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빚 누가 갚나요?" 김근태 서울대 공대 대학원생

 

 

"나랏빚 누가 갚나요? 문재인·이낙연 할아버지가 갚을 겁니까"


['조국 퇴진' 서울대 집회 주도, 김근태 서울대 공대 대학원생]
"탄핵 집회로 정권 바뀌었는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중적 진영 논리서 벗어나야
박근혜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 보수 통합의 주된 話頭 되는 것 이 자체가 얼마나 한심한가"

 

   경자년 첫날, 김근태(30)씨는 오토바이 헬멧을 들고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자신의 '자가용'인 오토바이를 몰고 왔다고 했다. 그는 작년 9월 조국 사퇴를 촉구하는 서울대 촛불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았던 서울대 재료공학부 박사과정 학생이다. 당시 그는 이렇게 발언했다.

"우리는 박근혜 탄핵 촛불 집회 때도 나갔다. 정권은 바뀌었는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다'는 식의 이중적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거의 부정에는 민감하고 현재의 위선에는 관대한 이유를 난 모르겠다.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김근태씨는 “성공한다는 확신에서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이기에 창당한다”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버티던 조국 법무부 장관이 35일 만에 사퇴하자, 서울대 총학생회는 더 이상 집회를 열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서울대 커뮤니티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조국 사퇴로 끝이 아니다. 적어도 정권 차원의 사과나 해명이 필요하고 책임 있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공정한 대한민국은 공허한 말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학생회 간부도 아닌 그가 서울대 4차 집회를 주도했다. 그 뒤 서울대·고려대·연세대·카이스트 등 전국 대학 16곳 학생들이 참여한 '공정추진위원회' 대표를 잠시 맡기도 했다. 광화문 집회에는 '서울대 깃발'을 들고 네 번이나 참여했다.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 만큼 '가짜 서울대생' '자유한국당 당원' '이단 종교단체 배후설' 같은 악성 댓글도 쏟아졌다.

"기사에 딸린 악플은 봤지만 신경 끄고 살기로 했습니다. 현 정권에서 많은 국민이 맹목적 진영 논리에 갇혀버렸습니다. 우리가 이런 정권을 보기 위해서 3년 전 박근혜 탄핵 집회에 나갔던 게 아닌데 말입니다."

 


아버지 工場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공대 박사과정이라면 연구실에 있어야 하지 않나요?

"저는 박사 학위를 마치고 아버지 공장에서 일하려고 했습니다. 조국 사태가 없었으면 이렇게 주도적으로 나서지는 않았을 겁니다. 박근혜 정권을 탄핵하고 '정의' '공정'을 내세워 정권을 잡았는데 막상 뚜껑을 여니 그 전보다 나은 게 없잖아요. 말과 행동이 너무 다르잖아요."

―아버지가 제조업을 합니까?

"직원 한 명 있는 가내공장을 합니다. 공업용 다이아몬드를 만듭니다. 아이템이 좋아 월 1000만원가량 영업이익을 내왔습니다. 하지만 제 눈에는 공정과 품질 면에서 개선 여지가 많지요. 학위를 마치면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교수가 될 생각은 없었고, 집안 공장을 잘 키워 아버지를 회장님으로 만들어 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 목표를 정했으면 그렇게 해야지, 왜 막판에 궤도 이탈을 했지요?

"아버지는 화이트보드에 거래처 주문 현황을 적어놓습니다. 문재인 정권 들어선 뒤로 빈 공간이 너무 많이 생겼습니다. 소득 주도 성장 정책 같은 실험의 결과가 아버지 공장에도 나타난 것이지요. 나라가 망한다는 게 전혀 터무니없는 얘기가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공대생은 상대적으로 정치·경제·사회 문제에 관심이 덜한 편인데.

 


"아버지 공장에서 문제의식을 느끼면서부터 뒤늦게 그쪽 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고려대 운동권 출신으로 전향한 이모부를 찾아가 밤새 얘기를 나눈 적도 있습니다. 주사파에 경도됐던 586 운동권의 실상을 들었습니다. 현 정권이 나라를 왜 이렇게 끌고 가는지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현 정권을 움직이고 있는 586 운동권 세대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렸습니까?

"문재인 정부는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며 출발했지만, 여태까지 보여준 것은 자신들의 패거리 권력으로 자신들만의 이익과 영달을 누렸습니다. 번지르르한 말로 오랫동안 대중을 속여왔습니다. 조국은 위선과 이중성, 표리부동의 상징적 사례일 뿐이죠. 그는 장관직을 사퇴할 때 입으로는 '청년들에게 미안하다'고 하면서 20분 만에 교수 복직 신청을 했고, 복직 사흘 만에 400여만원의 보름치 월급을 챙겼습니다."

"우리 세대가 잘했어야 하는데"

―그래도 청년 세대의 문 대통령 지지는 여전히 높지요?

"문 대통령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국민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불리한 통계 지표는 빼버리고 좋은 지표만 인용하고 감성팔이를 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외교 안보관은 수구적 민족주의에 가깝습니다. 민간에 대한 국가 개입 정도를 보면 전체주의적 성향이 짙습니다. 말로는 '공정''정의'를 떠들지만 과연 진정성이 있습니까. 자기 아들이나 이민 간 딸의 의혹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청와대 측근이 울산시장 선거 개입에 연루됐는데 과연 대통령 책임은 없는 걸까요."


 


―현 정권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낀 것과 박사과정 학생이 실제 행동에 나서는 것은 다른 차원의 얘기인데?

