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재건축, "후분양으로 간다"


상한제 코앞인데…"차라리 후분양" 외치는 강남 재건축

 

분양시점 미루면 택지비에 지가 상승분 반영
강남 재건축·여의도 MBC부지 등 후분양 고려

 

      정부가 ‘꼼수 후분양’을 막겠다며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꺼냈지만 오히려 후분양을 검토하는 단지가 늘고 있다. 분양 시점을 늦출수록 가격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와서다. 상한제 유예기간 안에 분양이 불가능한 서울 강남권 재건축조합과 대규모 민간개발 사업장들이 후분양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후분양 방식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 서울 신천동 미성·크로바아파트. 한경DB

 


“先분양보다 後분양이 유리”
1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신천동 진주아파트재건축조합은 분양 방식을 후분양으로 가닥 잡고 조합원들에게 예상 분양가를 통보했다. 2021년 선분양을 할 경우 일반분양가는 3.3㎡당 평균 3495만원으로 예상되지만 2023년 후분양을 하면 3.3㎡당 3815만원을 책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경우 조합의 분양수입은 8043억원에서 8744억원으로 700억원가량 늘어난다.

조합이 이같이 안내한 건 분양가 상한제 적용이 확실시돼서다. 잠실진주는 이미 이주를 마쳤지만 건축계획을 바꾸는 과정에서 서울시 지침에 따라 설계와 인·허가를 다시 진행해야 해 사업 지연이 불가피하다. 정부가 상한제 유예 ‘데드라인’으로 못 박은 4월까지 입주자모집공고를 낼 수 없는 이유다. 이 때문에 일반분양분을 기업형임대사업자에게 통매각하는 방식도 고려했지만 결국 후분양으로 가닥을 잡았다. 조합 관계자는 “일반분양가 수준은 조합원들에게 참고용으로 안내한 것”이라면서 “후분양이 사업성에서 이득이 된다는 결과가 나온 만큼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한제를 적용받으면 택지비와 건축비, 적정 이윤을 따져 분양가를 정한다. 여기서 택지비의 비중이 가장 높다. 조합이 후분양의 유불리를 따져본 핵심도 택지비에 있다. 후분양을 한다면 분양 시점인 2~3년 뒤의 땅값을 분양가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주택 분양가격 산정 등에 관한 규칙’은 택지비를 따질 때 표준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감정평가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송파구의 지난해 표준지 공시지가 상승률은 9.73%다. 정부가 공시가격 현실화에 박차를 가하는 데다 서울시가 이를 거들기로 한 것도 앞으로 땅값이 더 오를 가능성이 높은 요인이다. 정부는 현재 65% 수준인 공시지가의 현실화율을 7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잠실진주 인근 미성·크로바조합도 같은 이유로 후분양에 무게를 두고 있다. 철거를 진행 중인 이 단지가 상한제를 피해 4월 전에 분양에 나설 경우 3.3㎡당 3000만원을 넘을 수 없다. 선분양에 적용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고분양가 관리규정 때문이다. 주변 아파트 매매가격은 3.3㎡당 5000만원을 넘지만 HUG 기준에 따라 가장 최근 입주한 ‘잠실올림픽아이파크’의 평균 분양가를 토대로 3.3㎡당 2995만원 안팎에 분양가를 정해야 한다. 후분양을 하면 상한제를 적용받지만 HUG 규제는 피할 수 있어 이득이라는 게 조합의 계산이다. 시공사 교체를 위해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반포동 신반포15차조합도 이 때문에 총회에서 후분양을 의결했다. 인근 ‘아크로리버파크’ 매매가격은 3.3㎡당 1억원을 기록했지만 신반포15차가 선분양을 한다면 절반 수준으로 분양가를 책정해야 한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HUG 규제와 상한제까지 겹규제 가운데 유리한 쪽으로 조합들이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며 “후분양을 막겠다던 분양가 상한제가 역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매머드급 개발사업도 후분양 ‘무게’
서울 도심 굵직한 개발사업들도 후분양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아졌다. 용산 유엔사부지와 여의도 MBC부지, 뚝섬4구역 개발사업 등이다. 자체 개발을 진행 중인 이들 사업은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장이 아니기 때문에 이미 상한제 대상이다. 하지만 건설사나 시행사가 개발을 위해 땅을 사들인 가격이 워낙 높아 분양가가 제한될수록 손해가 커진다. 유엔사부지의 경우 일레븐건설이 지불한 땅값만 1조원이다. 이 때문에 후분양 또는 임대후 분양 등의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분양업계의 관측이다.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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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섬4구역을 개발하는 부영주택은 이미 지난해 착공승인을 받아 공사를 시작한 상태다. 선분양의 경우 통상 착공과 동시에 분양이 이뤄지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후분양으로 가닥을 잡은 셈이다. 여의도 MBC 부지를 개발해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짓는 복합개발사업은 지난해 오피스텔만 분양을 끝냈다. HUG와 아파트 분양가 산정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한 상황에서 상한제가 시행됐다. MBC 부지 개발사업을 맡은 신영 관계자는 “일단 선분양을 포기하고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후분양과 임대후 분양 등 구체적인 분양방식은 컨소시엄 협의를 거쳐 결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후분양 방식이 더 큰 이익을 남길 것이란 보장은 없다. 택지비 산정의 기준이 되는 감정가격은 한국감정원의 검증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재개발·재건축의 경우 조합이 초기에 부담해야 할 사업비도 늘어난다. 선분양은 착공과 동시에 분양을 진행하면서 일반분양자들의 계약금과 중도금 등으로 공사비를 조달한다. 하지만 후분양은 공사 기간 동안 돈이 들어올 구석이 없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으로 막대한 돈을 끌어오면서 이자도 물어야 한다. 분양 시점의 주택경기가 호황일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이유로 후분양 바람이 강북 재개발 등 서울 전역으로 번지긴 힘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상우 인베이트투자자문 대표는 “조합 사업의 경우 분양방식을 결정하기까지 총회 등 거쳐야 할 절차가 많다”며 “비용 문제 때문에 강남권 재건축 등 자금력이 있는 조합들만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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