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위선’과 ‘거짓’ 대방출 [정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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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위선’과 ‘거짓’ 대방출

2019.10.02

<고맙습니다. 부인, 나는 간단한 식사로도 충분합니다./수탉의 조그만 간과 말랑말랑한 빵 한 조각과/구운 돼지머리면 좋겠습니다./그러나 닭이든 돼지든 나 때문에 잡지는 마십시오./나는 조금만 먹어도 충분합니다./내 영혼의 양식은 성서니까요.>
영국 문학의 효시로 꼽히는 제프리 초서(1343~1400)의 ‘캔터베리 이야기’에  등장하는 승려는 자신의 고매한 인격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는 자기 말과 행동에서 위선이 뚝뚝 떨어지는 걸 몰랐습니다. 다른 등장인물들로부터 비웃음을 사고 있는 것도 몰랐습니다. 승려는 당시 기득권 계층이었습니다.

<숲은 크고, 바람은 옳다./활을 들고 나아가라, 베코우!/이쪽이다, 저쪽이야. 이쪽이다, 저쪽이야!/멧돼지다! 누가 멧돼지를 죽이나./오, 우리 베코우가? 베코우가!/하지만 누가 그걸 먹나, 우리 베코우./어서 토막토막 잘라라. 내장은 네가 먹어라./쿵! 코끼리가 땅바닥에 쓰러진다!/누가 죽였나? 베코우./소중한 상아는 누가 가질까. 오, 우리 베코우./참아라, 베코우. 너한테는 꼬리를 줄 테니까.>
‘희랍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그리스. 1883~1957)가 자신의 여행기에 옮겨다 놓은 ‘피그미의 노래’입니다. 초서의 승려들이 키 작은 피그미들을 맹수 떼 우글거리는 숲속으로 떠밀어 넣으면서 이 노래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사회의 규율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자들이었다. 은근한 좌파성향이나, 각종 탄원운동에 서명을 하는 것이나, 상담실에 게르니카를 걸어놓는 것은 한낱 속임수일 뿐이다. 막상 중대한 사안에 직면하면, 그러니까 가족이라든가, 여성의 지위라든가. 환자에서 의사에게로 이어지는 돈의 흐름 같은 문제에 직면하면 그들은 보수주의자가 된다. 빅토리아 시대 사회 다윈주의자들처럼 자기 잇속만 차리는.>
페미니스트 작가 에리카 종(미국. 1942~ )이 1973년 작 ‘비행공포’에서 돈 많은 의사를 비꼰 대목입니다. 이 의사처럼, 상담실이나 사무실에 전쟁의 참상을 그린 피카소의 ‘게르니카’ 복사본 같은 것을 벽에 붙여 놓고 진보적 인사 대접을 받으려던 부자들이 ‘중요한’ 일-예를 들면 돈 문제-에 부딪히면 보수적이 되더라는 거지요. 성에 대한 노골적 표현이 꽤 자주 나오는 이 책은 2,000만 부가 팔렸다고 합니다.

<“거짓말. 끝없이 쏟아지는 거짓말. 진실을 거짓말로 바꾸고, 거짓을 또 다른 거짓말로 바꾸었지. 거짓말의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했네. 상황을 신중하게 재고, 그런 다음 침착한 목소리와 정직한 표정으로 아주 생산적인 거짓말을 쏟아냈어. 그들이 설령 부분적으로는 진실을 말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십중팔구 거짓말을 위한 것이었어”.>
“거짓말을 위해 진실을 말하기도 한다”라는, 위선자들에 대한 이 기막힌 통찰! 한국에도 독자가 많은 필립 로스(미국. 1933~2018)의 1998년 작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에 나옵니다. ‘거짓을 위한 진실’에 속아왔기에 한국이 이 모양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 가수 밥 딜란이 노벨상을 받은 2017년, 많은 사람들이 “미국 사람에게 줄 것이면 필립 로스에게 줘야 하는 것 아니야”라고 생각했습니다.

<플라톤은 철인왕은 피지배자의 이익을 위해 무수한 거짓과 속임수를 써야 할 것이므로, 왕으로서 “보다 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 출신 철학자 칼 포퍼(1902~1994)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플라톤을 비판할 때 이런 논거에도 의지했습니다. “국민의 이익을 위해” 거짓과 속임수를 쓰는 한국의 지도층 인물들은 대담함을 지나서 뻔뻔하기만 합니다.

<활기 없는 부드러운 얼굴에 근시 안경을 쓴 여자가 방 건너편에서 수줍은 듯이 웃었다. 그녀는 위선자의 먹이가 되고 착취를 당하도록 태어난, 생각 깊고 지적인 여자들 중 하나였다. 그녀는 혼자 서 있었고 ….>
소설 ‘콜렉터’로 이름을 얻었던 존 파울즈(영국. 1926~2005)가 1966년에 내놓은 소설 ‘마법사’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요즘 이런 글을 쓰면 여성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을 겁니다. “생각 깊고 지적인 여자만 위선자의 먹이가 되고 착취당하냐? 남자들이 위선자들에게 더 당하더라. 지식인인 체하는 것들은 더 하고!”라는 말과 함께요.

법무부 장관 주변에서 위선과 거짓이 대방출되고 있습니다. 구역질나고 몸서리쳐집니다. 언제면 안 보게 되려나. 안 보게 될 날이 오기는 오려나. 그 이름을 쓰기도 싫고, 너저분하고 악취 나는 소행들을 늘어놓기도 싫습니다. 대신, 책 몇 권에서 찾아낸 위선과 거짓에 대한 시인과 작가들의 언급을 다시 읽습니다. 위선과 거짓을 저지르는 사람들 자리에 장관과 그를 감싸고도는 사람들 얼굴과 이름을 집어넣습니다. 풍자와 비유의 바늘로 찔러봅니다. 이 지독한 스트레스를 풀기에는 한없이 부족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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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뉴시스 논설고문,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 역임.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 집필 중. 저서: '목사가 미웠다'(2003년),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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