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구팀, 생체조직 팽창기술 ‘줌’ 개발..."손톱만한 뇌, 손바닥 크기로 관찰"

손톱만한 뇌, 손바닥 크기로 부풀려 초미세 세포구조 정밀 관찰한다


    의료용 장갑을 낀 어른 손바닥 위에 투명한 물체가 놓였다. 


손바닥 반만 한 크기에 흔들거리는 재질이 꼭 ‘묵’처럼 보였다. 물체의 정체는 쥐의 뇌다. 원래 어른 손톱만 한 뇌를, 특별한 기술을 가미해 가로 세로 높이를 8배씩 팽창시켰다. 부피가 512배나 늘어난 셈이다. 색이 있는 풍선을 한껏 불면 색이 엷어져 속이 비치듯, 한껏 팽창한 뇌도 속이 맑아졌다. 그 결과 투명하고 거대한 뇌가 태어났다. 


손톱만 하던 쥐의 뇌가 손바닥 반 크기로 커지고 투명해졌다. 오른쪽 사진은 팽창 기술 ‘줌’을 개발한 김성연 서울대 화학부 교수(오른쪽)와 박한얼 연구원. 김성연 교수 제공·윤신영 기자




김성연 서울대 화학부 교수는 2015년부터 이연 서울대 화학부 교수, 박한얼·최동길 연구원과 함께 세계 최초로 생체 조직을 팽창시키는 ‘줌’이라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김 교수는 “조직이나 세포, 기관의 미세한 구조를 분자 수준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확대하는 기술”이라며 “2∼8배까지 원하는 배율로 확대해 조직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직 팽창 기술은 생명과학과 의학 분야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관찰 방식의 개념을 흔들고 있다. 생체 조직을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현미경을 써왔지만, 확대해 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수십 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크기를 갖는 세포 속 소기관이나 유전물질(DNA), 미세소관 등의 단백질 구조는 전통 현미경으로는 직접 볼 수 없다.

 



201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과학자들이 조직에 빛으로 에너지를 주면 분자가 에너지를 머금었다가 다시 내뱉는 순간 빛이 나온다는 사실을 이용해 세포 내 구조를 파악하는 ‘초고해상도 현미경’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수십 nm를 관찰할 수 있게 해줬지만, 가격이 대당 최대 수십억 원대라 보급에 한계가 있다. 


조직 팽창 기술은 이 문제를 역발상으로 해결했다. ‘아크릴아미드’라는 고분자 물질은 일종의 ‘블록’ 같은 물질로, 서로 모이면 더 큰 고분자 물질을 이룬다. 이 물질을 시료에 침투시키면 내부에서 길게 조립돼 묵과 같은 성질을 갖는 물질인 ‘젤’의 그물을 형성한다. 여기에 물을 넣으면 젤이 길어지며 조직을 균일하게 팽창시킨다. 풍선에 점을 가득 찍고 바람을 불면 점 사이 간격 비율은 일정하게 유지된 채 서로 간의 거리만 늘어나는 것과 비슷하다. 


뇌 등 조직을 팽창시키는 '줌' 기술의 과정이다. 고분자 물질을 이룰 기초 재료(단량체)를 조직에 침투시켜 젤로 만든다. 이후 가열과 가수분해를 거치면 내부에 전하가 발생한다. 이후 물에 담그면 팽창한다. 만들어진 전하의 수에 따라 팽창 배율이 조절된다. 어드밴스드 사이언스 제공


‘줌’은 이런 팽창 기술의 결정판이다. 김 교수는 “배율을 2배, 4배, 8배 등으로 정교하게 조절할 수 있는 데다 3차원 조직으로 팽창시킬 수 있고, 원본 조직과 팽창한 조직 사이의 오차가 3∼5% 미만으로 매우 작아 신뢰성도 높다”고 설명했다. 배율 조절을 위해 연구팀은 시료에 80도의 열을 가해 가수분해하는 과정을 개발했다. 열을 가하는 시간을 조절하면 배율이 일정하게 변한다.




활용성이 높은 것도 특징이다. 김 교수는 “쥐의 뇌뿐 아니라 세균, 배양 세포, 길이 1mm의 작은 동물인 예쁜꼬마선충, 사람 뇌 시료 등에 모두 활용 가능함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트 사이언스’ 1일자에 발표됐다. 연구 및 진단 방법을 혁신할 원천 소재 기술 가능성에 주목한 삼성미래기술육성센터의 지원을 받았다.


조직 팽창 기술은 과학 연구와 의료 진단에 모두 응용될 수 있다. 신장 질환이나 파킨슨병 등 퇴행성 뇌질환 연구에 적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직은 팽창 과정에 3일(세포)에서 한 달(뇌)의 시간이 걸리는 게 단점이지만 후속 연구가 쌓이면 시간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연구팀은 기대하고 있다.


연구팀이 개발한 뇌 팽창기술을 적용하기 전(작은 사진)과 후의 사진이다. 세포 속 미세섬유의 화질이 개선됐다. 수십nm 굵기의 미세섬유가 한 가닥 한 가닥 세밀하게 보인다. 어드밴스드 사이언스 제공




한국은 조직 팽창 기술에 앞선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이 기술은 원래 광유전학 등 생명과학의 판도를 바꾼 기술 개발을 선도해 온 칼 다이서로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팀의 상상력 넘치는 연구가 바탕이다. 2013년 당시 다이서로스 교수 연구실에서 근무하던 정광훈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화학공학과 교수가 개발한 뇌 투명화 기술이 방아쇠가 됐다.


직접적인 뇌 팽창 기술은 다이서로스 교수실 출신의 또 다른 천재로 광유전학 개발에도 공을 세운 에드워드 보이든 MIT 미디어랩 교수가 2015년 처음 선보였다. 2016년 정 교수와 박정윤 강남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팀이 쥐의 뇌를 4배 키우는 데 성공했고, 2017년 보이든 교수와 장재범 KAIST 교수팀이 얇게 저민 쥐의 뇌 조직을 20배까지 팽창시키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윤신영 기자 ashilla@donga.com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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