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 처리 답이 없는 게 아니라 의지가 없는 것!

 

사용후핵연료 처리 답이 없는 게 아니라 의지가 없는 것!

 

윤종일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2019년 3월 4일자 ‘프레시안’에 실린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의 ‘핵폐기물, 답이 없다’라는 기사를 읽고 글을 쓴다. 그의 주장처럼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관리는 전 세계 원자력계의 핵심적 현안임에는 틀림이 없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지속적인 원자력의 이용에 걸림돌일 수 있다는 것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핀란드에 건설 중인 사용후핵연료 직접처분장. photo POSIV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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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이용에 대한 찬반을 떠나 현재의 사용후핵연료를 마냥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다는 사실도 너무 자명하다. 프레시안 기고문을 읽노라면 ‘사용후핵연료에는 답이 없다’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생긴다. 과학적 근거가 매우 희박한 비전문가의 말을 인용하면서 마치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에 답이 없기를 희망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에 사용후핵연료 안전관리에 대한 과학기술 현황, 지식, 정보, 자료, 증거, 논거 등을 제시하려고 한다. 앞으로 원자력에 대한 찬반을 떠나 우리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하는 사용후핵연료 문제에 대해 건설적인 제언과 생산적인 논의가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시작한다.

김현우 선임연구원이 프레시안 기고문에서 주장하는 핵심은 첫째 ‘인류사적 시간을 초월하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의 처분 안전성’에 대한 의문과, 둘째 ‘기후변화, 자연재해 등 미래의 예기치 않은 변화에도 처분장의 건전성이 유지될까’에 대한 문제 제기일 것이다. 이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그는 ‘영원한 봉인’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의 말을 인용하면서 ‘인류의 나이로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천문학적 시간 동안 해제되지 않고 남을 수 있을까?’라며 우려를 제기한다. 그리고는 사용후핵연료에는 답이 없으니 원전의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고준위 혹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은 원자력발전소처럼 다중의 안전기능을 담당하는 여러 겹의 방벽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게 보면 인간이 안전공학적으로 고안한 공학적방벽과 자연이 제공하는 천연방벽으로 나눌 수 있다. 오른쪽의 <그림 1>은 처분장의 다중방벽시스템을 도식적으로 나타낸 그림이다. 수치는 대표적인 방사성핵종이 각 방벽으로부터 유출되는 상대 유출률을 나타낸다.

우선 간략하게 각각의 방벽을 살펴보기로 하자. 1차 방벽에서는 유리처럼 된 산화물 형태의 사용후핵연료를 감싸고 있는 지르칼로이 금속 피복관이 방사성핵종의 유출을 막는다. 실제 처분장에서의 사용후핵연료의 위해도는 방사능 총량이 아닌 방사성핵종이 얼마만큼 지하수에 녹아나는지를 결정하는 용해도에 의해 좌우된다. 사용후핵연료 내의 우라늄, 플루토늄 등은 산화물로 존재하는데 그 용해도는 수~수십 ppb(1ppb=10-9g/mL)로 매우 낮아 인간의 생활권까지 도달하는 양은 극히 낮다.



2차 방벽은 구리로 입힌 처분용기이다. 구리는 부식에 매우 강한 물질이다. 이런 구리의 낮은 부식률은 깊은 바다에 침몰한 전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628년 침몰한 스웨덴 전함 바사(Vasa)는 1961년에 인양되었다. 330년 이상 바닷물에 있던 바사 전함에는 구리 동전과 청동 대포 등의 유물이 있었다. 이 유물들의 부식 정도를 분석한 결과 연간 약 0.1마이크로미터(0.1μm/yr, 1μm=10-4㎝)의 부식률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수 환경에는 소금 등과 같은 염 성분이 많아서 쉽게 금속 물질이 부식된다. 우리가 흔히 염 성분이 많은 바닷가 인근에서 녹슨 철제 구조물을 보는 이치와 같다.

