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보고 [허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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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보고

2019.12.20

며칠 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실황 연주는 처음이었는데 작은 편성의 기악, 독창과 합창이 때로는 따로 또는 어울려 빚어내는 아름다움에 3시간 가까이 몰입해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평소에도 바흐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12월 즈음 그의 종교음악을 더 찾아 듣습니다. 공연장을 꽉 채운 관객의 규모로 보아 그런 취향이 필자만은 아닌 듯했습니다. 연주회 동안 내내 왜 그런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런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성서에서 천사들이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을 처음으로 전한 귀한 신분이 아닌 목동, 즉 보통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보통사람을 위한 팡파르>
이 제목은 1942년 미국의 음악가 아론 코플랜드가 작곡한 짧은 관현악곡으로 타악기와 관악기의 소리와 멜로디가 웅장하고 극적이어서 행사나 영화 등에서 종종 쓰입니다. 원래 2차 대전 기간에 군인들과 민간인들의 사기를 고취하기 위해 한 교향악단의 지휘자가 코플랜드에게 의뢰하여 만들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기간 영국과 유럽에서 참전 군인들을 위한 팡파르 연주는 자주 있었다고 합니다. 코플랜드의 팡파르는 후방의 일터에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민간인들도 사기를 높여야 할 필요를 반영한 것이지요. 천상의 특별한 존재 천사들이 보통사람 목동들에게 먼저 나타난 것도 이런 보통사람을 위한 팡파르가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사실 각자의 처지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많은 보통사람들은 칭송을 들을 만합니다. 틈틈이 보는 우리나라의 TV프로그램 인간극장에는 굴곡진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물론 대부분 훈훈하게 이야기가 끝나지요. 유감스럽게도 이런 행복한 결말 부분이 없이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전쟁터의 크리스마스>
1차 세계대전 초기인 1914년 말 프랑스 북부, 지금의 벨기에 지역에서 각각의 참호에서 대치하던 영국과 독일 병사들이 성탄절 즈음 각본에 없이 교전을 멈추고 중간지대로 나와 같이 어울렸던 ‘성탄절 휴전’ 일화는 유명합니다. 처음에는 이 일화를 무덤덤하게 들었는데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상황을 더 알게 되며 상당히 감동적인 일이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8월 시인 윌프레드 오웬에 대한 글에서 썼듯이 당시 전쟁터는 처참했고 희생자 수가 어마어마했던 잔혹한 사건이 벌어졌던 곳이었습니다. 필자가 다녀본 바로는 영국은 작은 마을에서도 1차 대전 전몰자를 위한 충혼탑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당시의 희생자 규모가 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에 호주 서부의 도시 퍼스를 방문했을 때 도심 공원에 세워진 지역 출신 1차 대전 전몰자를 위한 대형 기념비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수십 년 전 도시화가 덜된 우리나라에서도 읍, 면 단위 이하의 마을에서까지 비슷한 한국전쟁 전몰자 위령탑이 많이 보였죠.

성탄절 휴전은 대치한 적들을 미워해야 할 이유가 분명치 않았고, 얼마 전까지 보통사람 민간인이었던 참호 속 군인들에게 전쟁의 추상적이고 살벌한 대의명분보다 성탄절의 따뜻한 의미가 컸기에 나타난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전쟁이 길어지면서 양 진영의 지휘부가 병사들의 이런 행동을 엄격히 금지했습니다. 바흐 오라토리오의 전반부는 구세주 예수의 탄생을 둘러싼 긍정적, 혹은 유토피아적인 메시지가 주를 이룬 것에 비해 후반부는 아기 예수를 찾아 죽이려는 헤롯 왕의 음모, 원수 마귀들을 응징하는 일종의 디스토피아적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이런 비유로 보면 1차 대전이 더 흉포해지면서 양측의 지휘부는 병사들이 인간적이기보다 디스토피아적 살인 병기가 되기를 원했던 거라 해석할 수 있지요.

