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는 마음 [방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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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는 마음

2020.01,08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는 뜻하는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연말연시엔 으레 이런 덕담으로 인사를 주고받습니다. 비록 작심삼일에 그칠지라도 무언가 새로운 계획을 세워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2020년 새해는 얼떨결에 맞은 기분입니다. 정말 어수선한 마음으로 한 해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남과 북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상황이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를 것처럼 새삼 위태로워 보입니다. 한반도 평화의 꿈은 3년 전 미북 간의 공개 협박전, 또는 2년 전 북핵 협상 직전처럼 아득히 멀어지는 분위기입니다.

새해 첫날 북한은 지지부진한 미국과의 협상에 대한 실망감, 지속적인 경제 제재에 대한 반감으로 새로운 전략 무기의 등장을 예고했습니다. 마치 경고라도 하듯 3일 미국은 북한과 마찬가지로 핵 문제와 테러 지원으로 갈등을 빚어온 이란의 군부 핵심 혁명수비대의 거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드론 정밀타격으로 폭살했습니다. 미국이 이번 군사 작전에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나라마다 논평이 분분합니다. 우리로서는 불과 2, 3년 전 미북 간의 험악한 공개 설전, 핵 협상 개시 직전의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국내 정치·사회는 탄핵 이전보다 더한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빨려들고 있습니다. 집권 이후 한반도 평화의 명분 아래 동맹국보다는 북한과 중국에 편중되어온 국방 외교, 과거 정권을 겨냥한 적폐 청산에 진력해온 현 정권의 노선과 시책에 반대해 주말마다 도심에서 대규모 항의 집회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선에 앞서 여론을 조작한 드루킹 사건, 지방선거 직전 경쟁 후보에 억지 혐의를 씌워 수사극을 벌인 선거 부정, 조국 자녀의 입시 비리와 사모펀드 의혹, 유재수 뇌물수수와 청와대의 감찰 무마 혐의 등등, 현 정권의 도덕성은 이미 땅에 떨어져 이제 누가 누구의 무슨 적폐를 청산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새로이 만들어질 공수처 역시 시비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검찰은 이제까지 현 정권이 목표한 적폐 청산에 앞장서 큰 공을 세워 왔습니다. 그러던 검찰의 칼끝이 공교롭게도 막 정권 핵심을 향하는 순간입니다. 이 시점에 공직자 수사 권한을 독점하는 공수처가 출범하게 된 것입니다. 야당은 ‘공수처가 정부 여당에게는 방어벽이 될 것이고, 야당이나 반대 세력에게는 나치의 게슈타포(Gestapo) 같은 괴물이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경제 사정은 새해 들어서도 녹록지 않을 전망입니다. 한국은행·한국개발연구원(KDI)·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모두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2.3%로 예측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한국금융연구원은 2.2%로 더 낮춰 잡았습니다. 반도체 등 몇몇 수출 선도 산업의 선전을 기대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제자리걸음 수준의 정체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미·중 무역협상, 브렉시트 (Brexit) 같은 대외적 변수에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되리라는 게 공통된 예상입니다.

미·중, 두 나라는 사실 현재의 무역 분쟁보다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세력 확대 정책의 충돌로 우리를 곤란한 처지로 내몰고 있습니다. 중국의 일대일로정책,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 사이에서 곡예하듯 줄타기를 해온 우리의 입지가 참으로 아슬아슬해 보입니다. 이번 연말연시에 일어난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관의 피습과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의 폭살 등 이어지는 중동 보복전의 여파도 두렵습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수입 석유에 의존해온 우리 경제가 더욱 어려움에 처하게 되지는 않을까요.

세계의 여건이 이렇듯 불확실한 가운데 섣부른 원전 포기, 과거사에 얽매인 일본과의 무역 분쟁, 공공기관의 인력 확대, 영세사업자의 목을 조르는 최저임금 인상, 귀족 노조의 고용 세습과 경영권 요구 등 우리 경제는 위험한 쪽으로만 달려온 느낌입니다.

일본과의 힘겨루기는 아직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 규제로 먼저 공격을 개시한 일본에서는 기업이나 지자체들이 양국의 교역 재개를 애타게 바란다는 뉴스가 나도는 반면 우리나라 기업이나 지자체들로부터는 아무런 불편 호소도 들리지 않으니 신기한 일입니다. GISOMIA 종료(파기)까지 들먹이며 일본 측의 수출 규제를 규탄해온 우리 정부의 대응은 공연한 헛발질이었을까요.

새해 벽두 희망과 덕담은커녕 불안과 불평만 쏟아내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신선처럼 천하태평 유유자적할 수만도 없는 게 소시민의 소심한 마음입니다. 지금처럼 신문·방송이 알릴 것만 알리고 가릴 것은 가리는 사회일수록 시민 스스로 안테나를 높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상사에 내가 직접 간여하고 좌우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나 되겠습니까. 그러니 내 판단과 의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결정에 목숨이라도 걸겠다는 결기를 가져야겠지요.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후회 없는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늘 깨어 있는 것 또한 소시민이 갖춰야 할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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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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