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10조 증가 공기업들, 임원들에 11억 성과급 지급..."경영 잘했다"


빚 10조 늘어난 한전·한수원·건보공단… '경영 잘했다'며 임원들에 11억 성과급

지난해 공기업 35곳 조사 결과… 순익 3조 줄고 총부채 9조 급증
정부 '사회적 책임' 배점 높여 수익성 악화돼도 고평가 가능

     한국전력공사는 지난해 탈원전·신재생에너지 정책 등의 여파로 부채가 전년 대비 5조3300억원이나 늘었고 당기순이익은 2조6000억원 감소했다. 결국 1조1700억원 적자를 냈다. 하지만 경영 평가에선 상대적으로 양호한 B등급을 받았고, 임원 6명은 성과급 3억2700만원을 챙겨갔다.

한국수력원자력도 작년 탈원전 정책 직격탄으로 부채가 1조2000억원 급증하고, 당기순이익은 9600억원이나 감소했다. 그럼에도 경영 평가에서 B등급을 받고 임원 7명이 성과급 4억900만원을 받았다.


준(準)정부기관인 국민건강보험공단 역시 의료 보장을 대폭 강화하는 '문재인 케어' 여파로 부채가 3조4800억원 증가했고, 당기순이익은 4조2600억원이나 줄어 3조9000억원 적자를 냈다. '낙제'에 가까운 경영 실적을 냈지만 경영 평가는 A등급을 받았고, 임원 7명이 성과급 3억6300만원을 챙겼다.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실이 기획재정부 지정 공기업 35개(올해 신규 지정된 SR 제외)의 2018년 재무 현황과 올해 임원 성과급을 전수조사한 결과, 지난해 전체 공기업의 총부채가 전년에 비해 9조2170억원 증가했고 당기순이익은 3조3760억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 들어 탈원전 정책과 문재인 케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만한 공기업 경영 등이 겹쳐 순이익은 줄고 부채는 급증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이 공기업들은 올해 임원 158명에게 총 78여억원의 성과급을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영 실적 악화 속에서도 임원 1인당 평균 4930여만원에 달하는 성과급을 받아간 것이다. 7개 공기업은 부채 비율이 100%를 넘고 적자까지 냈음에도 이 같은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야당은 "문재인 정부 들어 경영이 악화된 공기업까지 높은 평가를 받아 성과급을 지급한 건 명백한 모럴 해저드"라고 비판했다.



최악의 실적에도 공기업이 '성과급 잔치'를 벌일 수 있었던 것은 문재인 정부 들어 공기업 경영 평가 제도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18년부터 공공기관 경영 평가 방식을 실적 평가보다 정부의 정책 목표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면 개편했다. 공기업의 경우 원래 100점 만점에 '사회적 책임' 부문에 총 19점이 배정됐지만, 2018년부턴 30점으로 크게 늘었다. 반면 '일반 경영관리' 항목은 31점에서 25점으로 배점이 줄었다. 공기업 입장에선 경영 효율화를 할 유인이 줄어든 셈이다. '저(低)수익·고(高)성과급' 경향은 '탈원전' '문재인 케어' 등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과 직결되는 공공기관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한전과 한수원, 건보공단 외에도 한국중부발전, 한국남동발전 등 에너지 공기업이 경영 실적 악화에도 높은 평가를 받아 많은 성과급을 챙겼다. 한국중부발전은 '부채 9700억원 증가, 당기순이익 1360억원 감소'라는 실적에도 경영 평가 A등급을 받았다. 임원 4명이 성과급 1억4700만원을 받았다. 한국남동발전의 경우 부채가 1580억원 증가하고 당기순이익은 1460억원 줄었지만 경영 평가에서 B등급을 받고 임원 4명이 성과급 2억5000만원을 받았다.



이는 수익성 지표에서 개선된 모습을 보였던 다른 공기업과 크게 대비된다. 한국마사회는 당기순이익이 399억원 감소했지만 부채도 10억원 줄이며 경영 측면에선 나름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전체 경영 평가에선 D등급을 받았고 임원들은 성과급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한전KPS 역시 당기순이익을 254억원 늘렸음에도 경영 평가에서 D등급을 받고 임원 5명이 성과급 5400만원을 받는 데 그쳤다.

야당 집계 결과 35개 공기업 중 지난해 부채와 당기순이익이 모두 악화된 공기업은 19개(58%)로 절반 이상이었다. 이 19개 기업 중 8개 기업이 경영 평가 B등급을 받았고, 6개 기업이 C등급을 받았다. A등급도 2개 기업이나 있었다. 부실 경영에 대한 책임을 묻기는커녕 평균 이상의 평가를 받은 것이다. 부채 및 당기순이익이 모두 개선된 공기업은 단 3곳에 불과했다. 그중 한 기업은 실적 호전에도 C등급을 받았다.



기획재정부 역시 공기업 수익성과 경영 평가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기재부는 '수익성이 좋지 않아도 사회적 가치 실현 점수만 잘 받으면 우수 등급을 받을 수 있는 평가지표는 문제가 있다'는 추경호 의원의 질의에 "기관의 수익성·효율성도 평가지표의 일부로 반영되지만 수익성 부족만으로 낮은 평가 등급을 받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고유 목적 사업을 제대로 추진하고, 일자리 창출 등 다양한 사회적 가치 실현을 잘한 경우 전체 등급이 상향 조정될 수 있다"고 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공공기관장 워크숍 연설에서 "일자리 창출, 상생 같은 사회적 가치 실현이 공공기관의 경영 철학이 돼야 한다"며 "공공기관 평가에서 효율·수익 극대화를 최우선에 뒀던 전 정부의 책임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야당에선 "사실상 공공기관의 '수익 추구'를 적폐로 몰면서 현 정권의 정책 가치 실현을 '제1 목표'로 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기업 경영 악화가 현실화되자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뒤늦게 지난 6월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공공성 강화 노력과 더불어 기관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정부는 공공기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대책을 별도로 발표하진 않았다.



추경호 의원은 "일반 기업은 손실이 나면 당장 임원들부터 임금을 동결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는데, 공공기관 임원들은 수천억원 적자를 내고도 수천만원의 성과급을 받아갔다"며 "현 정부 들어 '사회적 가치'라는 미명하에 공공기관의 경영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평가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했다.
[윤형준 기자 yun@chosun.com]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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