2차 방벽 구리, 1㎝ 부식에 10만년 걸려
바사 전함에서 인양된 구리 동전과 청동 대포는 일반실험실에선 확보가 거의 불가능한 구리 부식에 대한 귀중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한 실험실에서 300년 이상 동일한 시료에 대한 부식실험을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해수에서의 구리 부식률을 보수적으로 따져 처분장 지하수 환경에서의 부식률이라고 단순 가정하고, 이에 더해 보다 보수적으로 구리의 부식률이 시간에 따라 단순 정비례한다고 가정을 해보자. 그렇게 하더라도 1㎝ 두께의 구리가 완전히 부식되어 없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0만년이다. 이는 부식률의 역수(10만년/㎝)로 환산하면 얻어지는 값이다. 따라서 염도가 매우 낮은 심지층 지하수 환경을 고려하면 처분용기의 부식률은 훨씬 낮고 10만년 이상의 시간에도 그 건전성이 유지됨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구리의 낮은 부식률이 바로 스웨덴이나 핀란드에서 사용후핵연료 처분용기의 외벽에 구리를 입히고 사용하려는 이유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처분용기를 구상하고 있다.

 


3차 방벽은 처분장을 건설할 때 굴착으로 발생되는 처분장 주변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넣어주는 점토광물 성분의 뒤채움재·완충재이다. 만에 하나 1차 방벽과 2차 방벽의 모든 안전기능이 상실됐다고 가정하면 방사성핵종은 지하수를 통해 처분장 주변으로 유출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방사성핵종은 뒤채움재·완충재 점토광물 표면과의 흡착반응으로 제거된다. 마치 우리가 마시는 제주 모 생수처럼 지하수와 접촉하는 광물질이 유해 중금속을 제거해주는 원리와 같다. 이에 더해 뒤채움재·완충재 후보물질인 벤토나이트는 매우 낮은 수리 전도도(10-13m/s, 스웨덴 사용후핵연료관리공단 SKB 기술보고서 Report TR-10-69, 2010)를 가진다. 이 수치는 방사성핵종이 녹더라도 지하수를 통해 벤토나이트 뒤채움재·완충재 1m를 이동하는 데만 수십만 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하수에 녹더라도 3차 방벽이 흡착
이런 철통 방벽에도 불구하고 공학적방벽을 통과하는 방사성핵종이 존재한다면 심지층 처분장 주변에 있는 거대하고 다양한 성분을 가진 천연광물질과의 흡착반응을 통해 제거된다. 이를 자연이 제공하는 방벽, 즉 천연방벽이라고 부른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장기안전성 평가의 한 사례로 핀란드의 처분사업자 POSIVA에서 수행한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처분장의 안전목표(안전기준 10mSv/연)보다 수만에서 수십만 배 낮게 나타난다.

현재 핀란드에 건설 중인 사용후핵연료 직접처분장의 장기안전성 평가는 지난 수십여 년간 실험실과 현장실험을 통해 획득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계산한 결과이다. 하지만 반핵운동가들은 ‘어떻게 이 계산 결과를 믿을 수 있어?’라고 반문할 것이다. 어찌 보면 인류사적 연대를 뛰어넘는 긴 시간 동안의 안전성 평가이기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10만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플루토늄 등을 격리하는 것은 정말 가능할까? 과학자들은 처분시설을 설계하면서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해 고민해왔다. 특히 심층처분시설의 설계 연구가 활발할 당시, 연구자들은 천연방벽의 특성을 고려하여 처분시설을 설계하였다.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변수들이나 오랜 시간 동안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다양한 현상을 천연방벽의 특성을 통해 그 안전성을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천연방벽이 심지층에서 방사성핵종의 이동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지연시키는지는 지구의 다양한 환경에서 발견되어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아프리카 가봉에 위치한 오클로(Oklo) 천연원자로이다.

