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들떠보지도 않던 '초소형 일감' 쓸어가는 대형 건설사들

    지난 달 2일 한화건설이 부산 북구 북구 덕천동 361번지 일대 1만6050㎡ 면적에 ‘덕천3구역’ 재건축 사업을 수주했다. 조합원이 약 300명(총 437가구), 공사비가 812억원 정도다. 통상 아파트 건설 시장에선 공사비가 1000억원 이하 사업은 ‘초소형 사업’으로 대형 건설사들은 아예 이 시장을 거들떠 보지도 았않다. 그러나 지난 7월 시공사 선정 때 한진중공업 등을 비롯해 총 8개 건설사들이 몰려 치열한 경쟁을 거쳐 한화건설이 공사를 따냈다. 한화건설은 앞서 2016년 덕천 2-1구역(636가구)과 작년 덕천 2구역(793가구)의 소규모 공사 시공권도 따냈다.

한화건설이 수주한 부산 북구 덕천동 '덕천3구역' 일대. / 네이버거리뷰

앞서 지난 4월에는 대구 중구 동인동1가에 복합주거시설을 짓는 ‘대구78태평 상가 아파트 가로주택정비사업’을 현대건설이 수주했다. 541가구 정도의 소규모 정비사업이었지만 이 사업의 현장 설명회에는 국내 대표 대형 건설사인 현대건설과 대림산업이 동시 참여해 경쟁했다.



최근 시공능력평가 10위권 내에 드는 대형 지방의 소규모 주택 정비 사업에 잇따라 진출하고 있다. 보통 지방 사업장은 그 지역의 중소건설사들이 담당해왔다. 수도권에 연고를 둔 대형 건설사들이 수주하는 아파트 공사 금액은 통상 최저 3000억~4000억원 규모였다. 하지만, 대형 건설사들의 전유물이었던 서울 재건축 재개발 시장이 급격히 축소되자 지방 중소형 건설사들의 시장까지 대형사들이 파고 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소규모 사업지, 대기업도 충분히 해볼만해
수도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현대엔지니어링은 6월 서울 강서구 마곡동 신안빌라 주택재건축정비사업을 수주했다. 빌라를 재건축해 아파트 400가구를 짓는 사업으로 공사비가 1000억원을 밑돈다. 포스코건설도 4월 서울 서초구 잠원훼미리아파트 331가구 리모델링 공사를 수주했다. 공사비는 1100억원 정도 규모다.

호반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된 '양재역 역세권 청년주택' 조감도. / 호반건설



서울시가 추진하는 임대주택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에도 대형사가 달려들고 있다. 올해 시공능력평가 순위 10위로 대형사 반열에 오른 호반건설은 ‘불광역 역세권 청년주택’과 ‘양재역 역세권 청년주택’을 시공권을 따냈다. 두 사업의 공사비 합은 총 1600억원 정도다.

일부 건설사들은 소규모 개발이나 가로주택정비사업 등 작은 사업장만 공략하는 자회사까지 만들 정도다. GS건설의 자회사 ‘자이S&D’는 중소형 단지를 공략하기 위해 ‘자이르네(XIrne)’를 론칭했다. ‘자이S&D’ 관계자는 “가로주택정비사업의 경우 일반 정비사업보다 사업 속도가 빨라 준공까지 큰 시간이 걸리지 않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기금을 활용하면 연 1.5% 이내에서 사업비를 조달할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메리트”라고 했다.

정비사업 절차 비교. / 땅집고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그동안 대기업들은 200~300규모의 작은 사업지들은 잘 수주하지 않았는데, 최근엔 정부 자금지원이 나오고 용적률 완화 등의 인센티브가 커 대기업들이 달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규모 사업장 경쟁 더욱 심화할 것”
대형 건설사가 중견 건설사가 주로 수주했던 지방·소규모 사업지까지 진출하는 데 대해 지역 건설업계에선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형 건설사들이 지방의 소규모 사업장까지 몰려와 수주경쟁을 벌이는 바람에 지방에 연고를 두 지역 건설사들이 고사(枯死) 위기에 몰리고 있어서다. 한진수 화성산업 주택영업팀 부장은 “대형 건설사들이 지역 중소규모 시장까지 몰려들어 토박이 기업이어도 지역 내에서 사업을 수주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대구에서 공급된 38개 단지·2만587가구 중 대구 지역건설사들이 분양한 아파트는 11.2%(2326가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형사들은 주택 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작은 사업장이라도 찾아 나서야한다고 반박한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예전에는 중소규모 단지들은 수주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앞으로는 서울 재건축·재개발만으로는 주택 사업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올해 대구에서 분양한 전체 가구 중 대구지역 기업이 분양한 가구가 전체 11%에 불과했다. / 부동산114

건설업계에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야 할 대기업 건설 자회사들이 지방 소규모 아파트 건설 시장까지 넘어와 모기업의 브랜드를 앞세워 공사를 수주해 버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2000년대 후반 대형 건설사들이 중동 플랜트 시장에서 저가 수주로 수천억원 규모의 적자를 기록한 뒤, 국내에서 아파트를 팔아 이 적자를 보전한 사례도 있다. 이후로는 대형 건설사의 해외 진출이 크게 줄어들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대형 건설사들이 해외에서 먹거리를 발굴하지 못하고 있어 국내 주택시장에서 대형사와 중소형사 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각각의 사업 영역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리영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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