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해외 원정투쟁 하는데, 누가 우리에게 일감 주겠는가


[대우造船 이성근 사장의 읍소]

노조, 브뤼셀 EU 집행위 가서 현대중공업과 합병 반대 외쳐


사장 "고객들 노사 균열에 불안감… 공정·납기가 지켜질까 우려 표명

결국 초대형 LNG선 수주 못해 3분기부터 손실 악화 불가피"


    "최근 초대형 LNG(액화천연가스)선 입찰에서 선주(船主)는 '노조가 합병 이슈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공정이나 납기가 지켜지겠느냐'며 우려를 표했고, 결국 우리는 수주하지 못했다."


이성근(62)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17일 사내 소식지를 통해 본사와 협력사 직원 2만5000여명에게 읍소(泣訴)했다. 대우조선은 1999년 대우그룹 해체와 함께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이후 분식회계와 글로벌 조선(造船) 업황 부진 등으로 12조원이 넘는 공적 자금이 투입돼 '돈 먹는 하마'로 전락했다. 올 초 현대중공업그룹에 매각이 결정됐다. 하지만 대우조선 노조는 조선업 구조조정을 위해 추진 중인 현대중공업그룹과 합병에 반대하고,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부분 파업을 벌이고 있다. 글로벌 선박 발주 부진으로 경영 여건이 심각한 위기인데도 노조의 '발목 잡기'가 선박 수주에까지 영향을 미치자 이 사장이 작심 발언을 하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성근 대우조선 사장은 사내 소식지에서 "노사 관계 균열이 회사를 위기로 몰고 있다"고 우려했다. /대우조선


이 사장은 "회사는 적자 전환과 현금 흐름의 위험 요인을 예상해 비상 경영에 준하는 경영 계획을 준비 중"이라며 현재 상황을 '위기'로 단정했다.




그는 "우리 고객은 지금까지 우리가 잘 해왔던 안정적이면서 협력적인 노사 관계가 균열하는 것을 가장 불안해하고 있다"며 "특히 대규모 LNG선 발주를 계획하는 카타르 정부는 선진적인 노사 관계를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LNG 생산을 늘리려는 카타르는 최대 100척, 20조원 규모의 LNG 운반선 발주를 추진 중이다.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한국 조선 3사가 입찰제안서를 제출했다. LNG 운반선 건조 기술이 가장 앞선 한국 조선사 수주가 유력한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금속노조에 가입한 대우조선 노조는 현대중공업과 합병 반대,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부분 파업을 벌이고 있다.


이 사장은 현대중공업그룹과 합병이 원활하게 마무리되는 것이 절실하다면서 취임 이후 처음으로 합병에 대한 구체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는 "기업 결합이 완료되면 1조5000억원 신규 자금을 확보해 경영이나 재무적 측면에서 안정적인 구조로 가고, 회사 가치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현대중공업은 우리나라 공정위를 비롯해 EU·일본·중국·카자흐스탄·싱가포르 등 경쟁 당국에 기업결합 승인을 추진 중이다. 6국 중 한 나라라도 승인하지 않으면 합병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대우조선 노조는 이달 초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EU 집행위원회 경쟁총국을 찾아가 합병 반대 등 해외 원정 투쟁을 벌였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노조 반대가 EU 등의 기업결합 심사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지만, 선박 발주사 입장에서는 심각한 불안 요인"이라고 했다.


이 사장은 "회사가 정상 궤도에 오르고 시장 상황도 호전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상황은 돌변했다"며 "선박 시장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발주 자체가 확 줄었고, 선가(船價)는 바닥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우리가 건조하는 선박도 대부분 적자로 돌아섰고, 자재비·인건비는 상승 요인만 가득하다"고 덧붙였다.


대우조선 노조 등이 지난달 말 청와대 앞에서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그룹 합병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대우조선 노조 등은 이달 초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EU(유럽연합) 집행위원회를 찾아 두 회사의 합병을 불허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연합뉴스




올 들어 글로벌 선박 발주는 작년보다 43% 감소했다. 한국 조선사의 수주는 작년의 반 토막으로 떨어졌다. 대우조선은 올해 51억4000만달러를 수주해 목표액의 61% 달성에 그쳤다. 대우조선의 남은 일감(수주잔량)도 계속 감소해 1년치를 조금 넘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 사장은 현재 위기의 1차 원인으로 글로벌 '수주 절벽' 시기였던 2015~2017년 수주 부진을 꼽았다. 미·중 무역 분쟁과 세계경제 불확실성 증가, 저유가 기조 정책에 따른 선주의 채산성 악화 등 외부 요인도 불안 요소다. 그는 "최근에는 선주들을 만나 신규 발주를 제안하면 침묵으로 일관한다"며 "개선될 여지가 없고, 물량을 채우지 못한 조선소의 경쟁이 심화하고 저(低)선가 기조가 이어지는 건 또 다른 악재"라고 했다. 이어 "시황 회복은 더딘데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독(dock)은 비게 되고 매출이 급감해 일자리도 위협받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 사장은 "3분기부터 영업 손실 악화는 불가피하다"며 "수주 목표를 채우지 못하고 선가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고용 보장도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1979년 대우조선에 입사한 이 사장은 기술본부장, 조선소 소장(부사장) 등을 거쳐 지난 3월 사장에 취임했다.

전수용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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