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이란, 이번엔 직접 붙나

중동 대리戰 40년' 사우디·이란, 이번엔 직접 붙나

최근 사우디 석유시설 피격 이후 직접 충돌 가능성에 세계가 촉각

1979년 이란혁명 후 시리아 내전·아프간전쟁 등 개입 '패권경쟁'

    사우디아라비아 유전 타격의 배후로 이란이 확실해지면서 중동의 최대 숙적 사우디와 이란의 직접 충돌 가능성에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슬람 세계의 맹주를 자처하는 두 나라는 지난 40년간 중동 각지에서 각종 대리전을 통해 패권 경쟁을 해왔지만, 직접 전면전을 벌인 적은 없다. BBC·CNN 등 영미 언론, 브루킹스·랜드 연구소 같은 안보 싱크탱크들은 지난 14일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 석유 시설 두 곳이 피격된 이후 사우디와 이란의 전쟁 가능성과 군사력을 비교 분석하는 리포트를 쏟아내고 있다.

cbc news
edited by kcontents



양국 갈등은 거의 모든 중동발 전쟁의 배경으로 거론돼왔다.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와 시아파의 리더인 이란이 종파의 명운을 걸고 벌여온 대리전은 '중동의 냉전(冷戰)'으로 불렸다. 과거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이 한 번도 직접 전쟁은 안 했지만 세계 각지에서 이념에 기반한 각종 전쟁을 지원한 것과 같은 양상이라는 것이다. 양국 갈등이 본격화된 계기는 1979년 이란 혁명 때부터다. 1차 세계 대전으로 오토만 제국(터키)이 무너진 후 이슬람 세계는 사우디 왕가가 주도했다. 당시 미국 등 서방이 성지(聖地) 메카의 소재지이자 석유 생산 등 지정학적 이점을 갖춘 사우디를 단일 맹주로 인정했다. 그러나 페르시아 제국 후예로 시아파 인구가 많은 이란이 세속주의 왕조를 무너뜨리고 신정(神政)일치 공화국을 세우면서 구도가 달라졌다. 이란은 사우디와 이집트, 바레인 등 수니파 국가에 침투해 '이란의 반미(反美) 혁명 모델'을 전파하며 정권을 위협했다.



첫 대리전은 1980년부터 8년간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이다. 사우디가 수니파인 이라크 후세인 정권을 지원하자, 미국도 처음엔 이라크 편이었다. 그러나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며 미국에 도전하자 미국은 결국 후세인을 때렸다. 이란-이라크 전쟁은 결국 이라크에 시아파 정권이 들어서 반미(反美) 벨트가 확장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 레바논 내전(1975~1990년), 소련과 아프가니스탄 전쟁(1979~1989년)에도 사우디와 이란의 군벌이 개입했다.

최악의 사망자와 난민을 발생시킨 시리아(2011년~)와 예멘(2015년~) 내전도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 형국이다. 시리아에선 이란과 결탁한 시아파 정권과 사우디를 배후에 둔 수니파 반군이 싸우고, 반대로 예멘에선 사우디가 비호하는 정부와 이란이 지원하는 후티 반군이 싸우고 있다.




양국이 직접 맞붙는 상황이 올 경우, 전망은 엇갈린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 등에 따르면, 사우디는 연 국방비 지출 규모로만 보면 미국·중국에 이어 세계 3위다. 오일머니가 두둑하고 미국·영국의 최신형 전투기와 방공망을 사들이는 데 제한이 없다. 반면 이란은 40여년 서방의 제재를 당해 구소련제 탱크와 1970년대 미제 무기 같은 재래식 무기가 대부분이다. 당장 전쟁이 벌어진다면 초반엔 미국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사우디가 압도할 수 있다.

관련기사
[이란 공격 임박?] 사상 최대의 미군과 방공 시스템 이란 페르시아 만 집결 [BREAKING] US Sending More TROOPS & AIR DEFENSES To Protect Saudi Arabia & UAE
https://conpaper.tistory.com/80934
edited by kcontents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사우디가 이란을 당해내지 못한다는 시각이 많다. 이란은 대규모 전쟁을 직접 치러본 데다 헤즈볼라 같은 테러단체를 지원하며 군사 강국 이스라엘에 맞서왔다. 혁명수비대처럼 반미 민족주의로 똘똘 뭉친 정예부대도 갖고 있다. 사우디는 예멘에서 이란과 맞서면서 값비싼 전투기로 공중전만 할 뿐, 전장에선 수단·오만 같은 빈국의 청년들을 용병으로 사와 총알받이로 내모는 처지다. 이번에도 "호화 방공망을 갖춘 사우디의 심장부가 이란과 후티 반군의 싸구려 드론에 맥없이 뚫렸다"(텔레그래프)는 평가가 나온다.

중동에서 미국의 공백이 사우디와 이란의 충돌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에선 정파를 떠나 '수렁과 같은 중동 전쟁에 다시는 발을 들이고 싶지 않다'는 공감대가 깊다. 



트럼프 정부에서 현재 "대이란 군사 보복 검토, 제재 강화"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혼재된 메시지가 나오는 이유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19일 "사우디 타격을 이란이 한 것은 명확하지만 이란과 평화적 해결을 바란다"고 말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등의 유엔 총회 참석을 위한 미국 비자도 발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는 "사우디에서 트럼프 정부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이 커지고 있다"면서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이란에 대한 단독 보복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정시행 기자 조선일보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