"재작년 말 '전대협'이라는 단체가 나타나 '경제왕 문재인… 마차가 말을 끄는 기적의 소득 주도 성장' '기부왕 문재인… 나라까지 기부하는 통 큰 지도자'라는 내용으로 '문재왕(王) 시리즈' 대자보를 전국 100여 대학에 붙였습니다.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친구들이 있구나 하며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작년 9월 초 '전대협'이 한밤에 서울대에 와서 대자보를 붙였습니다. 이를 생중계하는 유튜브를 보다가 저는 오토바이를 몰고 서울대로 찾아갔지요. 이들과 함께 활동하는 동안 어떤 뜨거운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주완중 기자

 


―뜨거운 감정이라면?

"이 친구들이 단순히 재미나 장난으로 하는 게 아니라 결연한 의지가 있구나, 나도 전력을 다해야겠다는 마음이었지요. 그래서 서울대 촛불집회에서 발언하고 집회를 주도했던 겁니다."

―자식을 대학원까지 보내준 아버지는 뭐라고 하던가요?

"아버지는 좌파 성향이고 문 대통령을 찍었지만 이제 저를 이해합니다. 박근혜 정권 시절 아버지는 저를 앉혀놓고 '우리 세대가 사회를 잘 만들었어야 하는데 미안하구나'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20년 뒤 저도 똑같이 아들을 앉혀놓고 미안하다는 얘기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걸 저는 방관할 수 없습니다."

―청년 세대 입장에서는 무엇이 가장 잘못됐다고 봅니까?

"현 정권의 모든 정책은 '현재'에 국한돼 있고 선거에서 표를 얼마나 더 얻을 수 있느냐에 맞춰져 있습니다. 대부분 현금을 살포하는 선심성 복지정책입니다. 그 돈은 어디서 나옵니까. 그 나랏빚을 누가 갚습니까. 60대 후반의 문재인·이낙연 할아버지가 갚을 겁니까. 나중에 우리 청년 세대가 갚아야 합니다."

 


―'대표 없이 조세 없다'는 말이 있지만, 청년 세대가 막대한 복지 예산 증액 등을 승인한 적은 없지요. 나라 장래를 위하는 지도자라면 반드시 해야 할 국민연금이나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대한 개혁은 자기 표를 잃을까 봐 아예 건드리지 않지요.

"미래 세대에게 모든 책임을 돌려놓고 생색은 자기들이 내는 겁니다."

이미 생명력 잃은 보수 정당

―보수의 세대교체를 내걸며 창당 작업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대의를 위해 몸 바치는 친구들과 '정민당(正 黨·바르고 굳센 당)'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광화문에서 아무리 '반(反)문재인'을 외쳐도 자유한국당의 지지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이미 생명력을 잃은 정당입니다. 보수 정당 의원들은 나라가 어떻게 되든 망가지든 말든 야당은 야당으로 존재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자기 자리만 지키면 된다고 여깁니다."

―그런 열정은 높이 사지만, 현실에서는 또 하나의 보수 분열을 추가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까요. 통합이 안 되면 보수는 선거에서 대패합니다. 그럼에도 보수 통합은 안 될 것으로 나는 봅니다.

"보수 통합을 얘기할 때마다 '박근혜 석방'이나 '탄핵을 둘러싼 잘잘못' 문제로 갈립니다. 왜 지금 그 얘기를 하고 있나요? 앞으로 이 나라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미래의 비전에 대해 얘기해야지요. 지나간 인물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보수 통합의 주된 화두가 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한심합니까."


 


―일부 보수 세력은 박근혜 탄핵부터 바로잡아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옳고 그름을 떠나 이게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됐습니다.

"탄핵 재판 절차에는 문제가 좀 있었지만 지금 그걸 바로잡겠다거나 원상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납득이 안 됩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이보다 훨씬 더 급박한 과제들에 직면해 있습니다. 박근혜 문제를 계속 끄집어내는 세력의 상층부는 어떻게 하면 콘크리트 지지층을 자기 편으로 더 끌고올 수 있느냐를 우선 계산하는 이들이라고 봅니다. 불확실한 국가 대의보다 확실한 자기 자리를 확보하려는 것이지요. '박근혜 석방'을 외치는 정당의 지도부는 어쩌면 박근혜 석방을 가장 바라지 않을지 모릅니다. 박근혜가 감옥에 있어야 대리인 행세를 하며 지지자들을 규합할 수 있으니까요."

―나이가 젊다는 것은 신선한 측면이 있지만 그게 늘 옳음을 의미하지는 않지요. 신선한 생선일수록 쉽게 썩기도 합니다.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정치의 본질은 공동체 구성원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가치와 대의를 가진 사람들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보수가 이기는 길은 나도 세대교체밖에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정치는 현실이고, 젊은 친구들이 '운동'하듯 해서 정당의 성공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100% 성공한다는 확신에서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이기에 합니다. 저는 공대 연구자로서 AI 등 4차 산업혁명으로 벌어질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과거 어느 인류가 겪었던 것보다 지금은 더 급격한 변화에 직면해 있습니다. 나라를 끌고갈 정치가 그런 변화의 대응을 놓치고 있습니다. 지금은 기존의 것을 흘려보내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정치적 전환기라고 봅니다. 저희는 새로운 흐름의 선봉에서 깃발 드는 역할을 할 겁니다."

내 아들 세대의 도전이 실패해도 나는 여전히 이들을 지지할 것이다.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일보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