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효율 가전 사면 10% 환급" 일방 발표...당혹 한전…“우리가 봉이냐”


"고효율 가전 사면 10% 환급"…韓電 돈으로 생색 내는 정부

    정부가 다음달부터 연말까지 전력 효율이 높은 가전제품을 사면 구입가의 10%를 환급해주기로 했다.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고 침체된 소비를 살리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올 상반기에만 약 1조원의 적자를 낸 한국전력공사 출연금을 활용하기로 해 논란이 예상된다.

< 2016년에도 10% ‘가전 환급’ > 정부는 다음달부터 전력 효율이 높은 가전제품을 사면 구입가의 10%를 환급해준다고 29일 밝혔다. 사진은 2016년 같은 행사를 했을 때 소비자들이 서울 홈플러스 강서점에서 제품을 고르는 모습. /한경DB



산업통상자원부는 다음달 1일부터 2개월간 ‘으뜸효율 가전 환급 제도’를 시행한다고 29일 발표했다. 지난 8월 23일부터 기초생활수급자 등 전기요금 할인 가구를 대상으로 시행해온 환급 정책을 전체 소비자로 확대하는 것이다.

개인당 20만원 한도로, 판매가의 10%를 돌려주는 방식이다. 대상 품목은 전기밥솥과 공기청정기, 김치냉장고, 제습기, 에어컨, 냉온수기, 냉장고 등 7종이다. 에너지 효율 1등급만 해당한다. 스탠드형 에어컨은 1·2등급이 없다는 점을 감안해 3등급으로 확대했다.

환급 재원은 한전 출연금 122억원을 포함해 총 300억원이다. 기초수급자 등을 대상으로 환급해준 금액이 60억원 정도여서 현재 240억원이 남아 있다. 이 재원이 소진되면 올해 환급도 조기 종료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고효율 가전 환급 제도를 매년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전은 반발하고 있다. 누적 적자로 비상경영에 들어간 상황에서 ‘정책 비용’까지 매년 추가로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전 관계자는 “정부 발표 전까지 사전 협의가 없었다”며 “취약계층이 아니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가전 구입비를 지원한다면 정부 예산을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가전 구입 1인당 20만원 지원
'적자 수렁' 한전이 수백억 비용 댄다

정부가 다음달부터 고효율 가전제품에 대해 ‘통 큰 세일’에 나서는 것은 에너지 고효율 제품 출시를 적극 유도하기 위해서다. 소비 부진이 심상찮은 상황에서 다음달 1일 시작되는 ‘코리아 세일 페스타’와 보조를 맞추려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올 상반기에만 9285억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한 한국전력공사가 또 수백억원의 돈을 대야 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가구가 아니라 개인에게 지원

이번 고효율 가전 구입비 환급 대상은 가구(세대)가 아니라 개인이란 것이 특징이다. 1인당 20만원(구입가의 10%)까지다. 4인 가족이면 최대 80만원을 환급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대상 가전제품은 전기밥솥과 공기청정기, 김치냉장고, 제습기, 에어컨, 냉온수기, 냉장고 등 7개 품목이다. 스탠드형 에어컨(1~3등급)을 제외하고 모두 1등급 제품을 구입할 때만 지원받을 수 있다. 각 전력효율 등급의 적용 기준일은 품목마다 다르다. 김치냉장고의 등급 기준일은 2017년 7월 1일, 밥솥과 냉장고 기준일은 작년 4월 1일이다. 이 날짜를 기준으로 최고 등급을 받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매장은 온·오프라인 모두 가능하다. 국내등급 표시만 있으면 해외 제품이라도 똑같이 환급받을 수 있다.

제품 구입 후 지원금을 받으려면 다음달 6일부터 내년 1월 15일까지 신청해야 한다. 한국에너지공단 홈페이지에 접속해 거래내역서, 영수증, 효율등급 라벨, 제품 일련번호 명판을 차례대로 입력하면 추후 본인 계좌로 입금받는다. 제3자에게 대리 환급 신청을 맡길 수도 있다. 고령층 등이 인터넷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점을 감안한 조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고효율 제품 환급에 따라 연간 1만5095㎿h의 에너지를 절감할 것으로 추산했다. 약 4300가구가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정부 “소비 진작 도움…매년 시행”

정부는 2016년 7~9월에도 고효율 가전제품을 구입하면 10%를 돌려주는 행사를 했다. 올해와 달리 TV와 에어컨, 냉장고 등 5개 품목이 대상이었다. 당시 사상 최대 이익(연 12조원)을 낸 한전 수익금을 활용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그때는 한여름에 환급 제도를 시행하다 보니 에어컨 구입자가 절반 정도 차지했다”며 “올해는 겨울을 앞두고 하는 만큼 김치냉장고 수요가 가장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가 확보하고 있는 환급 재원(240억원)이 조기 소진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2016년엔 3개월 동안 930억원이 환급됐다. 선착순 방식이란 점 때문에 초반에 가전제품 구입이 몰릴 것이란 예상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제도 종료 이전에 재원이 소진될 조짐을 보이면 소비자에게 ‘환급받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우선 안내하고 예비 순번을 매길 것”이라며 “현재 남은 재원 240억원이 소진되면 바로 종료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으뜸효율 환급 제도’를 매년 하반기 시행하기로 했다. 고효율 가전제품 출시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다만 TV와 세탁기, 진공청소기 등 대기업 제품이 많은 품목은 일단 제외할 계획이다. 중소·중견기업의 시장 점유율 등을 고려해 환급 대상 품목을 바꿔나간다는 방침이다.

당혹스러운 한전…“우리가 봉이냐”

정부가 한전 재원을 바탕으로 고효율 가전 환급제를 시행한다고 발표하자 한전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연속 적자로 비상경영에 들어간 상황에서 정부 정책 자금을 또 대야 해서다. 한전은 대통령 공약으로 2022년 개교 예정인 한전공대의 설립 자금도 부담해야 한다.


이번 으뜸효율 사업의 재원 300억원 중 한전 돈은 122억원이다. 나머지 178억원은 전력산업기반기금이다. 정부 방침대로 이 사업을 정례화하면 한전은 에너지공급자효율향상 의무화제도(EERS) 방식으로 출연해온 기금을 확대해야 한다. 한전은 올해도 히트펌프 보일러 지원, 발광다이오드(LED) 교체, 으뜸효율 시범사업 등 총 922억원의 EERS 예산을 책정했다



한전 관계자는 “고효율 가전 환급 제도와 관련해 정부와 구체적인 사전 협의가 없었다”며 “정부 발표가 사실이냐”고 되물었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자 등 사회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건 공기업 책무로 볼 수 있지만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전자제품을 할인해주는 데 한전 돈을 쓰는 건 맞지 않다”고 했다.

이번 정책의 재원으로 전력기금을 사용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력기금은 전기 사용자들이 매달 납부하는 전기요금 중 3.7%를 떼 적립하는 돈이다. 전기사업법 제51조에 따라 ‘전력산업의 기반 조성 및 지속적인 발전’ 명목으로만 쓸 수 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기를 많이 팔수록 수익을 내는 한전이 전기 절약제품 소비자에게 지원금을 주는 게 타당한지도 의문”이라며 “표심을 잡기 위해 내년 총선을 앞두고 급조한 정책인 것 같다”고 말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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