<2차 대전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바흐의 가보트>
2차 대전을 통해 제일 희생자가 많았던 나라는 소비에트 러시아였습니다.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악인 히틀러와 스탈린이 전쟁 초기 야합하여 두 나라 중간에 위치한 폴란드를 양분하는 동업자로 출발하지만 독일이 러시아를 침공하면서 큰 전쟁이 시작됩니다. 나치 독일의 침공은 150년 전쯤 나폴레옹의 군대가 그랬던 것처럼 파죽지세로 시작됐으나 처참한 패배로 결말이 나지요. 특히 처참했던 것이 1941년부터 3년 가까이 이어진 독일군의 스탈린그라드(그 이전 페트로그라드, 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봉쇄였습니다. 전후 뉘른베르크 나치 전범 재판에서 중요한 죄목으로 취급될 정도로 러시아 측 피해가 컸는데 숱한 아사자를 포함한 민간인과 군인 희생자(각각 약 백만 명)가 많았습니다. 독일군 측도 약 50만의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당시의 그곳 상황을 보여주는 각종 기록물들이나 다룬 영화들은 전쟁터가 얼마나 처참한 곳이었는지 짐작케 합니다. 러시아는 음악가들이 포위된 그곳을 어렵게 찾아 군인들과 주민들을 위문하기 위한 연주회를 열곤 했다고 합니다.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7번 교향곡 ‘레닌그라드’가 1942년 그곳에서 초연되었으니 코플랜드의 팡파르와 비슷하나 훨씬 더 처절한 배경과 절실함을 담았다고 하겠지요.

여기에서도 감동적인 일화가 전해 옵니다. 러시아 작곡가이며 바이올린 연주자인 미하일 골드스타인이 1942년 12월 마지막 날 전선 가까이서 확성기를 사용하여 연주를 하는데, 믿기 어려운 처절함에 충격받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인지 당시 러시아에서 연주가 금지되었던 독일 작곡가들의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음악이 끝나자 독일군 진영에서 서툰 러시아어로 “사격을 안 할 테니 바흐를 더 연주하시오“라고 외쳤습니다. 확성기로 퍼져 나간 바흐의 가보트(Gavotte) 선율이 그 저주받은 땅을 잠시 위로했습니다. 동토의 참호나 무너진 건물의 은신처에서 추위와 공포에 떨다 바흐의 음악에 눈물을 흘린 군인들도 있었을 겁니다. 만약 내가 그곳에 있었더라면 상상 못할 지하세계의 추함과 천상의 아름다운 소리의 부조화에 울음을 터트렸을 테니까요.

철학에 대해 문외한인 것을 고쳐보려고 십년 전쯤 버트란드 러셀의 ⌜서양철학사⌟와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읽었습니다. 특히 포퍼의 정치철학 비판서가 플라톤으로 시작해 헤겔, 마르크스 등 익히 들었던 사상가들을 전체주의의 원조로 규정하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이 매우 인상이 깊었고 공감했습니다. 두 책 모두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에 쓰이고 출판되었습니다. 나치의 유대인 말살 정책 홀로코스트로 인해 이 지역을 먼저 손에 넣은 나치들에게 수많은 동부와 중부 유럽의 유태계 지식인들이 희생되었습니다. 포퍼의 책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한 유태계인 그가 가까운 주변의 비참한 상황을 목격하며 독일의 나치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와 같이 사악하고 살인적인 전체주의의 유래를 밝히려 한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사조가 정치적으로 세력화하여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미신적인 집단적 미움과 결합하고, 보통 사람(시민)들은 혹세무민의 대상, 동조자, 그리고 피해자가 됩니다. 이런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경우는 물론, 수수방관하는 지식인들도 포퍼의 엄정한 비판의 대상인 것입니다. 근래 국내외에서 점점 선동과 거짓이 득세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러셀과 포퍼가 작금의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았다면 상당히 충격을 받을 거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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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종교적인 의미 때문도 아닌데 필자를 포함하여 사람들이 성탄절 절기에 종교적 음악을 찾는 것은 위로가 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내가 걱정한다고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어려운 세상사를 내려놓고 믿는 것과 무관하게 자비로운 종교의 절대자에 의지하여 “주의 긍휼, 주의 자비로 저희를 위로하시고 자유롭게 하소서(註)”라는 청원의 노래에 잠시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가까이 그리고 멀리 있는 사랑하는 이들, 또 여러 모양의 어려움을 겪는 지인들, 모르는 분들 모두에게 평안을 빕니다. Dona nobis pacem.

註: 바흐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Weinnachts-Oratorium BWV 248) 제 3부 소프라노와 베이스 이중창 가사의 일부.

직접 인용된 인물 자료.
Johann Sebastian Bach(1685-1750); Aaron Copland (1900-1990); Wifred Owen(1893-1918); Dmitri Shostakovich(1906-1975); Mikhail Goldstein(1917-1989); Bertrand Russell(1872-1970); Karl Popper(1902-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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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2019년 초까지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다양한 국내외 경제 현상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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