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에 대한 기억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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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에 대한 기억

2019.12.19

50년 전 개발도상국으로 발돋움하던 한국이 해외에 팔아먹을 것이라곤 가발과 섬유제품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때 와이셔츠 박스를 싸 들고 세계를 누비며 소위 ‘샐러리맨의 신화’를 만들었던 사람이 청년 사업가 김우중이었습니다. 1970년 전후의 그런 인상이 남아 있어서인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죽음을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색했습니다.
그 시대엔 ‘벤처’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그는 탁월한 벤처 기업가였습니다. 여간해서는 보통 사람이 여권을 받을 수 없었던 시절, 세계를 상대로 장사를 하는 ‘대우실업’은 대학생들이 한 번쯤 마음속에 그려보는 꿈의 직장이었습니다.

나는 ‘대우’ 근처에 얼씬도 못해봤지만, 유난히 김우중 회장의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내 고향이 제주도이고 그의 가까운 친척 동생 중에 내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김우중이 세간의 화제가 되자 그의 제주도 연고를 놓고 서울에 사는 제주도 사람들 사이에 갖가지 얘기가 나돌았습니다. 김우중 회장의 아버지는 제주도 태생으로 일본 유학 후 대구사범을 비롯하여 전국 여러 곳에서 교사생활을 하다, 해방 후 한때 제주도지사를 지냈습니다.

확인할 수 없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합니다.
청와대 주인이 된 박정희 대통령이 초도 순시로 제주도를 방문하여 도정 브리핑을 받았습니다. 박 대통령은 브리핑 차트를 보다 벽에 붙은 빛바랜 사진 한 장에 눈길을 고정했습니다. “저 사람이 누구요?”라고 박 대통령이 묻자 브리핑하던 당시 도지사가 “과거 도지사 했던 분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사진 속의 인물은 대구사범에서 박정희 학생을 가르쳤던 김용하 선생이었습니다.
이게 인연이 되어 청년 사업가 김우중은 청와대에 불려가 아버지의 제자, 즉 박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무엇을 도와주면 되겠냐는 대통령의 물음에 패기의 청년 김우중은 “저는 아무 도움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두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 에피소드가 어디까지 진실인지 모릅니다. 과장과 굴절이 있음 직하지만, 김우중 회장의 부친이 제주도 출신이며 대구사범에서 박정희 학생을 가르쳤고 그 후 제주도지사를 지냈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주도에 거주해본 적이 없는 김우중 회장은 유명해진 후에도 제주도를 보는 눈이 데면데면했다고 합니다. 혈연과 지연을 중시했던 당시 제주도 사람들에겐 이게 못마땅했을 법합니다.

1998년 대우그룹이 ‘세계경영’에 피치를 올릴 때 나는 처음으로 김우중 회장을 가까이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가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서울에서 활동하는 제주도 출신 기자들을 힐튼호텔로 초대해서 저녁을 같이했습니다.
그때 김 회장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김 회장님의 마음속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그가 대답했습니다.
“제주도지요. 제가 환갑이 넘었습니다. 제 아버지와 할아버지 묘소가 애월(제주)에 있습니다. 제주도에 가면 성묘를 합니다.”
그때 나는 속으로 ‘김 회장이 제주도 출신 기자들을 불러 저녁을 사는 것은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일종의 회귀본능일 수도 있겠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베스트셀러 책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 김 회장은 고향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했던 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태어난 곳, 자란 곳, 학교 다닌 곳, 아버지와 어머니 고향을 언급하며 대구 함경도 평안도 서울 제주 등 전국을 아우르는 고향 개념을 언급했던 것 같습니다.
김우중 회장의 활동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이 ‘세계경영’입니다. 그에게 중요한 지리적 개념은 고향이 아니라 시장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물건을 팔 수 있고 사업을 벌일 수 있는 곳이면 그에겐 고향보다 더 신나는 곳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동서냉전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소련에, 중국에, 동구에, 그리고 북한에 가서 사업처를 물색했습니다.

내 친지 중에는 대우의 밥을 먹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대우그룹 해체로 인생의 행로가 바뀌거나 좌절을 맛본 사람들입니다. 김우중 회장에 대한 그들의 평가는 한결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김 회장의 벤처 정신과 기질만큼은 입을 모아 높이 평가합니다.
한때 재계 2위로 올라섰던 대우그룹이 IMF구제금융사태 이후 해체됐고, 그룹 총수로서 김우중 회장은 유죄판결을 받아 옥살이를 하고 또 해외에 유랑하는 고통과 곤욕의 말년을 보냈습니다. 그의 부음을 들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품었던 감회는 여느 대기업 총수의 타계 소식을 들었을 때와는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기업은 죽었지만 그의 기업가 정신은 21세기 한국 경제의 혈관 속에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제도, 기업경영도, 대우도 많이 알지 못하는 한 시민의 기억 속에 새겨진 김우중관(金宇中觀)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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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뉴스1’고문과 ‘내일신문’ 칼럼니스트로 기고하고 있다. 한국일보에서 32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며 주필을 역임했다. ‘0.6도’ 등 4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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