 


오클로 천연원자로가 입증하는 것
오클로 천연원자로는 1972년 프랑스 과학자에 의해 발견되었다. 약 17억년 전 우라늄-235 농도가 3.1%로 높았던 오클로의 16개 지역 천연암반에서 수십만 년 동안 자연적으로 핵분열반응이 일어났다. 이 현상은 자연에서 발생한 원자력발전과 같기 때문에 오클로 천연원자로라 부른다. 핵분열반응으로 오클로의 우라늄 암반에 형성된 플루토늄과 핵분열생성물 등은 주변의 석회질 점토광물 등에 흡착되어, 지난 18억년 동안 수m 정도만 이동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처분시설은 오클로 천연원자로 환경과 매우 유사하고 심도는 훨씬 깊다. 다만 이런 천연방벽에 공학적방벽을 더해 방사성핵종의 이동을 더더욱 최소화한다.

여기에는 매우 복잡한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을 것 같지만 사실 그 원리는 매우 간단하다.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의 다중방벽(공학적방벽, 천연방벽)은 일종의 방사성핵종을 걸러내는 필터 역할을 한다. 우리가 마시는 생수만 생각하더라도 천연방벽은 상상 이상으로 높은 안전성능을 보이는 방사성물질의 필터라고 할 수 있다.

김현우 연구원이 던지는 두 번째 의문성 질문은 과연 ‘기후변화, 자연재해 등의 예기치 않은 변화에도 처분시설이 건재할까?’이다.



우선, 예기치 않은 변화조차도 고려하는 게 과학이다. 방사성폐기물을 심지층에 처분하는 이유는 단순히 인간의 생활권으로부터 방폐물을 멀리 떨어뜨려놓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다양한 화학적 조건과 지질·기후학적 조건을 고려하여 인류사적 연대기를 뛰어넘는 오랜 시간 동안 방사성폐기물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채택된 방식이 심지층 처분이다.

일반적으로 심지층이라 하면 지하 500m 이상의 심도를 의미한다. 지표면에서 일어나는 기후변화가 이런 지하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자명한 사실이다. 혹자는 기후변화에 의한 빙하의 형성, 혹은 빙하가 녹아서 지질구조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할 수 있으나, 이로 인한 지표 환경 변화 등도 처분 안전성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자연재해 중 하나로 지질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진의 영향은 어떠할까? 지하로 갈수록 지진의 영향이 적어진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좀 더 과학적인 사실에 근거하면, 지진의 영향도를 평가할 수 있는 지반가속도가 지하로 갈수록 감소한다. 따라서 지하 500m에서는 지표면보다 지진의 영향이 훨씬 적을 수밖에 없다. 이는 실제 발생했던 지진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지하 500m는 지진의 영향도 적다
1976년 중국 탕산에서 진도 7.8의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었다. 당시 사망자 수가 24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탕산 지진은 지상의 건물들을 완파시킬 정도로 매우 큰 지진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같은 지역에 있던 지하대피시설은 아주 경미한 손상을 제외하곤 온전한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 건설될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심지층 처분시설은 이 단순한 지하시설에 비해 훨씬 높은 내진 설계를 갖추고 있다. 심도 또한 매우 깊다. 근거 없이 막연하게 기후변화나 자연재해에 의해 방사성폐기물 심지층 처분시설의 건전성과 안전성이 유지되지 못할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사용후핵연료의 안전관리에 대한 대중의 불안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다만 이런 대중의 막연한 불안감을 이용하여 근거 없는 공포감을 조성하고 전문가들의 과학적 의견보다 비전문가들의 확증편향적 주장을 더 신뢰한다면 사용후핵연료 문제의 해결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사용후핵연료는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원자력에 대해 아무리 이념적으로 호불호가 있더라도 진정으로 환경을 위한다면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지난 수십 년간의 연구를 통해 확보한 수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제는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공학적인 고민과 사회적 합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진정 환경을 생각하는 책임 있는 태도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길이 있는데도 의지가 없으니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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