데 이들이 배역의 전부였습니다. 제목이 '외딴섬'인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 여섯 명이 각기 죽음을 각오하고 탈북을 하거나, 중국 청년의 경우 감옥행을 각오하고 중국을 탈출했는데, 모두 한 곳에 도착하고 보니 가이드가 약속한 대로 남한 땅이 아니라, 다른 어떤 외딴 섬이었다는 것입니다. 이후 자유를 찾아 나선 여정에서도 계속 외딴 섬에 와 있는 느낌을 가졌으며 종착지인 남한에 들어와서도 외로움을 느꼈다는 데서 그런 제목을 붙이게 되었다는 거죠.

무대 위 지금 한데 모여 있는 곳은 여전히 북한 땅일 수도 있는 무인도입니다. 이들은 물도 구하기 어려운 이 외딴 섬에서 갈증과 허기와 두려움으로부터 생명의 안전과 자유를 찾아 다시 남한을 향해 함께 떠나야 하는 공동운명체가 됩니다. 공포감이 지배하는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지옥 같은 북한체제를 벗어나고 있다는 일말의 안도감에서 그들은 익살스런 농담을 주고받습니다. 일행 모두 연기 경험이 있어서인지 뮤지컬 배우로서 아무런 손색 없이 열연을 하였습니다.

김일성 부자를 희화화(戱畵化)하면서도 막상 비칭(卑稱)이나 막말을 쏟아낼 용기를 낼 사람은 당장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일상 생활에서 체화된 주체사상의 굴레에서 빠져나오가 어려웠던 것이죠. 그러다가 누군가가 나서서 김씨 일가에 대해 욕설을 퍼붓고 조롱을 시작하고는 모두 몇 마디씩 거들곤 합니다. 누가 엿들을까봐 습관적으로 몸을 사리기도 하지만 그간 살아왔던 북한에서의 일들을 회고하면서 맘껏 풍자하고 비판하고 실소를 합니다. 강제수용소에서 인간 이하로서 겪었던 처참한 이야기를 할 때는 배우도 울먹였으며 보는 이들도 눈물을 훔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몰래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하며 오열할 때는 관객들도 흐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에는 어쨌든 자유를 찾아갈 수 있다는 불타는 희망과 이로 인한 희열의 빛이 어려 있었습니다. 단순한 배우가 아닌 이들의 이야기는 바로 얼마 전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이 직접 겪은 실화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유 . . .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입니다. 각기 다른 경로로 왔지만 하나같이 극단의 상황에서 온갖 간난과 험한 일을 당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중국 청년의 경우 아버지는 중국인, 어머니는 조선인인데 어머니는 중국에서 강제로 맺은 부부관계에서 탈출하여 이미 남한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찾아 나선 것입니다. 그 어머니는 애초 탈북 후 중국인에게 넘어가 국적도 여권도 못 가질 아들을 낳은 것이죠. 이 청년은 한국말도 서툴 수밖에 없었지만 부자유스러운 환경을 벗어나 어머니를 만난다는 기대감으로 환희에 차 있습니다. 모두가 자유와 사랑을 찾아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 살아남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사는 남한에서 자유는 공기와 같아서 이처럼 갈구하지 않아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자유를 넘어 방종과 무책임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남한 사람 대부분은 진정 자유가 얼마나 큰 가치인 줄을 모르고 살아옵니다. 이렇듯 쉽게 자유를 누려오던 저도 뮤지컬 무대에서 실제처럼 연기하는 탈북인 배우들을 통해 자유에 대한 갈망이 어떤 것인지를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자유'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3만여 탈북인이 들어와서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 탈북인 모녀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냉방에서 동반으로 숨져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야 비단 탈북인에게만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그들의 경우는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북한 땅에서의 경험이 남한 사회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는 데다 남한 사회가 이들의 처지를 이해하면서 특별히 보살펴 주지 않는 한 그들은 이 땅에서 제대로 살아나가기 어렵습니다. 여전히 미스테리에 쌓여 있기는 하나 얼마 전 동해 경계선을 넘어온 선박의 생존자들이 미처 자유를 맛보지도 못하고 북으로 귀환하게 된 아픈 사연도 있습니다. 지금도 생사의 경계를 오가며 중국, 몽골, 동남아 등 중간 기착지에서 기약 없이 헤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뮤지컬에서 이들 여섯 명은 파란만장한 여정 끝에 모두 남한 땅을 밟고 꿈에도 그리던 자유를 누리면서 각기 능력에 맞는 일자리를 맡아 일하면서 행복을 구가합니다. 실제 남한에 살고 있는 탈북인들의 현실은 뮤지컬과는 딴 판입니다. 어찌해서든 성공을 이룩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삶을 포기해야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린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남한 도착 후 일정한 조사와 하나원 보호 기간을 끝나면 제한된 소득에 의존하면서 스스로 남한 사회에서 적응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들을 보는 남한 사람들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습니다. 뭔가 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에서 경계의 시선을 놓지 않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가뜩이나 적응력이 부족한 북한인들이 제대로 헤쳐나가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북으로 되돌아가는 사례도 있습니다.

