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궤도 수정하나...신한울 3·4호기 재개여부 공론화


탈원전 궤도수정하나… 대통령직속기구, 신한울 3·4호기 재개여부 공론화

박은호 논설위원


[균열 시작된 탈원전 정책]


온실가스 계획 내년 유엔에 제출

원전 활용 안하면 감축 어려워… 미세먼지·전기료 인상도 부담 커

다음달부터 공론화 과정 시작 "신한울 문제가 핵심 안건 될 것"

울진경제·관련업계 타격 심각… 일각선 "지역민 달래기 총선전략"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환경회의가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여부를 공론화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미세 먼지와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석탄·LNG·재생에너지·원전 등 에너지별 발전(發電) 비율과 전기 요금 인상 문제를 공론화에 부치는 과정이 다음 달부터 본격 시작된다. 기후환경회의 관계자는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문제가 핵심 안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온갖 반대 여론에도 꿈쩍하지 않던 '탈원전 성벽' 균열이 시작된 것이다. 기후환경회의가 세운 공론화 일정을 요약하면 '내년 2월까지 에너지 믹스(mix), 전기 요금 인상 등에 대한 복수 시나리오 마련→국민 정책 자문단 구성→시나리오별 장·단점 등에 대한 공론화 착수→현 정부 출범 3주년인 내년 5월에 최종 방안 확정, 발표'한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논의 성과에 따라 발표 시점이 내년 하반기로 늦춰질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어떤 식으로든 (원전 건설 재개 등) 성과가 도출될 것"이라고 했다.




탈원전 균열이 시작됐다

정부는 출범 직후 7000억원을 들여 보수한 월성1호기 조기 폐쇄, 신규 원전 4기 백지화, 30~40년 가동 허가를 받은 원전 10기의 수명 연장 금지 등 탈원전 정책을 발표했다. 공정률 30%인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지도 포함돼 있다. 탈원전은 이 정권의 금과옥조나 마찬가지였다. 4대강 보(洑) 해체, 최저임금 과속 인상, 주 52시간 근무, 소득 주도 성장 같은 주요 정책이 여론 등에 밀려 수정·후퇴하는 등 상처투성이가 됐지만 탈원전만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정권의 자존심'으로 여겨지던 탈원전에 대해 여당 내 '반란' 시도가 있긴 했다. 문재인 대선 후보 캠프 선대본부장을 지낸 송영길 민주당 의원이 올 1월 '속도 조절론'을 내걸며 신한울 3·4호기 건설 필요성을 얘기했다. 환경 단체 등의 포화가 쏟아지고 청와대도 "원전 논란은 이미 정리가 끝난 사안"이라고 일축했다. 반란은 금세 제압당했다.


 

탈원전 정책으로 건설이 백지화된 경북 울진군 신한울 원전 3·4호기 예정지. 국가기후환경회의는 다음 달부터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공론화에 나선다. 




그러나 이번 탈원전 공론화의 의미는 차원이 다르다. 기후환경회의는 미세 먼지 문제, 기후변화 대처를 위해 올 4월 출범한 대통령 직속 기구다. 정부 관계자는 "대통령 기구에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공식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나선 것부터가 탈원전 궤도를 수정하겠다는 강력한 신호"라고 했다. 위원장을 맡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도 평소 미세 먼지, 기후변화에 대처하려면 "야심 찬 계획이 필요하다"며 '원자력 활용'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여왔다.


기후환경회의 구성원은 정부 주요 부처 장관과 청와대 사회수석, 여야 국회의원, 지자체장, 재계, 시민사회 단체 인사 등이다. 여기에서 결정되기만 하면 행정적 뒷받침은 물론 여론 반발도 누그러뜨릴 수 있는 구조다. 기후환경회의가 올 10월 첫 작품으로 내놓은 '겨울철 미세 먼지 대책'도 석탄화력발전소 10~20기 무더기 가동 중지 등 파격적 내용이 담겨 정부 일부 부처가 반발했지만 원안대로 밀어붙였다고 한다. 기후환경회의 관계자는 "탈원전 공론화도 제대로 밀어붙일 것"이라고 했다.


