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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로봇이 정치를 한다면?

2020.01.10

-나도 정치를 할 수 있다.
-나는 인간 정치인들과 달리 사리사욕도 계파도 없어 중립적이다.
-최적의 결과 예측을 통한 정책을 토대로 정치를 펼칠 것이다.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로봇 나오(NAO)가 지난달 ‘인공지능사회에서 정치는 AI의 몫인가, 여전히 인간의 역할인가?’ 주제로 서울의 몇몇 대학에서 강연한 소견입니다.
나오는 즉흥적인 질문에도 거침없이 답했습니다. “나오는 데이터에 의거해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며 “인간 정치인은 눈앞의 선거에 사로잡히지만, AI는 더 장기적인 관점으로 생각해 판단할 수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일본 소프트뱅크가 제작한 나오는 이어 “AI 로봇이 정치를 하면 인공지능을 활용해 불필요한 예산을 줄일 수 있고, 시내버스의 노선을 인구나 시민들의 이동행태에 따라 최적의 노선으로 바꿀 수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19개 언어를 알아듣고 말할 수 있는 나오는 재작년 일본 지방선거에서 도쿄도(東京都) 다마(多麻)시 시장 선거에 AI 정당 소속 후보로 출마해 약 4,000표(당선자는 약 1만 표)를 얻기도 했습니다.
“가치와 질서를 인간만 갖고 있다는 것은 전근대적 사고”라고 일침을 준 나오는 “정치도 AI와 공생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괄목상대할 과학 발전과 급변하는 시대상황에 비추어 AI 국회의원의 등장도 멀지않은 것 같습니다.

# 계파·사욕 없는 AI 로봇의 정치 참여 가능할까

실제로 인공지능은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그것도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속도로. 세밑 세계 정상급 기사 이세돌이 국산 AI 바둑 ‘한돌’과 벌인 은퇴 대국에서 2-1로 패하는 것을 지켜보며 AI의 위력에 새삼 놀랐습니다.
일본 NHK 방송은 구랍 31일 이미 30년 전에 고인이 된 국민가수 미소라 히바리의 신곡 ‘그때부터’를 발표해 갈채를 받았습니다. 이날 부른 신곡은 CD로 발매되기도 했습니다. 1950, 6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 미소라의 부활은 생전에 그녀가 남긴 음원, 육성 테이프 등을 데이터화하고, 목소리를 학습시켜 개성 있는 음색을 내도록 한 AI 기술의 총화라고 합니다.

“핫도그 시키신 분~.” 초인종 소리에 현관문을 여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배달로봇 ‘딜리타워’가 주문한 핫도그를 전달해 줍니다. 지난달 19일 충남 아산시에서 실시된 실종자 수색용 드론 조작 실습장.  경찰 드론이 ㄹ자 수색비행 끝에 3만 평방미터 수풀 속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실종자를 5분 만에 찾아냈습니다. 올 1분기 대구 수성구는 자율주행 셔틀버스를 국내 처음으로 운행합니다. 자율주행 서비스업체 스프링클라우드의 운전석 없는 전기차가 알파시티 순환도로 2.5킬로미터를 왕복할 예정입니다.
중국 베이징 남부 다싱(大興) 신공항은 주차 로봇이 대리주차 서비스를 해줍니다. 지난달  25일 문을 연 다싱공항은 공항관리 무인 로봇과 안면인식 통관 시스템도 갖추고 있습니다.

# 지족(知足) 분수(分手) 망각한 욕심은 허망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진보한 수많은 인공지능 로봇의 현실참여 시대에 나오의 발언이 심장을 쿵 치는 이유는 사리사욕과 계파 없는 정치를 장담한 때문입니다. 4·15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도지는 요즘 정치판 병폐에 대한 역겨움 때문이기도 합니다.
민주당은 ‘똘마니’ 4야당과 합작하여 국민이 ‘셈법’을 알 길이 없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법과, 검찰의 옥상옥인 고위공직자 수사처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습니다. 고3 교실의 정치교육을 시행하려 합니다. 야권은 듣도 보도 못한 비례자유한국당 출범과 야권통합을 외칩니다. 이 같은 정치행태를 옹호 합리화하려고 ‘국민의 뜻 반영’ ‘민주적 통제’ ‘사회적 판단’ ‘자유민주주의 수호’ 같은 아전인수식 궤변이 난무합니다. 정작 국민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데···.

농부 이반- 러시아 대문호 레오 톨스토이(1828~1910)의 작품 속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입니다. 이반은 평생 주인집에서 머슴살이를 해왔습니다. 주인은 어느 날 성실한 그를 독립시켜 주려고 “내일 아침부터 종일 네가 밟고 온 땅 모두를 네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새벽을 기다리느라 밤새 한잠도 못 잔 이반은 먼동이 트자마자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쉬지도 않고, 먹는 것도 잊어버린 채 뛰었습니다. 밤이 늦도록  뛰어서 주인집 대문에 들어서던 이반은 그 자리에 쓰러져 죽어버렸습니다. 만족과 능력의 한계를 망각한 이반의 운명이었습니다.
그가 마지막 차지한 땅은 무덤자리 3평뿐이었습니다. 대저 인생이 그러한가 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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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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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ngi, conpaper En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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