탈북인들이 남한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한 나머지 절망에 빠지고 삶에 환멸을 느낄 정도에 이른다면 이는 누구의 책임일까요? 물론 본인들의 책임이 크겠지만 북에서 온 동포들을 잘 보듬지 못한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을까요? 우리는 스스로 냉정하게 물어봐야 합니다. 남한 사람인 우리는 인간 지옥을 탈출해온 북한인들을 홀대하고 있지는 않나요? 우리 정부는 도리어 이들을 백안시하면서 필요한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이러한 물음 앞에서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너 나 할 것 없이, 사선(死線)을 넘어온 동포들을 저 먼 나라에서 밀입국한 이방인 대하듯 골칫거리, 애물단지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탈북인 문제는 심각하면서도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탈북인들을 어떻게 대하며 또 이들이 어떻게 남한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하는가의 문제는 바로 통일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머리 위에 핵을 이고 역사상 가위 최악의 전제주의 체제와 마주하고 있는 한, 이 땅에 통일은 쉽게 오지 않습니다. 통일 이전에, 북한이 국제사회의 재제로 인해 궁지에 몰려 마지막 수단으로 남한에 무력도발을 한다면 그야말로 재앙입니다. 이에 대응해 우리 안보를 튼튼히 해나가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올 수도 있는 통일에 잘 대비하는 것 또한 현실적으로 간과해서는 안 될 중차대한 일입니다.

독일의 경우 역사적, 현실적 조건이 우리와는 다르지만 결국 탈출하는 동독인들이 많아지면서 통일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국가의 구성요소인 영토,국민, 주권 중 가장 핵심인 국민이 계속적으로 줄어든다면 이는 국가로서의 온전성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서독으로 빠져나가는 동독인이 급증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동독 국민들은 서독과의 통합 여부를 결정할 투표권이 주어집니다. 역사에 만일이 없다지만, 만약에 이 과정에서 동독 국민이 서독과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투표 결과가 나왔다면 오늘날과 같은 독일 통일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을 한반도에도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래 어느 시점에 어떤 커다란 변수가 생겨 남한과의 통일 여부에 대한 북한 주민의 의사를 물어야 하는 상황을 상정해봅니다. 그 시점에서 북한인들이 남한과의 통일을 바랄 것인지를 쉽게 예단할 수는 없습니다. 흔히 '흡수통일' 운운하면서 북한 정권이 무너지면 통일이 곧바로 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경우에 대비해 우리는 미리부터 북한인들의 마음을 얻어 놓아야 합니다. 대북 인도적 지원은 그 자체로서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미래의 통일에 대비하여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데도 그 중요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북한 주민의 마음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바로 남한 사회에 대한 그들의 믿음일 것입니다. 남한과 막상 한 몸이 되었을 때 북한인들로서는 통일 후 새로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이 클 것입니다. 그들이 가보지 않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 사이에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으로 탈북인들의 정착 사례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어디서나 눈과 귀가 있어서 그들도 탈북인들이 남한 사회에서 잘 정착하고 있는지에 대한 소문을 듣고 나름대로 판단을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가깝든 멀든 미래에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여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3만여 탈북인들을 제대로, 잘 보듬어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탈북인들을 잘 보듬는 것인가는 당국자들과 국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짜 내어야 합니다. 지금의 수준으로는 많이 부족하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우선 당국이 보다 면밀하고 현실적인 계획을 짜서 실행하고 우리 국민들이 탈북인들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계도하고 협조를 구해나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수용력이 있는 한 되도록 많은 탈북인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북한이 처한 현 상황이 한계에 이르러 북한인들이 스스로의 운명을 선택할 기회가 왔을 때, 만일 그들이 남한과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면 통일은 영원히 물 건너가고 말 것입니다.

통일은 궁극적으로 사람과 사람 간의 통합입니다. 스스로 들어온 탈북인들과 잘 화합하지 못하면서 이념과 체제가 다른 북한 사회와 통째로 통합한다는 것은 자가당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들어온 탈북인들을 잘 보듬어가면서 미래에 대비해야 합니다. 몇 명이 되든 지금으로서는 들어왔거나 들어올 탈북인들을 잘 보살피고 이들과 잘 화합하는 것이 통일을 위한 현실적인 첫걸음이라 하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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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파나마, 이집트대사를 역임했다. 은퇴 후 제주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절로 귀촌을 하게 되었고, 현재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꽃나무들을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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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ngi, conpaper En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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