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피아노 애증사(愛憎史) [허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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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피아노 애증사(愛憎史)

2020.01.22

인구 14억에 달하는 중국이 지난 수십 년 간 계속 빠르게 성장하면서 세계경제의 모습이 크게 바꾸었습니다. 그 인구의 반이 하루에 코카콜라 한 캔을 마신다고 상상해 보면 왜 소비재를 파는 기업들에게 중국이 엄청난 시장인지 이해됩니다. 경제 발전에 따른 중국인들의 소득 증대는 고가 명품 소비재 시장에도 획기적으로 영향을 미쳤습니다.

경제학의 분류법에 따르면 소비자가 소득이 늘었을 때 어떤 것을 더 사는지에 따라 소비재를 사치재와 필수재로 나눌 수 있습니다. 소득이 는 것에 비해 필수재는 구매가 상대적으로 덜 늘고, 사치재는 더 많이 느는 품목들입니다. 소득이 늘면 신선 채소 소비도 늘지만 소득이 두 배로 늘었다고 채소 구매가 두 배로 늘지 않습니다. 이에 비해 소득이 두 배로 늘자 이전에 쓰던 가방이나 장식품에 비해 몇 배로 비싼 명품을, 즉 사치재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꽤 있습니다. 한국을 찾는 중국인 방문객, 유커(遊客)들이 면세점 주요 고객인 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듯이 명품 회사들에게 중국은 엄청난 새 시장입니다.

연주회에 자주 등장하는 그랜드 피아노의 대표적 제조업체 스타인웨이앤드선스(Steinway & Sons)의 피아노가 중국에서 상당히 잘 팔리고 있습니다. 비싼 모형은 가격이 몇억 원대에 이른다고 합니다. 중국 일간지 차이나데일리 기사에 인용된 스타인웨이 회사 임원에 따르면 2018년 전체 매출의 약 5분의 1이 중국에서 이루어졌는데, 숫자로 비교하면 미국에서 약 3만 대가 팔린 것에 비해 중국에서는 약 40만 대가 팔렸다고 합니다.

어떤 기사는 중국 내 스타인웨이 피아노에 대한 높은 수요를 신흥부자들의 과시적 소비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궁궐 같은 저택에 살려면 주인의 품격을 높여 줄 명품 그랜드 피아노 한 대쯤 있어야한다는 것이겠죠. 새로운 부자들이 많으니 장식용 수요도 많을 겁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순자산 규모가 약 160만 달러(18억 원)가 넘는 사람이 100만 명 정도이고 훨씬 더 소득이 높은 고소득층 인구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들의 규모가 엄청납니다. 앞서 인용한 기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피아노 교습을 받고 있는 학생 수가 약 5천만 명인데 그중 약 60~80%에 달하는 3천만 명이 중국인인 것이죠. 스타인웨이 임원은 10년 후에는 중국이 세계 전체 판매량의 약 반을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들이 이렇게 많으니 부모들의 관심, 관련 교육시설, 각종 경연대회 등도 많아 명품 악기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높은 것이 자연스러운 듯합니다.

중국에는 우리나라보다 먼저 피아노와 서양음악이 소개되었습니다. 19세기 서방 열강들이 아편전쟁 이후 쇠락한 청나라를 침략하여 여러 지역에 개항장과 조계(租界)를 만들어 많은 수의 관리, 상인, 선교사들과 가족이 살았습니다. 이렇게 들어온 서양인들과 현지인들의 접촉을 통해 서양음악과 피아노가 중국 내로 보급되었습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매년 흥미로운 긴 기사로 구성된 크리스마스 특집호를 발간하는데 지난달 특집호에 중국의 ‘피아노 섬’이라는 별명의 구량위(鼓浪嶼)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 작은 섬은 제1차 아편전쟁 이후 개항장이었던, 대만과 마주한 항구도시 샤먼(廈門)시 지척에 있습니다. 개항 이후 구량위에 서양인들이 많이 모여 살아 교회 예배, 소규모 음악회 등을 통해 중국 현지인들이 피아노와 유럽의 음악에 친숙해지며 이곳이 규모가 훨씬 더 큰 상하이와 더불어 중국 내 서양음악의 본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런 전통에 힘입어 이 섬 출신을 포함한 중국 피아니스트들이 1950, 60년대 쇼팽,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 문화혁명이 시작돼 십년 넘게 지속되며 중국에서 서양음악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습니다. 당시 기세등등하던 마우쩌둥(毛澤東)의 처 장칭(江靑)이 피아노를 “부르조아지의 뼈다귀들이 달가닥거리는 것처럼 소리가 시끄러운 검은 상자”라고 했다 하니 적폐를 말살하려는 홍위병들이 가만두지 않았겠지요. 보이는 대로 피아노를 부수고, 연주자와 음악가들을 악귀처럼 괴롭혀 여럿을 자살로 내몰았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가택수색을 통해 피아노와 베토벤의 흉상을 찾아서 파괴했다고 합니다.

상하이 교향악단의 지휘자였던 뤼홍옌(陸洪恩)은 <마오 어록>을 찢은 죄로 총살당하기 전에 동료 수감자에게 두 가지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나가면 자신의 아들을 찾을 것, 또 음악의 고향 오스트리아에 가서 베토벤의 묘에 헌화를 하고 “당신의 중국 제자가 장엄미사를 읊조리며 처형장으로 갔다”라고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이코노미스트 기사에 따르면 동료는 30년 후에 이 부탁받은 일을 행했다고 합니다. 당시 음악가들은 각종 위문 공연과 중국적 색채와 혁명 정신이 넘치는 작곡을 통해 음악이 혁명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 겨우 서양음악의 명맥이 유지되었습니다.

그 이후 강산이 여러 번 변하며 세상도 바뀌었고, 중국은 이제 스타인웨이의 세계 최대 시장이 되었습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량위에 1990년에 청소년을 위한 음악학교가 설립되었고 장쩌민(江澤民), 시진핑 등 지도자들이 방문하는 등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배출되는 졸업생 3분의 1이 세계 주요 음악학교(Conservatory)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뉴욕에 소재한 줄리아드 음악원이 작년 가을 중국 텐진(天津)시에 첫 해외 캠퍼스를 열었습니다.

이제 중국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와 여러 분야 연주자들을 배출하고 있고, 작곡 분야에서도 미국, 유럽에서 괄목하게 영역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2년 전 기사를 통해 다양한 중국 작곡가들을 소개하였습니다. 유튜브에서 랑랑(Lang Lang), 리윤디(Li Yundi), 유자왕(Yuja Wang)을 검색해보면 이들의 세계 주요 무대 활약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배타적인 국수주의적 세계관으로 물질적 풍요에만 집착하기보다 음악, 미술 등 예술을 통해 정신적 풍요에도 관심을 갖는 균형감 있는 중국이 우리에게도 더 좋은 이웃이 될 것입니다. 상업성이 높은 아이돌 연예인과 TV 드라마가 주축을 이루는 한류를 넘어 양국 간 폭넓은 분야의 교류에 관심을 가질 때입니다. 활동 무대를 공유하고 시장을 넓히는 것은 양국의 예술인들 모두에게 좋은 일일 것이고, 이를 통해 이웃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것입니다.


차이나데일리 기사 (“Steinway & Sons upbeat on hitting the right notes” China Daily Global Edition, 2019년 3월 19일),
이코노미스트 기사 (“How China made the piano its own” Economist, 2019년 12월 18일).
뉴욕타임스 기사 (“Chinese Composers with an Ear to the World”, New York Times, 2018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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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2019년 초까지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다양한 국내외 경제 현상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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