"원전 없이 온실가스 감축 불가능"

기후환경회의가 탈원전 공론화를 꺼낸 것이 '느닷없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원전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갈등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우리도 1990~2000년대 슈뢰더 총리가 이끈 독일처럼 '에너지 컨센서스'를 이뤄내야 한다"고 했다. 당시 독일 사민당 정권이 발전 회사 등의 거센 반발을 누르고 탈원전 정책을 법제화한 것처럼 우리도 이제는 사회적 합의를 모아 갈등을 누그러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현 정권이 원인을 제공했으니 실마리도 이번 정권에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퇴로 확보'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2050년까지 온실가스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 등을 담은 국가 감축 계획을 내년까지 유엔에 제출해야 하는데, 탈원전을 고집할 경우 목표 달성이 사실상 불가능해 궤도를 수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온실가스 감축 계획은 실패를 거듭하는 중이다. 전 정부가 세운 '2020 감축 계획'〈그래픽〉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목표를 20%까지 웃도는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현 정부의 '2030 감축 계획'도 목표만 세웠을 뿐 구체적 감축 수단은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결국 원전 활용이 돌파구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정부는 태양광·풍력을 늘리고 LNG 발전을 확대하려 하지만 그럴 경우 전기 요금을 대폭 올려야 하고 온실가스, 미세 먼지 감축 효과가 반감할 수밖에 없어 "원전 활용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선 "내년 총선 전략으로 공론화를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예정지인 경북 울진 주민과 원전 업체가 즐비한 경남 창원 등 탈원전 반대 여론을 감안했다는 것이다. 기후환경회의 측은 "선거와는 전혀 관련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신한울 3, 4호기 경과 일지표


9차 전력 수급 계획 반영 가능성도

신한울 3·4호기는 작년 6월 두산중공업이 공정률 30%까지 진척시킨 상태에서 건설이 중지됐다. 공사를 발주한 한수원이 이미 집행한 비용 1500억원과 두산 측이 제작 중인 원전 주 기기 손실 등을 합하면 매몰 비용이 7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원전 업체는 내년 신고리 5·6호기 주 기기 납품이 끝나면 일거리가 사실상 없어지게 된다. 두산중공업의 460여 협력업체, 원전 보조 기기를 공급하는 2000여 업체도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기후환경회의 관계자는 "(탈원전 공론화 논의가) 어디까지 확장될지 알 수 없다"면서도 "신한울 3·4호기 문제는 반드시 포함될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든 매듭을 짓고 넘어가겠다는 것이다.


기후환경회의의 공론화 작업은 정부가 수립 중인 9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2033년까지 이용할 석탄·재생에너지·LNG·원자력발전 비율 등 에너지 믹스를 결정하는 9차 계획은 이달 중 초안을 완성해 정부 부처 간 논의를 하게 된다. 한 관계자는 "9차 계획은 원래 올해 말까지 수립해야 하는 법정 계획이지만 내년 총선 이후로 미뤄진 상태"라며 "기후환경회의 공론화 결과를 반영해 초안을 수정하는 작업이 내년 중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유엔 "文정부 탈원전정책 때문에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 불가능"



최근 국제사회에선 기후변화 위기가 고조되면서 원자력을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부쩍 커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원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던 유럽의회는 최근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려면 원자력을 포함한 모든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는 결정문을 채택했다. 유럽의회 산하 환경위원회가 애초 '단계적 원전 퇴출'을 안건으로 올렸지만 본회의에서 이를 정반대로 뒤집어 '친원전'을 선언한 것이다. 결의안은 찬성 322표, 반대 298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통과됐다.


유엔환경계획(UNEP)도 지난달 '온실가스 배출량 격차 보고서 2019'를 펴내고 "한국은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보다 배출량이 15% 이상 늘어날 것"이라며 "목표 달성이 불가능해진 것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앞서 지난 5월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기존 원전과 신규 원전에 대한 투자를 정책적으로 강력히 지원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영국 보수당에 이어 노동당도 최근 '신규 원전 건설' 입장을 밝힌 데 이어 호주 의회가 1998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탈원전 정책을 부분적으로 폐기하고 "차세대 신기술 원자력발전소를 승인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같은 일련의 움직임을 촉발한 것은 작년 10월 유엔 산하기구인 정부간기후변화협의체(IPCC)가 내놓은 '1.5도 특별보고서'다. IPCC는 보고서에서 "지구 온도 상승 폭을 1.5도 아래로 묶으려면 2030년까지 원전을 지금보다 최대 106%까지 늘려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19/20191219000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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