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반대 단체 시민의 비극

 

탈원전 반대 단체 간부의 유서···"나는 나쁜 짓 하지 않았다"

권혁주 논설위원

울진 범군민대책위 사무총장
6개월 전 경찰 조사 뒤 극단 선택
“정부 반대 단체 하명 수사” 소문
경찰 “보조금 비리 특별 단속” 해명


     여기 안타까운 비극이 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맞섰던 시민단체 핵심 간부가 경찰 조사를 받은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혐의를 쓴 피의자가 아니라, 사건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은 뒤였다. 그는 ‘나는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는 유서를 남겼다. 탈원전 때문에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이 중단된 경북 울진군에서 지난해 7월 일어난 일이다. 비극은 그러고서 반년이 넘도록 파묻혀 있다시피 했다.

울진군 범군민대책위원회는 2018년 9월 청와대 앞에서 열흘간 ’ 신한울 3·4호 원전 건설을 재개하라“는 시위를 했다. [연합뉴스]

 


울진에서는 2013년 6월 ‘울진군 범군민대책위원회’(범대위)가 설립됐다. 울진군의 각종 단체가 연합해 결성했다. 당시는 정부가 울진에 신한울 1~4호기를 짓는 것을 추진하던 때였다. 이에 대응해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지역 개발사업 지원을 받아내는 것 등이 범대위의 주요 활동 목표였다.

범대위 운영은 울진군에서 보조금을 받아서 했다. 공동대표는 울진군 발전협의회장과 청년회장 등이 맡았다. 살림살이를 총괄하는 사무총장으로는 김대업 한울원전 민간환경감시센터 행정팀장을 선임했다. 범대위 측에 따르면 “김씨가 감시센터에서 오래 일해 원자력에 해박한 데다가, 대인 관계가 좋아 여러 단체가 연합한 범대위를 꾸려가기에 적임자라는 판단”이었다고 한다. 범대위는 정부와 논의해 원전 6기(한울 1~6호기)가 돌아가던 울진에 4기(신한울 1~4호기)를 더 짓는 대신, 스포츠센터를 세우고 장학재단을 만드는 등 8개 사업에 총 2800억원을 지원받기로 했다.

 


탈원전에 맞선 울진군 범대위

범대위 활동은 문재인 정부 들어 확 바뀌었다. 정부가 탈원전을 내세워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전면 중단하면서다. 건설에 따른 지원금 등이 줄면서 2018년 약 7780억원이었던 군 예산이 지난해엔 5580억원으로 무려 23% 감소했다. 건설 인력이 빠져나가 원룸은 비고 음식점들이 문을 닫았다.

이에 범대위가 나섰다. 2018년 9월에는 100여 명이 10일간 청와대 앞에서 시위하며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요구했다. 지역 경제가 걸린 일이라 울진군에서도 보조금을 늘려 범대위 활동을 지원했다. 연간 2000만원 정도였던 보조금은 20185000만원까지 늘었다. “장기간 상경 시위 등을 하느라 비용이 많이 필요했다”는 게 범대위와 울진군 측의 설명이다. 범대위는 지난해에도 건설 재개 운동을 이어갔다.

지난해 6월 울진경찰서가 범대위를 수사하기 시작했다. 보조금을 투명하게 썼는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이었다. 먼저 울진군의 범대위 담당 공무원을 참고인 조사했다. 이어 두 번째로 7월 초 김대업 사무총장을 참고인으로 불렀다. 김 총장은 범대위 사업계획을 세워 울진군에서 보조금을 받고, 예산을 집행·정산하는 일을 도맡았다. 경찰 측은 “김 총장에게 범대위가 어떻게 출범했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를 주로 물었다”고 밝혔다.

 


그러고 이틀 뒤, 김 총장은 일터였던 감시센터 사무실에서 목매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56세였다. 그는 A4 용지 두 장에 큼직한 글씨로 흘려 쓴 유서를 남겼다. 한장에는 ‘범대위 업무를 보면서 울진을 위한다고 한 일들이 마치 내가 도둑질 한 것처럼 비춰지는(비치는) 것이 나는 싫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 나는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 신한울 3, 4(호기) 건설이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라고 썼다. 다른 한장은 사무실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데 대해 직장 동료들에게 사과하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멈칫했다가 수사를 재개했다. 20여 명을 추가 조사했고, 지난해 10월 말 김 총장과 또 다른 범대위 관계자 등 모두 2명에게 지방재정법 위반 및 횡령 등의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넘겼다. 고인에 대해서는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 의견을 덧붙였다.

