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만 보지말고 시장을 보라"


"기술만 보지말고 시장을 보라" 실험실 창업에 선배들의 조언은


    배원규 숭실대 전기공학부 교수는 올해 8월 독사 어금니의 모양을 본뜬 새로운 형태의 바늘을 만들고 실험실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독사는 날개 형태의 이빨로 피부에 구멍을 낸 후 모세관을 통해 독을 주입한다. 연구팀은 이를 모방한 바늘로 약물을 기존 주사보다 빠르게 넣을 수 있음을 입증해 8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중개 의학'에 이를 발표했다.


기존 미세바늘 연구는 비타민과 같은 분자 크기가 큰 약물을 넣는것이 어렵지만 이 기술은 큰 분자도 자유롭게 주입 가능하다. 배 교수는 “1852년 약물을 처음 피부 아래에 주입하는 주사기가 개발됐다면 2019년은 두 번째로 약물을 피부 안으로 집어넣는 데 성공한 해가 될 것”이라며 “앞서 소개한 기술이 실험실에 머물지 않고 삶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배원규 숭실대 전기공학부 교수가 이달 29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열린 '실험실 창업 컨퍼런스 2019'에서 독사 어금니를 모방해 만든 약물 주입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이달 29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열린 ‘실험실 창업 컨퍼런스 2019’는 배 교수와 같은 실험실 창업을 꿈꾸는 예비 창업가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이날 행사는 지난해 ‘실험실 특화형 창업선도대학’으로 선정된 숭실대와 연세대, 전북대, 한국산업기술대, 한양대 등 5개 대학의 창업 성과를 공유하고 선배들의 조언을 듣기 위해 마련됐다. 선배 실험실 창업가들과 기술창업 투자자은 이들에게 기술 창업을 할 때에 필요한 사항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실험실 창업은 대학에서 논문이나 특허 형태로 보유한 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창업이다. 이미 검증된 기술력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파급효과가 크다. 창업진흥원과 국회입법조사처 등에 따르면 실험실 창업은 일반 창업보다 고용효과와 생존율이 3배 높다. 정부에서도 창업선도대학 41개를 지정해 실험실 창업을 국가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전제헌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연구원은 알루미늄에 비금속 원소를 섞은 초경량 합금 기술을 공개했다. 전 연구원은 "알루미늄의 특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첨가하는 원소의 함량을 높여야 하는데 함량이 높아질수록 강도는 높아지지만 내식성 등은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며 "이를 비금속 원소를 첨가시켜 극복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소개했다.




이밖에 나노섬유 방열시트를 개발한 이준희 전북대 기계설계공학과 연구원과 압력을 전기로 변환해주는 압전체 제조 기술을 개발한 이희철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교수, 차세대 전지 중 하나로 주목받는 전고체전지용 고체전해질을 개발 중인 박찬휘 한양대 신소재공학과 연구원 등의 연구와 창업계획이 소개됐다.


박별터 씨드로닉스 대표가 회사의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선배 창업가의 조언도 이어졌다. KAIST 출신으로 선박 자율운항과 인공지능(AI) 기반 접안 모니터링 기술을 개발중인 박별터 씨드로닉스 대표는 기술 창업을 할 때는 기술 중심이 아닌 시장 중심의 사고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처음에 AI가 97%의 정확도를 갖고 프로그램도 경량화해 속도도 빠르다고 했을 땐 투자자들의 반응이 없었다”며 “하지만 기술을 도입하면 선박의 회전율이 높아지며 300억 원의 이익을 보고 선박이 부딪히는 빈도도 줄면서 부두 설비 수명이 두 배로 는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더니 반응이 달라졌다”고 소개했다.


기술창업은 초기 투자비용이 큰 만큼 개념 증명(POC)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POC는 기술을 구현해 입증하는 것이다. 박 대표는 “기술기반 창업은 증명을 위해 장비도 만들어야 하고 들어가는 것이 많다”며 “최근 최소한의 비용을 들이는 ‘린 스타트업’이 강조되는데 방법은 기술을 필요로 하는 고객을 빨리 찾아 개념 증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씨드로닉스는 지난해 울산항만공사와 개념 증명을 거치며 이후 사업을 인천과 여수 항만으로 확장하고 있다. 박 대표는 “울산은 화학공업단지라 한국 1위, 세계 4위의 위험화물을 다루는 항만”이라며 “여기서 인증을 거치자 좋은 반응을 얻었고 최근엔 해외에서 문의도 많다”고 말했다.


기술창업에 주로 투자하는 벤처캐피탈 '블루포인트파트너스'의 이용관 대표는 기술창업의 장점을 이른 시간에 성과를 내는 것으로 소개했다. 이 대표는 “2014년부터 114개 기술창업 스타트업에 투자했고 이번 달 기준 2000억 원의 총 후속 투자와 1조원의 총 기업가치로 돌아왔다”며 “짧은 시간에 이를 이뤘는데 이것이 기술창업의 장점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1998년 플라즈마 개발 업체를 창업하며 기술창업 경험을 갖춘 투자가다.


이 대표는 세상을 바꾼다는 혁신가적인 사고를 강조했다. 그는 “최근 외국에서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창업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대체육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인 ‘임파서블 푸드’에 대해 소개했다. 임파서블 푸드는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인 메탄을 줄이기 위해 동물 고기를 식물성 대체육으로 전환하는 사업을 추진하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 대표는 “이런 혁신가적 마인드로 접근하면 관련 문제를 겪는 사람이 문제점을 스스로 알려주고 응원해준다”며 “회사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극복하는 힘을 준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수용성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이 대표는 “스타트업 3000개 이상을 보면서 빠르게 성장하는 팀을 보면 자신들이 뭘 못하는지를 잘 안다는 것”이라며 “창업팀은 자신들이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그 분야를 잘 하는 다른 사람을 데려오고 하는 식의 자기부정의 용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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