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善行)의 용기 [방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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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善行)의 용기

2019.10.04

지난달 24일 김포 요양병원 화재 시에 보여준 시민정신은 감동적이었습니다. 당시 상가 건물 안에 설치된 병원에는 거동이 어려운 고령의 환자 132명이 입원해 있었습니다. 보일러실의 갑작스러운 폭발로 병실에 연기와 유독가스가 번지며 초비상 사태를 맞았습니다. 때마침 가스안전 점검을 위해 전기가 끊겨 안내방송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전등이 꺼진 통로는 피어오르는 연기로 더욱 캄캄해졌습니다. 병원 직원과 간병인들은 병실마다 뛰어다니며 사고를 알리고 대피 안내를 했습니다. 출동한 119 구급대원들이 합세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쏟아져 나오는 연기, 창문을 열어젖힌 환자들의 구조 요청에 위급상황을 알아챈 상가 직원, 인근 지역 주민과 군인들이 병원 건물로 뛰어들었습니다. 캄캄한 통로, 매캐한 연기와 유독가스를 무릅쓰고 이들은 환자들의 침대와 휠체어를 밀었습니다. 자동차에 태우고, 담요에 담아 옮기면서 필사적인 구조 활동을 벌였습니다.

이번 사고로 안타깝게도 환자 2명이 숨지고 40여 명이 다치거나 연기를 마셔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의 눈부신 구조 활동으로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날로 각박해져 가는 세상인심을 탓하다가도 때때로 이렇듯 놀라운 시민정신과 선행에 감동하게 됩니다.

아쉽게도 전혀 다른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며칠 전 점심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었습니다. 천호역 에스컬레이터 옆 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 6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드러누워 있었습니다. 이른 낮술에 취해 잠이 든 것일까, 아니면 몸에 갑작스러운 고장이라도 일어난 걸까. 어떤 이들은 흉측스럽다며, 어떤 이들은 두렵다며 총총히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그냥 지나가려는데 문득 괴로운 신음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께름칙한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위급상황이라면…’ 하는 생각에 가까이 다가가 물어보았습니다. “어디 불편하세요?” 마침 의식은 있어서 그가 고통스러운 듯 대답했습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요.” 역시 몸에 큰 고장이 난 것이로구나, 싶어 119를 불렀습니다.

신고받은 119 대원이 호출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구급차는 떠났으니 환자 상태가 어떤지 알아봐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에요. 그런데 머리가 너무 아파요.” 병원에 다녀오면서 머리가 아파 쓰러지다니. 119에 그대로 전달하고서도 뭔가 심상찮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몇 번씩 오르내리며 기다려도 구급대원들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동안에도 수많은 남녀 보행객들이 쓰러진 이를 훑어보며 지나쳐 갔습니다. 더러는 불안한 기색으로 더러는 불편한 기색으로.

때마침 지하철 역무원 한 사람이 지나가다 쓰러진 이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천만다행이다 싶어 그에게 119에 신고했노라고, 곧 구급차가 올 것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역무원에게 인계하고 자리를 떴지만 불안한 마음이 다리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계속 에스컬레이터 주위를 맴돌다가 구급대원들이 장비 운반이 손쉬운 엘리베이터 쪽으로 들어와 환자를 실어 가는 모습을 뒤늦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집으로 오는 동안 내내 쓰러진 채 고통스러워하던 이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수없이 지나쳐 다니던 사람들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만약 내가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어땠을까. 쓰러진 이가 더 남루한 옷차림이었다면 과연 나라도 그에게 다가갔을까. 그날 현장을 지나쳐 갔던 사람들은 모두 선량한 시민들이었을 겁니다. 다만 너도 보고 나도 보았으니 성가신 일, 언짢은 일, 두려운 일, 무서운 일에 나는 연루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겠지요.

제노비스 신드롬(Genovese syndrome)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1964년 미국에서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20대 여성 키티 제노비스가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갑작스러운 괴한의 습격을 받아 구조를 요청했습니다. 주택가 사람들이 불을 켜고 내다보았지만 아무도 적극적으로 그녀를 돕지는 않았습니다. 경찰에 제때 신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반복된 습격으로 그녀는 온몸을 난자당하고 강간까지 당했습니다. 이 사건은 주위에 목격자가 많을수록 책임감이 분산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걸 주저하게 된다는 소위 '방관자 효과'(또는 '구경꾼 효과')로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도심이 오히려 정글 같은 두려움을 줄 때가 많습니다. 남보다 더 잘 살기 위한 투쟁으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진 탓일 겁니다. 분실물을 찾아주려다 횡령으로 고발당하고, 노약자의 짐을 들어주려다 마약 운반책으로 걸렸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선행(善行)이 악용당하거나 의심받고, 준법(遵法)보다는 탈법(脫法)이 부러움을 사는 병든 사회에서는 ‘제노비스 신드롬’보다 더한 외면과 기피 현상이 만연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김포 요양병원 화재에서처럼 아무쪼록 우리 사회가 건전한 기풍 속에 올바른 시민의식, 선행의 용기를 잃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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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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