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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적 평등과 현실적 불평등

2019.12.06

-즐겨 입는 옷의 80%는 옷장에 걸린 옷의 20%에 불과하다.
-20%의 고객이 백화점 전체 매출의 80%에 해당하는 물건을 산다.
-전체 교통사고의 80% 정도를 20%의 운전자가 낸다.
-20%의 범죄자가 80%의 범죄를 저지른다.
-우수한 20%의 인재가 80%의 문제를 해결한다.
-운동선수 중 20%가 전체 상금의 80%를 싹쓸이한다..
-소득세의 80%는 과세대상자 20%가 부담한다.
-핵심제품 20%가 기업 이익의 80%를 가져다준다.

파레토 법칙(Pareto Principle)의 예증들입니다. 이탈리아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 1848~1923)가 “이탈리아 인구의 20%가 전체 부의 80%를 가지고 있다”고 한 주장에 근거해, 조셉 주란(Joseph Juran 1904~2008, 미국 품질관리 전문가)이 1951년 이름 지은 법칙입니다. 80-20 법칙(80-20 Rule) 또는 2-8 법칙(2-8 Rule)이라고도 합니다.
그리 낯설지 않은 말입니다. 2011년 1%가 99%의 부를 독식하고 있다며 미국 뉴욕의 월가(Wall Street)를 텐트로 뒤덮고 점거했던 월가 시위, 노무현 정부 때 국민을 잘사는 20%와 못사는 80%로 가르던 주장들입니다.

파레토는 어느 날 땅 위를 기어다니는 개미떼에서 묘한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전체 개미의 20%만 열심히 일하고 나머지 80%는 빈둥댄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부지런한 20%의 개미만 따로 모아 관찰했는데 거기서도 같은 비율의 일중독자와 게으름뱅이로 나뉘었습니다. 꿀벌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파레토는 인간사회에서도 이러한 법칙이 적용되는지를 연구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어냈습니다. ‘전체 부의 80%는 상위 20%의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전체 인구의 20%가 전체 노동량의 80%를 일한다.’

# ‘세상에 평등한 것은 없다’는 파레토의 법칙

인간은 평등한가? 파레토가 관찰하고 주란이 명명한 파레토의 법칙은 결국 ‘세상에 평등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사회과학적으로 구명한 논리입니다.
인간의 불평등은 까마득한 옛적부터 있어왔습니다. 공자는 2,500년 전에 이미 일반 백성을 가리키는 인민(人民)을 지배하는 사람[人]과 지배받는 사람[民]으로 구별했습니다. 그보다 200년 뒤 공자와 맹자의 유가사상을 집대성한 순자도 인간 세상의 불평등을 언급했습니다.
-계급이 균일하면 다스려지지 않고
-세력이 균등하면 통일되지 아니하며
-대중이 차별이 없으면 부릴 수 없다-라고.

요즘 우리 사회에는 평등을 외치는 물결이 홍수처럼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17, 18세기 홉스(Thomas Hobbes) 로크(John Locke) 루소(J. J. Rousseau) 등 사회계약론자들이 창출한 평등(equality)의 개념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권리 의무 자격 기회 등에 차별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 대상은 법 앞의 평등, 정치적 평등, 경제적 평등, 남녀평등, 국가 간 평등, 인종 간 평등처럼 수없이 많습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평등이라는 용어의 마력에 심취해왔습니다. 그러다 문득 눈앞에 펼쳐지는 정규직·비정규직 갈등, 미투·워마드 운동,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정부의 증세정책과 국민의 조세저항, 내년 총선이 분수령이 될 촛불세력과 적폐·청산 대상 세력의 사활 투쟁을 보면서 과연 평등은 이루어질 수 있는 현실인가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 허구와 현실 구별하는 능력 키워야 고통 줄어

국내 문제만이 아닙니다. 용서와 사랑이라는 슬로건은 뒷전인 채 자살·폭탄 테러가 끊이지 않는 기독교와 이슬람 대립, 수많은 중동·아프리카 난민과 이를 막는 유럽국가들, 멕시코인들의 미국행 월경 시도와 트럼프의 장벽정책, 극심한 물가상승과 생필품 부족으로 이웃나라로 탈출하는 남미 국가 국민 등은 자유와 평등 생존을 갈구하는 사람이 엄청 많다는 것을 말해주는 현상입니다.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이들 대부분의 갈등과 대립 투쟁은 불평등에서 비롯된 밥그릇 싸움이 아닌가 합니다.
태초부터 천당과 지옥, 극락과 수라장(修羅場)으로 구분돼 온 불평등 세계가 아직도 완전히 평등한 세상으로 진입하지 못한 것은 세월이 모자라서일까요?

최근 이스라엘 석학 유발 하라리(Yuval Harari 1976~, 예루살렘 히브리대학) 교수가 이러한 의문을 다소 풀어 주었습니다. ‘세계 석학 8인에게 인류의 미래를 묻다’라는 부제의 책 <초예측(Super Forecast)>에서 하라리는 “인간은 스스로 만든 허구(虛構)가 주는 ‘고통’ 때문에 고민하고 분노하고 저항한다”고 진단했습니다. 그 예로 허구인 국가나 기업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며, 국가가 전쟁에 패하거나 기업이 망해도 고통의 주체는 항상 국민 또는 회사 경영자와 사원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허구(fiction, lie, concoction, invention)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그 굴레 안에서 웃거나 울고 있습니다. 돈 국가 법인 인권 복지 행복 평화 공정 정의 보수 진보 민주주의 사회주의 자유 평등 같은 굴레들입니다.
하라리는 절대다수 사람의 허구에 대한 신봉이 인류를 영장류 최고봉에 올려놓았지만 "허구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위정자나 국민 모두가 현실과 허구를 구별하는 능력을 키워야 고통을 줄일 수 있다고.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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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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