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인들에게 국가는 무엇인가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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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인들에게 국가는 무엇인가

2019.09.16

꼭 두 달 전 ‘자유칼럼’에 홍콩에서 송환법 반대 100만 명 데모가 터지게 된 계기를 글로 쓴 적이 있습니다. 그 후 두 달 동안에 홍콩 데모는 단순히 송환법 반대에 머물지 않고 행정 장관 보통선거를 요구하는 민주화 시위로 차원이 높아졌습니다. 행정 장관은 사실상 홍콩의 자치 정부를 이끄는 수반입니다.
뒤늦게 캐리 람 홍콩 행정 장관이 그동안 거부해왔던 송환법 철회를 발표하는 양보를 했지만, 시위 주동 세력은 행정 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중국의 국경절인 10월 1일까지 데모를 중단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행정 장관 뒤에서 힘을 행사하는 중국 공산당을 향한 홍콩 민주화 요구와 다름없습니다.

홍콩 데모가 장기화하면서 홍콩 사람들이 겪는 생활 및 심리적 고통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중 하나가 최근 뉴욕타임스에 보도된 데모하는 아내와 저지하는 경찰 남편의 이야기입니다.
서니(Sunny)는 두 딸을 가진 26세의 홍콩 여성입니다. 지난 6월 홍콩 데모가 일어난 이래 그녀는 중국공산당이 지원하는 송환법에 반대하여 열렬하게 시위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남편은 시위를 저지하는 임무를 띤 홍콩 경찰 소속입니다.
시위가 벌어지면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아내와 남편이 대치합니다. 아내는 홍콩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시위를 벌이고 남편은 중국의 지령에 따라 시위대를 진압합니다. 서니 부부의 낮 동안의 모습입니다.
이 부부의 저녁 모습은 달라집니다. 데모 현장에서 돌아온 두 사람은 같이 집안일을 하며 두 딸을 키우는 평범한 부부가 됩니다. 그러나 데모가 오래 계속되고 홍콩 경찰이 데모 진압에 강경책을 쓰면서 이들 부부의 대화가 평화롭지 못하다고 합니다.
데모가 터지기 전 두 사람은 존경받는 홍콩 경찰의 가족이 된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남편은 경찰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임관되던 날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홍콩 시민의 존경을 받는 경찰이 됐다는 감격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찰이 강경 진압으로 나서면서 분위기가 달라진 것입니다. 처음에 평화적으로 데모를 하고 경찰도 자제를 할 때는 괜찮았으나, 베이징 당국의 요구에 따라 홍콩 경찰이 강경하게 나오고 부상자가 생기면서 시민들의 불만이 커졌습니다.
시민과 경찰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경찰 가족들도 스트레스가 쌓여가게 마련입니다. 가족 간에도 골이 생기는 게 당연합니다. 경찰과 경찰 지지자들은 데모를 자제하라고 비난합니다. 경찰 가족 간에도 골이 생기지만, 경찰과 시민 사이에도 골은 계속 깊어지는 모양입니다.

아마 이러한 시민과 경찰의 감정 대립을 보면서 중국 공산당의 권력자들은 싫어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홍콩 시민들이 똘똘 뭉쳐 민주화를 요구하는 게 중국으로선 두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홍콩 시민들은 행복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게 2019년 홍콩 사회의 단면인 것 같습니다.
한국인들도 길고 긴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데모가 많았던 나라입니다. 그래서 홍콩에서 일어나는 경찰과 시민 간의 깊은 골을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14억 명의 본토 사람들은 홍콩인 740만 명의 민주화 외침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언론 통제가 심한 중국 정부가 홍콩 데모가 본토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전 조치를 취하는 이유도 크겠지만, 홍콩은 서구식 자유에 익숙하고 본토는 공산당 통제에 익숙하게 살아온 타성도 큰 몫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송환법안 철회로 끝나지 않은 홍콩의 민주화 데모는 파괴적인 잠재력을 가진 이슈인 것 같습니다. 중국은 홍콩 문제를 내정(內政) 이슈로 국한하려고 안간 힘을 쓰지만 세계는 그렇게 보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이 소문처럼 인민해방군을 투입하여 홍콩 데모를 진압한다면 일파만파의 국제적 파장이 일 것입니다. 폐쇄적인 중국 본토, 그것도 수도 베이징에서 피의 진압을 감행한 1989년 천안문 사태와는 차원이 다를 것입니다. 그렇다고 민주화 요구가 전염병처럼 본토에 번지는 사태는 중국공산당이 참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지금 표면적인 중국의 국가 현안은 미·중 무역 전쟁이지만, 공산당 내부적으로는 홍콩 문제가 더 고민거리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홍콩 민주화 데모는 경제문제가 아니라 정치문제이자 체제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홍콩인 부부의 딱한 사정을 보며 질문을 던져 봅니다. 국가란 무엇이며 또 정치 체제란 무엇인가.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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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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