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기를!” [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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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없기를!”  [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 소장]

2020.01.11

새해가 되면 저마다 소망 하나쯤 가슴에 품습니다. 내 집 마련이나 취업, 다이어트나 해외여행, 자녀의 대학 합격 등…. 그런데 한때 그 모든 것들이 시들한 때가 있었습니다. 새해니 묵은해니 나눠 놓고 유난을 떠는 것 같아서 거부감이 일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어영부영 한 해를 보내고 나니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바라던 것이 설사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한 해를 돌아보며 결산도 하고 새해 소망을 하나쯤 가슴에 품고 정월을 맞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생전의 부모님과 어르신들께 세배를 드리면 어찌 그리 똑같은 덕담들을 하시는지…. “자식들 건강하고 너희들 화목하게 잘 지내는 것, 그것밖에 바라는 게 없다”고들 하셨습니다. 틀에 박힌 얘기 말고 좀 더 특별한 말씀은 없는 걸까 했었는데 이제야 부모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무탈하게 자식들 잘 크고 별일 없는 것이 최고의 행복임을. ’가정‘이 없는 가족, ’가족‘이 없는 가정도 많은데 숱한 사연들에 대해 상담을 하면서 ’별일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를 절감합니다. 돈, 성격 차, 대화 부족, 외도, 술과 폭력, 도박과 쇼핑 중독, 양가 갈등, 자식 문제, 종교 문제로 지지고 볶고 싸우는 가족들을 참 많이 만났습니다. 가정법원에서 이혼 조정을 끝내고 나올 때마다 아내와 아직도 별일 없이 잘 살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로또 1등에 당첨되거나 아이들이 좋은 대학교에 수석으로 합격하고 남편이 대기업 임원으로 승진하거나 투자한 주식이 대박이 나는 그런 경사까지는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저 별일만 없어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별일이 생기고 나서야 깨닫는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부모님이나 장인, 장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친구들의 연락을 최근에 부쩍 자주 받습니다. 하루에 세 건의 부고를 접하는 날도 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니 폐렴이나 낙상으로 돌아가시는 분도 있고 골절로 수술하고 입원하는 지인들도 있습니다. 배우자가 사망하거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접하기도 합니다. 교통사고로 입원하거나 보이스피싱으로 돈을 날린 사람, 아이들이 가출을 해서 속이 터진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행복한 가족, 화목한 부부라고 하면 아무 문제도 없고 갈등이나 불화도 없는 가족을 떠올리지만 행복한 가족은 아무 문제가 없는 가족이 아니라 크고 작은 불화와 사고를 겪으면서도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해 나갈 줄 아는 가족입니다.

요즈음 결혼 50주년, 60주년을 맞는 부부를 보면 진심으로 존경스럽습니다. 그 세월을 살아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예술이요 능력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올해로 결혼한 지 39년이 됩니다. 딸과 아들이 결혼하여 아이 낳고 별일 없이 잘 살고 있어서 고맙습니다. 대단한 권력이나 지위, 막대한 부를 누려본 적은 없지만 돌아보면 대체로 원만하게 살아온 것 같아 감사합니다. 누군가의 남편과 아버지가 되고 장인과 시아버지, 할아버지도 돼봤으며 좋은 사돈들까지 만났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매사에 감사하자, 늘 긍정적으로 살자’라고 하면 교과서적인 얘기라고 귀를 막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만큼 확실한 행복의 비결도 없습니다. 올해도 딸 내외와 아들 부부의 화목을, 봄이와 윤슬이, 손녀들의 건강을 빌었습니다. 그리고 올해도 아내와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지내게 해 주십사고 기도했습니다.

지하철을 탈 때마다 오가는 수많은 인파들 속에서 이 사람들의 표정이 더 밝아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봅니다. 빠듯한 살림이지만 올 한 해도 저녁이 있는 삶, 웃음이 넘치는 가정들이 되기를 빌어봅니다. house는 돈 주고 살 수 있지만 sweet home은 돈으로 살 수 없기에 별일 없을 때 더 정성 들여 물 주고 거름 주고 가꿔야 하는 것이 가정입니다.

지난 연말에도 이런저런 송년회에서 새해를 위한 건배 구호들을 외쳤습니다. 기발한 건배사로 웃음을 자아내고 의미를 더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제가 애창하는 건배 구호는 단연코 “별일!”, “없기를!”입니다. 별일이 없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은총인지 갈수록 절감하면서 2020년 벽두에도 혼자 조용히 외쳐 봅니다.
”별일!“
”없기를!“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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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강학중

(주)대교 대표이사, 한국사이버대학교 부총장 역임. 현재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과 가정경영연구소 소장으로 가족문제 예방에 힘쓰고 있다. 저서: ‘강학중 박사의 가족수업’, ‘남편수업’, ‘새로운 가족학(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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