경찰과 검찰은 구체적인 혐의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3개월 넘게 20여 명을 조사하면서 울진 지역 사회에는 내용이 퍼졌다. 당일 출장을 간 뒤에 1박을 한 것처럼 부풀리는 식으로 예산을 집행했다는 것이다. 적발 규모는 2013년 범대위 창립부터 최근까지 6년간 총 300만~500만원 정도로 알려졌다. 이런 금액 규모 등에 대해 경찰과 검찰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범대위 측 인사는 “고인의 품성으로 볼 때 개인이 유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출장 가서 저녁에 다 같이 술도 한잔하다 보면 비용이 부족했을 텐데, 그걸 메우는 데 쓰지 않았겠냐”라고 추측했다. 범대위에 따르면 출장 규정상 1인당 한 끼 식비는 8000원이다. 김 총장과 함께 입건된 범대위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예산 집행은 김 총장이 전적으로 했기에 나는 사정을 모른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울진 신한울 1·2호기 건설 모습. 완공을 앞뒀다. [중앙포토]

김 총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시기는 경찰이 출장 날짜를 부풀린 등의 혐의점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전이었다. 김 총장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하며 범대위 설립 배경과 활동 내용 등만 주로 확인한 이유다. 그래서 김 총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까닭은 미스터리다. 다만 관계자들에 따르면, 경찰은 제일 처음 관련 공무원 조사에서 출장비 지출 증빙 영수증이 부족하다는 점을 파악해 김 총장 조사 때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김 총장은 “영수증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은 기자와 경찰의 문답이다.



김 총장을 조사하며 영수증 문답이 오갔나.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

공무원 여비 규정에 따르면 식대·활동비는 정해진 금액을 현금으로 받을 뿐, 나중에 영수증을 낼 필요가 없다.
“범대위는 공무원이 아니라 보조금을 받아 쓰는 단체다. 지출 증빙자료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영수증 부족 부분은 혐의에 없다.”

‘정부 탈원전 정책에 맞선 범대위를 경찰이 하명 수사했다’는 얘기가 돈다.
“아니다. 지난해 경찰 전체로 국가 보조금 관련 비리 특별 단속을 했다. 그 하나였다. (※실제 경찰청은 지난해 2월 보조금 비리 특별 단속을 한다고 발표했다.) 과거 군 의회에서 범대위 보조금 관련 얘기도 오가고 해 주시해 왔다.”

특별 단속은 국가 보조금 관련인데, 울진 범대위는 지자체 보조금으로 운영했다.
“같은 세금 아닌가. 마찬가지로 지난해 농가 보조금도 수사했다.”

김 사무총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가 석연찮다.
“뜻밖이었다. 수사 대상이 아니라 참고인이라고 분명히 얘기해 줬는데…. 그런 선택을 할 줄은 정말 몰랐다.”

 


검찰 “자살 이유 상식적이지 않다”

석 달 전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어떻게 처리할지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검찰은 “수사 내용 가운데 더 살펴야 할 점들이 있다”고 했다. 김 사무총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 또한 검찰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부분이다. 조사 과정에서 가혹 행위는 전혀 없었던 게 CCTV로 확인됐다. 검찰은 "경찰이 적용한 혐의 정도로 극단적 선택을 한다는 게 상식적이지 않다. 통상 사건과 달라 들여다보는 부분이 있다”라고도 했다. 검찰은 또 "유족이 ‘억울하다. 의혹을 밝혀달라’고 진정·탄원을 하면 조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소속 사무총장에게 변고가 있었음에도 정작 범대위는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경찰 수사를 관망했다. 사건이 외부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다. 범대위가 나선 것은 김 사무총장이 사망한 뒤 유족이 경찰을 찾아갈 때 십시일반으로 동행할 변호사 비용을 댄 정도였다. 범대위 관계자는 "뭐가 어떻게 돌아갈지 몰라 손 놓고 있었다. 수동적인 측면이 있었다”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보니 별 게 아닌 것 같은데, 인제 와서 뭔가 하기도 너무 늦었고….”

유족은 얼마 전 고향 울진을 떠났다. "고인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었지만, 누구도 우리 편이 돼주지 않았다”고 했다. 범대위 또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아무도 사무총장직을 맡으려 하지 않고 있다. 울진 현지에서는 "김 총장이 험한 일 당한 것을 보고서야 누가…”라는 자탄이 나오고 있다. 김 총장은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꼭 이뤄지기 바란다’고 마지막 소원을 밝혔건만, 그가 비운 범대위 사무총장 자리는 지금껏 반년 넘게 공석 중이다.
권혁주 논설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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