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원전' 신고리 5·6호기 현장의 한숨


"비행기 충돌해도 끄덕없는데"... '마지막 원전' 신고리 5·6호기 현장의 한숨


    지난 29일 오후 울산 울주면 서생면에 위치한 새울원자력본부 전망대. 이곳에 오르자 가장 먼저 영어로 적힌 '한국형원전(APR 1400) 설계 인증서' 한장이 눈에 띄었다.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우리나라가 독자 개발한 3세대 가압경수로 원전 ‘APR 1400’에 발부한 설계인증(DC)서였다.


강영철 한국수력원자력 새울원자력본부 제2 건설소장은 "한국형원전을 미국에 수출할 때 별도의 설계 인증 절차가 필요 없다는 일종의 안전 확인 증명서"라며 "APR 1400은 대형 비행기가 충돌해와도 끄떡없다"고 했다.

울산 울주면 서생면에 위치한 신고리 5·6호기 공사 현장. 왼쪽이 신고리 6호기, 오른쪽이 신고리 5호기의 모습./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창 밖을 보니 운영중인 신고리 3·4호기와 신고리 5·6호기 공사 현장이 차례로 보였다. 모두 APR 1400 노형 원전이다. 신고리 5·6호기의 공정률은 지난 9월 말 기준 49.9%. 5호기는 지름 약 5m의 원자로의 지붕(돔)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돔 작업이 끝나면 아파트 24층 높이의 원전 윤곽이 완성되는 것이다. 바로 옆에 6호기는 원자로를 두께 6㎜의 내부철판(CLP)과 두께 137cm의 철근 콘크리트로 감싸는 외벽 공사가 한창이었다.




미국 외 노형이 설계 인증을 받은 것은 APR 1400이 처음이다. 한수원은 "신고리 3호기는 미국(AP1000)과 프랑스(EPR)가 건설 중인 3세대 신형 원전보다 먼저 상업운전을 하게 되면서 우리나라 원전 기술의 우수성과 원전건설 능력을 세계적으로 알리게되는 수출 홍보의 장이됐다"고 자랑했다.


특히 안정성 부문에서 자부심을 보였다. 일각에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태를 이야기하며 원전에 대한 안정성을 우려한다. 하지만, 하훈권 한수원 새울원자력발전소 제1발전소 운영실장은 "후쿠시마와 같은 원전 사고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일본 원전은 원자로 내 냉각수를 직접 끓여 발생한 증기로 터빈을 돌리지만, 우리나라 원전은 원자로의 냉각수를 끓여 그 열로 증기발생기에서 증기를 만들어내 구조부터 다르다"고 했다.


신고리 3·4호기./한수원 제공


하지만,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은 국내에서 보는 마지막 원전 건설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6월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 참석해 "원전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원전 중심의 발전정책을 폐기하고 탈핵시대로 가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방침에 따라 한수원 이사회는 지난해 6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신규 원전 4기 사업 백지화를 결정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원전 기술과 안정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지만, 정부가 탈원전 정책에 시동을 걸면서 600조원 규모의 원전 수출 기회를 내치고 있다고 토로한다. 정동욱 중앙대 교수(에너지시스템공학부)는 "미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설계 인증은 프랑스 아레바와 일본 미쓰비시도 받으려나 실패했을 정도로 매우 권위있는 것"이라며 "원전 기술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는데 국내에서는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니 아쉽다"고 했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이날 기자들에 원전 수출 상황에 대해 "영국은 정부가 제도를 크게 바꾸고 있고 사우디도 에너지부 장관이 바뀌어 조정기가 필요해 보인다"며 "가장 진도가 빠른 체코 두코바니는 원전 계획이 확정된 만큼 원전 수출 가능성이 50%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재훈(오른쪽) 한수원 사장이 지난 8월26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의 원자력규제위원회(NRC) 본부에서 애니 카푸토 NRC 위원으로부터 설계인증서를 받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정 사장은 "러시아나 중국이 세계 원전 수출시장의 90%를 수주하고 있는데, 노형을 자국내에서 다 생산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주기기가 아니더라도 일부부품, 보조기기, 안전등급, 소프트웨어와 같은 미래 OEM(주문자상표부착) 시장에 한수원이 앞장서 진출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어 "설비개선 시장에서도 루마니아, 슬로베니아, 대만 등에 접촉하고 있어 내년부터 아마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정용훈 카이스트(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자국내에서 원전을 짓고 계속 가동해야 다른나라에서도 한국 원전을 주문하고 시장 평판이 좋아지는 것"이라며 "자국 원전을 계속운전 하지 않는 나라가 다른나라 설비개선에 참여하고 OEM 시장을 바라보는 것은 바른 길, 쉬운 길을 두고 굳이 이상하고 어려운 것만 골라하는 것"이라고 했다.

울산=안상희 기자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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