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때려 잡는 정책만이 능사일까

시장 때려 잡는 정책만이 능사일까
이재원 부동산팀장기사

    서울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바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올 여름이 시작되면서 부터다. 연초 바닥까지 내려갔던 거래량이 6월부터 눈에 띄게 늘기 시작하더니, 7월 들어서는 가격도 오르며 8개월여의 내림세에 마침표를 찍었다. 부동산 시장이 이렇게 빠르게 뜨거워질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정부의 각종 규제가 시장을 억누르는 데다 경제 사정도 대체로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려는 현실이 됐다. 서울 청약 시장에서 수십대 1의 경쟁률이 나온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인천 송도에서까지 800명 모집에 11만명이 몰리는 이른바 ‘청약 대란(大亂)’이 일어났다. 서울 외곽 단지의 분양권 가격도 한두 달 만에 억 소리가 나게 올랐다. 잠잠해진 줄 알았던 부동산 시장이 왜 다시 이렇게 된 것일까.



모든 게 정부 탓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정부가 그동안 보유세율을 높이고 대출 한도는 낮추면서 다주택자를 불편하게 하는 여러 정책을 펼쳤다. 그 효과로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사려는 수요가 많이 줄었다. 청약 제도를 무주택자 위주로 바꾼 것도 맘 급한 실수요자를 진정시키는 효과를 냈다. 수요가 줄다 보니 가격 상승세가 꺾인 것은 올해 상반기 우리가 목격한 그대로다.

수요를 꺾었는데도 집값이 들썩였다는 것을 보면 문제는 공급 측면에 있었던 것 같다. 정부가 3기 신도시 등 수도권 주택 공급 대책에 이어 광역 교통망 확충 대책도 내놨지만, 충분하지 못했던 것같다. 여기에 더해 최근 서울 공급 부족에 대한 공포감이 커진 것이 집값을 다시 들쑤신 듯하다. 많은 전문가는 정부가 민간택지에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고 본다.



정부가 꼭 1년 전 내놓은 서울시 1만 가구 공급 대책의 대표적인 사례인 개포동 재건마을과 성동구치소는 첫발도 제대로 못 떼고 있다. 이후에 발표된 것까지 서울시 공급 계획은 4만 가구에 달하지만, 임대 주택이 많은 데다 그나마도 약속한 시기에 제대로 공급되리라고 보는 사람조차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거의 유일한 새집 공급 수단인 정비사업을 틀어막을 움직임을 보이니 공급 우려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부의 입장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정비사업을 풀어 비싼 분양가의 새집이 공급되는 것을 용인하면 주변 집값이 따라 오르고 분양가가 다시 오르는 악순환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이 걱정을 크게 하는 듯하다. 하지만 정비사업을 묶으면 지금과 같은 공급 부족의 부작용이 생긴다.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의 차이인데, 지금은 후자가 커 보인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지금의 시장은 분양가를 싸게 한다고 주변 집값이 내리는 시장이 아니다. 싸게 분양된 집만 금세 주변 시세만큼 오를 뿐이다. 그럼 정부 걱정대로 분양가가 비싸면 주변 집값을 더 자극하는 문제는 어떨까. 물론 공포가 지배하는 시장이라면 실제 가치보다 비싼 값에 거래가 되고, 풍선효과로 다른 집도 오를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상승은 한계가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현재의 대출 규제 아래서 실수요자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다. 너무 비싼 값에 분양되는 집은 거래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올해 상반기 서울에서조차 그런 예가 있었다. 거꾸로 말하면 지금의 청약 경쟁률은 어찌 보면 감당할 수 있는 실수요자가 아직 제법 남아있다는 신호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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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미 여러 정책으로 투자수요를 상당히 잡아놓은 상태다. 그런데도 여전히 투기 걱정에 매몰돼 있다면 정책 성과를 스스로 과소평가하는 것일 수 있다. 특히 실수요자 입장에서 전 재산을 걸어야 살 수 있는 집의 가격은 과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던 네덜란드의 튤립 값과는 근본부터가 다르다는 것도 한번쯤 생각해보면 어떨까. 시장을 꼭 때려 잡아야만 정책이 제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이 올바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게 물꼬를 터주는 것도 정책의 중요한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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