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빈집 프로젝트', 빈집 없어 26억짜리 사람사는 고가주택 사들여


'방치된 빈집' 청년주택 만든다더니… 26억짜리 고가주택 사들인 서울시

박원순 '빈집 프로젝트' 따라 올해 400채 사들이려 했지만 마땅한 빈집 없어 마구잡이 구매
집 못 짓는 소규모 땅도 매입

'26억 주택' 주변 연희동 주민들 "1월까지 사람 살던 집인데… 세금을 왜 이런 데 쓰나" 반발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주민들은 최근 '서울시 빈집 프로젝트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서울시가 지난 8월 "연희동에 있는 빈집을 사들였다"며 "그 자리에 청년주택을 짓겠다"고 발표하자 인근 주민들이 나섰다. 해당 주택은 2층 단독주택(연면적 211㎡)으로, 시에서 지난 3월 26억원에 매입했다. 김찬희 비대위원장은 "서울시가 빈집이라고 발표한 단독주택은 1월까지 주민이 살다 매물로 잠시 나와 있던 집"이라며 "멀쩡한 집을 빈집이라며 세금 들여 사들이고 홍보하는 것은 시민들을 기만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비대위 측은 주민 1000여 명의 반대 서명을 받아 이달 중순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에 이를 제출했다.



이 집이 방치된 빈집? - 서울시가 '빈집'을 청년들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하겠다며 지난 3월 26억원을 주고 사들인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단독주택의 지난 21일 모습. 현행법상 빈집은 1년 이상 아무도 거주하지 않은 주택을 말하나 이 집에는 지난 1월까지 주민이 거주했다. /김지호 기자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집 프로젝트'가 일부 엉뚱한 곳에 예산을 쓴 것으로 확인됐다. 박 시장은 지난해 여름 강북구 삼양동에서 한 달간 지낸 후 빈집 프로젝트를 내놓으며 "서울시와 SH공사가 장기간 흉물로 방치된 빈집을 사들여 수리한 뒤 청년들을 위한 임대주택으로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2022년까지 빈집 1000호를 매입한 뒤 이를 개조해 주택 4000호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세금 6119억원이 투입된다.



그러나 매입 가능한 빈집이 예상을 크게 밑돌았다. 현행법상 '빈집'은 1년 이상 아무도 거주하지 않은 주택을 말한다. 지난해 박 시장이 대책을 내놓을 당시 시는 통계청 자료를 근거로 서울에 빈집이 1만8836호가량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시에서 전수조사를 한 결과, 실제 빈집은 2940호에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마저도 집주인의 매도 의사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940호 중 서울시의 매입 대상이 되는 빈집(단독·다가구)은 1718호에 그치는 데다 이 중 1264호는 매도 의사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시는 빈집이 아닌 매물까지 사들이기 시작했다. 연희동 단독주택을 포함해 빈집이 아닌 집 8채를 사들이는 데 '빈집 프로젝트' 예산 60억원가량이 들어갔다. SH공사 관계자는 "방치된 빈집 대부분은 건축 허가가 나기 어려운 곳에 있다"며 "어쩔 수 없이 매물로 나온 1년 미만 집도 사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연희동처럼 상대적으로 집값이 비싼 곳을 청년주택 대상지로 선정한 것도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수요자가 많은 지역을 찾다 보니 세금을 더 들여서라도 인기 주거지 주택을 고르게 됐다"고 말했다.



시는 사실상 주택을 새로 짓기 어려운 소규모 용지도 다수 매입했다. 당초 시는 지난해 11월 빈집 매입 기준을 세우며 '건축 허가가 가능한 빈집'으로 명시했으나 지난해 4월 이 규정을 '모든 빈집'으로 바꾸면서 소규모 부지 매입이 가능해졌다. 실제로 시가 올해 사들인 131호 중 50㎡(15평) 이하는 24호, 50~100㎡(약 30평) 이하 소규모 필지도 54호에 달한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버려진 집을 시가 매입해 철거하는 것만으로도 도시 재생이 될 수 있다"며 "주민들을 위한 공원을 조성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시가 다방면으로 매입 작전을 벌였는데도 이달 중순까지 사들인 빈집은 올해 목표 400호의 3분의 1 수준인 131호에 그쳤다.



시의 무리한 정책 추진으로 세금이 잘못 쓰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시에서는 목표를 수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강 의원은 지난 17일 국회 국토위 서울시 국감에서 "조사가 잘못돼 과도한 계획을 세운 것 아니냐. 예산을 점검하고 수정하라"고 요청했다. 시 관계자는 "빈집 매입 대상을 다세대주택 등으로 확대하면 된다"며 "1년 이상 비어 있는 집은 매년 늘어날 수밖에 없어서 정책을 추진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인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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