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도 실력이다 [송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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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도 실력이다 [송길원]

2019.10.12

민원인이 동사무소를 찾았다. 사망신고서를 접수하는 공익요원이 묻는다.
“본인이신가요?”
민원인이 놀라 되묻는다.

“꼭 본인이 와야 하나요?”-<유머공방(工房)> 중.

이를 ‘임종유머’라 합니다. 한 집안의 품격이나 삶의 향기는 장례식장에서 드러날 때가 많습니다. 잔칫집도 초상집으로 만들어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초상집도 잔칫집으로 만들어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지 W 부시 전 미 대통령의 아버지 장례식장은 이를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아들 조지 W 부시는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추도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는 90세의 나이에 메인(Maine) 주의 케네벙크포트(Kennebunkport) 바닷가 근처 세인트 앤(St. Ann’s by the Sea) 지역에서 스카이다이빙으로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뛰어 내린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할머니가 결혼식을 올렸고 아버지도 가끔 예배를 드렸던 교회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낙하산이 펴지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럴 때를 대비하여 장소를 잘 선택했다고 좋아했습니다.”

엄숙해야 할 장례식장은 웃음바다가 됩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장례식이 가볍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들도 많이 슬퍼합니다. 하지만 그 슬픔이 슬픔으로 그치지 않은 것은 슬픔을 승화시키는 장치가 있어서입니다. 그 장치가 조크와 에피소드에 있습니다. 있는 말, 없는 말 지어내어 영웅을 만들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에피소드를 이야기함으로써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삶의 자리에서 죽음을 들여다보면 한없이 슬픕니다. 하지만 죽음의 자리에서 삶을 들여다보면 한없이 아름답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에 이어 <최후의 심판>으로 죽음 너머의 세계를 그려냅니다. 그의 철학이 하나 있었습니다.
“삶이 즐거우면 죽음도 즐거워야 한다.”

요즘 종신보험 광고에 ‘사람은 살면서 한 번은 사망하지 않습니까?’라는 게 있던데, 한 번뿐인 죽음을 즐겁게 미련 없이 맞이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요? 죽고 난 다음 무슨 말을 가장 듣고 싶어 하느냐는 질문에 한 사람이 이렇게 답했습니다.
“어라~~ 이 친구, 아직도 숨 쉬고 있네.”

언젠가 우리도 이런 임종유머를 나누다 보면 죽음이 즐거울 수있지 않을까요? 저의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가 <임종유머집>을 출판해 보는 일입니다. 언제부터인가 3년 탈상이 3일 탈상으로 변해버린 가볍기 짝이 없는 장례식을 지켜보면서 가진 생각입니다.

죽음도 실력이라 합니다. 학창시절의 성적만으로 평생 실력 있는 사람으로 남을 수는 없습니다. 진짜 실력은 마지막 승부에서 판가름 납니다. 유가증권, 집문서, 주식 등의 물질적 가치에서 관계의 유산, 자선의 유산, 리더십의 유산, 추억의 유산으로 옮겨져야 합니다. 유산 중의 유산은 자손들에게 남기는 ‘웃음의 유산’이 아닐까요?

앞서 이야기한 조지 W 부시의 추도사를 좀 더 들여다보았습니다.
“아버지는 웃는 것을,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해 웃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아버지는 좋은 농담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심슨이 말하기를 원했습니다.(웃음) (전 상원의원 심슨은 이날 추도사를 하면서 많은 농담을 하며 부시를 기렸다.) 이메일을 통해 그는 친구들과 최신 농담을 나누거나 받았습니다. 농담의 수준에 대한 그의 등급 시스템은 그를 잘 말해줍니다.”

언젠가 제 아들 녀석이 회고할 말이 궁금해졌습니다.
“아버지는 늘 말했습니다. ‘죽는 걸 왜 걱정해? 살아 있는 동안엔 죽지 않을 텐데.’ 그런 아버지가 이끄셨던 세미나는 ‘죽여주는 세미나’ <해피엔딩 스쿨>이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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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송 길 원

목사, 국제 사나톨로지스트, 가족생태학자로 가정NGO 하이패밀리 대표. 현재 양평 서종마을에서 ‘미술관이 있는 수목장’을 운영하면서 상장례 및 ‘젊게 사는 삶의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유머공방> <행복한 죽음> 등 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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